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탑 저거 하나 내 힘으로 구부릴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는 거지. 탑 저거 때려 없애고 싶은 기밖에 없어. 내가 탑 들어설 때는 탑 구덩이에 들어가 죽으려고 했는데. 그리 들어가 죽지도 못하고. 내 눈에 저 탑이 안 보이면 얼마나 좋겠나.” - 손희경 할머님 76만 5천 볼트의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맞선 밀양 주민의 싸움은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나긴 시간을 정리하고, 여전히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온라인 기록관’을 만든다.
환상의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귤을 따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밥을 짓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오래된 방 안에서 잠을 청한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에게 환상은 없다. 우리와 같이 반복되는 일상만이 존재한다. 저 묵묵한 시간에 고개를 숙인다.
마을 길 한가운데 앉아있는 소성리 주민을 보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 4월 28일 아침, 성주 소성리는 사드 장비 반입으로 또다시 공권력과의 충돌을 겪었다.마을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장이 되었고, 나이 많은 몸은 어느덧 익숙해졌다. 수 천 명의 경찰병력이 마을회관 앞길을 밀고 들어오기 직전,백광순 할머님은 고추를 심어놓은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어두고 조용히 길 위에 앉는다.
산을 뚫고 이어질 저 거대한 우회도로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궁금해졌다.안동시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예산상의 인구는 20만, 3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합리적 근거없이 세금은 이곳 저곳에서 집행되고 있다. 오늘도 희망의 탑이 올라간다.
2008년의 동대문운동장인데 지금은 사라지고 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섰습니다. 바로 옆 청계천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그곳은 삼일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지요. 고가도로 아래 수많은 노점상과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기억도 납니다. 세계디자인수도 서울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고가도로와 아파트를 지우고 길을 걷어내 천을 복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비단 지워진 것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만은 아니었습니다. 재개발에 밀려난 노점상은 잠시 동대문운동장 안팎에서 연명하더니 운동장마저 밀리고는 어디론가로 떠났습니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
작은 농촌지역에서 ‘농민 수당’이 조금씩 제도화되어가고 있다. 우리 먹거리를 제공하며 식량주권을 지켜나가고 있는 농민에게 이제나마 국가와 지방정부가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농가 수익은 줄고 부채만 늘고 있는데 수도권의 도매시장을 통해 도매법인 모기업들은 수백억의 배당금을 챙겨간다. 농업을 살리고 공익적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얽히고설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무르익은 고추는 바닥으로 가고, 땀 묻은 돈은 기업으로 간다.
겨울의 초입에 골짜기의 바람을 뚫고, 전투경찰들의 벽을 뚫고 내어오는 뜨끈한 오뎅국물을 나눈다. 군인도 경찰도 주민들도 시민들도 감염병을 뚫고 모였으나, 정작 따뜻한 밥 한끼 나누는 평화는 아직 찾지 못했다.지난 27일, 성주 소성리로 또다시 공사 자재가 들어갔다. 힘을 가진 자들 누구도 주민들의 손을 잡아 주는 이 없고, 주민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작고 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국물만이 서로를 잡아준다.
지역의 낡고 오래된 학교들은 폐교되어 사라져가고 있다.‘공산당이 싫어요.’아무도 찾지 않는 운동장을 향해 이 어린이는 아직도 외치고 있는 듯하다.눈에 보이는 것들은 사라져가지만,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이 고속철도망으로 연결되면 과연 균형적인 발전이 가능해질까.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의성-군위로 들어서게 되면 과연 지역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우리를 연결 짓는 일들이 곧 우리를 갈라놓는 일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계가 서로를 가까이 이어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19 시대에 들어서면서 문명이 파헤쳐 놓은 대지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있다.기후위기의 시대, 언택트 시대의 연결망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는 또다시 지구를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듯하다.2023
해질녘, 출장 길에 나서면서 어깨엔 짐 가방을 메고 한 손엔 작업화를 들고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또래 혹은 조금 더 연배가 있어 보였는데 다짜고짜 일 끝나고 돌아가는거냐 한다. 아마 건설 현장의 노동자로 본 모양이다.일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간다니 놀란 눈치다
마당에는 말끔히 차려입은 세 사람이 서 있다. 가운데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들의 졸업식 날을 기념하여 남긴 사진인 듯하다. 흰 고양이도 이들의 가족이었을까? 그도 이 기념일에 빠지고 싶지 않아 아들의 옆자리에 서성인다.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흔한 풍경을 담은 이 사진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니, 다행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폐허가 된 마당에서 발견되었다. 집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이 무너져 내렸고, 사진 속 주인공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후손인지도 모를 고양이들만이 집터 주변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연극이론가인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어느 인간 사회에서나 엿볼 수 있는 만인이 체험하는 사실로서 사회과정을 사회극으로 보고 이론화하였다. 그는 삶을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드라마로 해석한 것이다.모든 인간의 삶이 그러하겠지만, 성주 소성리의 현재는 영화와도 같다. 지난 5월 29일 새벽,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6월 22일 새벽에도 국방부와 경찰 병력은 마을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며 사드 레이더 부속 장비를 반출입했다. 마을을 드나드는 길은 가로막히고 집집마다 경찰들이 대문을 막아서며 주민들을
그는 일흔을 넘긴 할머니였다.이른 봄날 산에 나물을 찾아 나선 것일까. 봄나물을 캐다 말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중일까.사진은 아무 말이 없다. 그 안에는 꽃도 피어 있고, 숲도 우거져 있으나, 이곳이 어딘지 또 언제인지 저 할머니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물며 사진의 바깥을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사진을 보고, 보여준다. 사진을 붙잡고 말을 하고 있다.사진 속 할머니는 이제 팔순의 나이에 이르렀다. 그는 파킨슨병으로
2017년 봄, 차가운 바다 아래 갇혀있던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목포신항에 누워있는 거대한 고래 같던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백을 한참 바라보던 고양이를 만났다.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기억이란 새로운 시간을 열려는 노력이라고 하는데,인간의 기억이란 얼마나 가벼운지. 사진은 또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