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메디치가의 피렌체는 페리클레스의 아테네가 아니라 오히려 스파르타 같은 도시였으며, 자유롭고 열린 도시가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생활방식에만 집착하는 닫힌 도시였다는 점이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집시와 르네상스, 김운찬 옮김, 문학동네, 26쪽) 르네상스 시절 피렌체는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다양성이 존중되고 여러 문화가 섞이면서 창조의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였다. 그리고 유럽 최초로 공공 고아원과 병원을 설립할 정도로 시민의식이 앞서 있었다.현대에도 많은 학자들과 여행자들이 피렌체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하지만 어떤 시대의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그 긴 역사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메디치 가문과 훌륭한 예술가들을 만날 수도 있지만, 서민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만날 수도 있다.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서 북서쪽 골목으로 조금 올라가면, ‘ㄷ’자 모양의 광장을 만날 수 있다. 광장 정면에는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의 청동 기마상이 버티고 서있다. 코시모 1세를 비롯한 메디치 군주들의 동상은 시뇨리아 광장 등 여러 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과거 메디치 가문의 선조들은 표면적으로나마 피렌체의 공화정을 지지하며 시민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길 극도로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