주변에서 건강검진을 한 후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듣거나, 특정 부위가 아프면 연락이 온다. 어느 의사가 잘하는지, 네가 다니던 그 병원에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봐야 하는지 물어본다. 가벼운 증상이라면 주변 친구와 경험, 윗연차 선생님들한테 들었던 기억을 토대로 관련과 의사를 추천해 주지만 중증질환이라면 적어도 대구는 가서 진료를 보라고 권유한다. 간호사인 나조차도 아직 지방에서 암진단을 받았다면 서울을 갔다 와야 그래도 미련이 남지 않을 거라고 설명한다. 서울 대형기업 병원이 최초로 들여와 운영하는 한 방사선치료기는 10년쯤
사월은 벚꽃이 아름답지만 내게 사월의 색은 단연코 연두이다. ‘완두콩의 빛깔과 같이 연한 초록색’ 연두를 사전에서 찾으면 나오는 풀이말이다. 사월의 나뭇가지는 완두콩처럼 여리고 푸른 새순을 가득 안고 있다. 갓 태어난 잎사귀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아기가 손가락을 펼치듯 하늘을 향해 힘껏 손을 뻗는다. 사월과 오월 사이, 연두는 초록으로 초록은 이내 녹음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짙푸르게 변한다. 연두는 어린 시절처럼 어느새 자라 과거가 된다. 아직 코로나가 한창이던 이천이십일 년 봄, 나는 하나둘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즈음,
쾨쾨, 퀴퀴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모스크바의 공항은 지금처럼 여전히 세레메치예보 공항으로 불렸다. 지금은 국제선과 국내선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외국 여행도 난생처음이고 더군다나 사회주의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CCCP)도 처음이었다. 당시 필자의 소련에 대한 첫 이미지는 공항 화장실의 그 퀴퀴한 촉각에서 결정되었다. 화장실의 위생 수준을 알려주던 촉각의 지표가 사회주의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촉각은 나중에 소련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 등으로 변해갔
2022년 영화 ‘탑건: 매버릭’은 개봉 전부터 OTT에 밀려난 극장을 구원할 영화로 입소문이 파다했다. 미국 무기산업의 선전 영화는 안보리라 굳게 결심했는데도 여기저기 보이는 예고편 영상의 매력은 향수를 자극했다. 그 얼굴, 그 공기, 그 음악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지만 나도 지지 않고 꼭 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드디어 미국 샌디에이고 미드웨이 항공모함 박물관 위에서 ‘탑건: 매버릭’의 월드 프리미어가 열렸다. 헬기를 타고 온 톰 크루즈가 미드웨이 항공모함 위에 내려앉으며 프리미어 행사가 시작되는 장면은 굉장히 상징적이었다. 스필
새롭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주에서 독립서점 운영기를 연재할 너른벽 서점지기입니다.‘너른 벽(wide wall)’은 돛과 닻 출판사에서 펴낸 제로의 책 ‘메타버그 세계관’에서 접한 단어인데요. 너른벽이 등장하는 문장에서 강한 메시지를 오랫동안 기억하며 실천으로 삼고자 서점의 이름으로 선정했습니다. 문장은 “…더 많은 사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너른 벽을 추구해야 합니다.”인데, 접근성에 대한 고민과 다양성을 포괄하기 위해 어떤 실천이 있어야 하는지와 같은 현실적 고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서점에는 한 권 한 권,
노란리본 볼 때마다 화나고 괴롭다.누가 애들 이렇게 만든 건지 알아야 했다.이미 늦었다. 공소시효 7년인데 지나버렸다.대한민국 수많은 법을 두고 300명 넘게 죽은 사건 하나 못 밝혔다.돈 없어서 슈퍼에서 생필품 1000원짜리 훔친 사람은 실형이다.말도 안 되는 법이다.앞으로라도 사고 나면 그 이유를 알고 책임자 처벌해야 한다.법이 왜 있나?다시 그런 일 없도록 처벌하고 생명 존엄함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이다.리본을 달 면목도 없다.정말 7년 공소시효에 문재인 공약이 세월호 진상 규명!이 거짓은 감방에 가야 한다. 아이들 영혼에
유치환의 시 중에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한 구절로 유명한 시가 있다. ‘기(旗)빨’, 혹은 ‘깃발’이란 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向)하야 흔드는영원(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순정(純情)은 물껼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표(標)ㅅ대 끝에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이 한국을 찾아 한국을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
4년이 지났다. 다양한 이름 적힌 긴 종이에 인자를 찍는 총선이 돌아온다. 하루에 열두 번씩 오는 선거 유세 전화와 문자, 서로 공격하는 자극적인 헤드라인. 매번 반복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른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국민에게서 나온 힘을 국민에게 쓰는 사람이 있길 바라는 마음과 우리의 목소리를 듣길 바라는 아주 실낱같은 희망으로 후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골라보았다.인권, 기후위기라는 의제 그리고 안보달팽은 ‘코다’(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의 정체성으로 바라본 다양한 인권 이슈를 길지 않은 글로 엮은
봄처녀 아니 아지매 아기별꽃 남편님이 냉이 넣고 끓인된장찌개가 먹고 싶답니다.냉이 다듬는 게 얼마나 힘든데하며 면박을 주었습니다.많이 캐지 말고 딱 먹을 만큼만요러는 곱상 남편입니다. 햇볕이 따뜻하니 나물 캐러가기 딱 좋으네요.모자 덮어쓰고마스크 끼고장갑도 끼고호미 챙겨 들고 봉다리 들고 나갑니다. 어디에 가면 냉이가 있으려나먹잇감 찾아 나선 호랑이처럼어슬렁어슬렁 동네를 누빕니다. 동네를 벗어나 살살 걷다가묵밭을 발견했습니다.이런 데 냉이가 있을까?풀떼기가 간간이 보이기는 하는데 노안인지라이눔이 풀인지 냉인지구분하기도 힘드네요.
2001년 병역거부 문제가 널리 알려지는 데는 인권, 평화단체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평화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36개 시민단체는 2002년 2월 4일 기자회견을 갖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를 정식으로 발족했습니다. 이후 연대회의는 법률 지원 및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 병역거부자 및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상담활동,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도의 의의를 알리기 위한 각종 간담회, 토론회, 기고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자본주의 ‘그 자체’의 정치적 모순미국의 정치철학자, 사회이론가 낸시 프레이저의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초반부는 자본주의 경제의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와 같은 제 살 깎아 먹는 식인 자본주의적 성질을 설명한다. 그 결과는 경제라는 영역이 사회에 무임승차하고, 돌봄 활동을 보충하지 않은 채 돌봄 제공에 필요한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으로 이어짐을 서술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자체를 존립하게 하는 핵심 조건들의 존재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와 사회 재생산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책의 후반부는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
남편의 변화 아기별꽃 밍기적 밍기적하며오전을 그냥 다 날릴 작정인 게다.눈뜬 지 몇 시간째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면서기차 꼬리처럼 줄지어 선집안일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싶다. 어영부영 밥때는 다가오고밥은 하기 싫고참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누가 대신해 줄 사람도 없다.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고이불 밖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꼴이라니진짜 꼴같잖은 모양새다. 어제 걷어온 빨래가 마르지 않아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이놈부터 해치우자.차곡차곡 개어두고 점심 준비이건 이래서 하기 싫고저건 저래서 하기 싫으니이걸 어째야 하나 싶다. 간단히 있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내 명의의 초가삼간도 없는 나는 빈대 때문에 서서 지하철 타고 있다.나에게 빈대란 속담에나 나올만한 먼 종류의 이야기였다. 작년 가을, 유럽에 베드 버그(유럽 빈대)가 유행한다는 기사에도, 유럽 여행객과 유학생들의 빈대 증상 후기를 볼 때까지만 해도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대학 익명 게시판에서 대구에 있는 기숙사에 빈대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속담의 빈대와 유럽의 베드 버그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빈대가 나왔다고 하는 기숙
“한 의사가 매일 아침 출근 전 자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런데 의사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의사의 아들이 맞다. 어떻게 된 일일까?”내가 만난 이백여 명 남짓의 열세 살 아이들은 이 수수께끼에 금세 ‘아이가 입양아다,’ ‘의사가 새아빠다’와 같은 답을 내놓았다. 놀랍게도 의도된 정답이었던 “그 의사는 아이의 엄마이다”를 아이들이 상상해 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의사’를 생각할 때 우리 머릿속에는 가운 입은 남성의 이미지가 디폴트 값으로 번뜩 떠오른다. 비슷하게, ‘미국인’을 생각할 때 흑인-장애
올해 늦은 봄, 지인들과 경주에 놀러 간 적 있었다.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최근에 읽은 좋은 책들에 대해 대화하던 중, 나는 포항에 아주 괜찮은 동네서점이 있다며 달팽이책방을 소개했다. 포항에는 철강회사와 과메기 말고도 멋진 것이 있다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타 지역 지인 몇몇이 이미 달팽이책방을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단순히 지역 책방이 아니라 전국구 책방이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달팽이책방에 관해 이야기 나누다 지인 한 분이 김초엽 작가님이 포항과 인연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나
2022년 첫 중학교 생활을 시작할 때 제가 생각해왔던 중학생의 모습과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친구들이랑 즐겁게 중학교 생활 즐기기. 두 번째 제가 좋아하고 나중에 가고 싶은 학과를 정할 때 중심이 될 활동이나 좋아하는 것 찾기. 세 번째는 진실한 저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1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학년제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새로운 일들을 체험하면서 제 꿈과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보다 훨씬 많은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치어리더 동아리도 들어가고 독서 동아리, 댄
※ 〈웹툰으로 보는 산업∙의료폐기물〉은 2023년 11월 15일 열린 전국 산업∙의료폐기물 매립장 및 소각장 피해 실태와 대안 모색 국회 토론회 홍보를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이 웹툰은 공익법률센터 농본에서 제공하고, (사)세상과함께가 후원합니다. 올해 농본에서는 ‘농촌을 파괴하는 난개발 사업’을 주제로 산업∙의료폐기물 매립장 및 소각장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세 차례에 걸쳐 충남, 전북, 경북 지역에서 진행했습니다. 피해 지역의 현안을 공론화하기 위해 지난 11월 15일, 국회에서 대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토론회에 관한 자세한 소식은
내년 초면 아이가 만 6세가 된다. 내가 몸담은 직장에서는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연령이 만 5세까지로 제한되어 있어(만 6세 이상의 아이는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다가올 해에 아이 등·하원과 나의 출퇴근을 병행할 일에 고민이 깊다. 그동안에는 8시 15분 무렵 출근하시는 유치원 선생님 손에 아이를 붙들려 드린 후 헐레벌떡 급히 나와 그길로 곧장 출근하면 8시 30분인 출근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었고, 오후에는 육아시간 사용을 요청하여 정식 퇴근 시간보다 20분 정도 이르게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매년 노벨문학상 시즌이 되면 누가 상을 받을지에 대한 예측 기사가 쏟아지곤 한다. 우리나라 작가나 이미 유명한 작가의 이름이 강력한 후보로 오르내리면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된다. 유명한 작가가 상을 받게 되면 독서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는 것 같다. 마침 얼마 전 2023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올해 수상자는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이다.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작가이지만 ‘노벨상 특수’가 이어질지 궁금하다. 이번 호*에서는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가와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어민들이 안전성과 관련한 다른 것은 신경을 쓰겠지만방사능 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그래서 어민들이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고해양 방류를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오염수 방류 시작할 때 망연자실…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오염수가 3차째 바다에 방출되고 있다. 정부는 우리 수산물은 안전하다고 연일 홍보하면서 수산물 소비를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생계가 걸린 어민들은 오염수 해양투기로 인해 어떤 피해를 보는지, 정부 정책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등을 박형근 고흥어민회 회장을 통해 알아보았다.박형근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