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출신의 소설가 하근찬(1931~2007)은 1957년 단편 「수난이대」(1957)로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 후 수많은 작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수난이대의 하근찬’이라는 수식어가 평생 따라다녔다. 그의 단편 「흰 종이수염」(1959), 「나룻배 이야기」(1959)와 같은 작품은 외부적 충격으로서의 일제 지배와 전쟁으로 인한 개인과 공동체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으로, 그 작품성이 전혀 덜하지 않다. 그리고 『야호(夜壺)』, 『월례소전』, 『산에 들에』 등의 장편에서는 ‘일본군위안부’ 사건을 영천, 경주 일대의 토
1_ 재난: 천재와 인재 사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2년째, 여전히 전 세계는 이 ‘역병’의 멍에로부터 회복되지 못한 채 백신 보급으로 그 파괴력을 약화하는 데 집중하는 중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은 순식간에 많은 익숙하던 것들을 과거의 유물로 바꿔버렸지만,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예전 전염병 사례에 비해 그 공포는 많이 줄어들었다. 말라리아나 콜레라, 천연두, 페스트(흑사병)들이 창궐했을 당시에는 ‘신의 징벌’이라고 밖에는 당시 수준에선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참혹한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기근 또한 과거엔 일단
소율아!언제 무더운 여름이었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귀뚜라미가 소리 내 울고, 매미 소리는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는구나. 가을이 왔어.개구쟁이 꼬마들은 늘 심심했어. 오늘은 또 무엇을 하며 놀까. 또 누구 집에 가서 놀까. 종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 하는 생각뿐이었지.목욕탕과 이발소, 자장면 가게가 있었던 동네 중심지에 친구가 살았어. 제법 큰 골목길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던 집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인집과 일곱 가구가 화장실 하나를 같이 썼던 셋방살이였던 것 같아.작은 대문으로 들어가면 큰 마당
아침으로는 제법 날씨가 쌀쌀해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와. 올 한 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져.소율아 잘 지내고 있지? 황금빛으로 물든 농촌 들녘으로 농민들은 추수하느라 여념이 없어. 태풍으로 나락이 넘어간 논들 사이로 부지런히 콤바인이 움직이며 추수를 하고 있어. 콤바인이 벼의 이삭을 떨어내고 논바닥에 볏짚을 남겨놓으면 트랙터가 볏짚을 공룡 알처럼 말아 놓아. 추수가 끝난 논에서 흔히 보았던, 흰 비닐로 감싼 공룡 알처럼 생긴 것이 바로 소여물로 쓰이는 볏짚 뭉치야.콤바인이나 트랙터가 없던 시절에는 추수가
조카 소율이에게 오월 날씨가 35도라니 말도 안되게 더운 한낮이야. 올해는 특히나 고온에 이상기온이라 편지 쓰는 삼촌 이마에 땀이 줄줄 흘러. 안 그래도 뜨거운 햇빛에 눈이 저절로 감기는데, 왼쪽 눈꺼풀이며 눈두덩이에 쌍으로 다래끼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또 이놈의 파리는 왜 이리 많은지 양 볼에 날아들어 심기가 불편하다. 짜증에 짜증이 겹치는 오후구나. 이런 날씨에는 계곡 웅덩이에 풍덩 뛰어들고 싶다. 삼촌이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버스에서 내려 4km 정도의 거리였어. 십 리 길이라고도 하지. 초등학생 걸음이 얼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매국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산다.”이는 우리 근대사의 상처를 환기해 주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속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해묵은 상처를 헤집는 현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의 대부분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오르면 친일 부역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을 만큼.정치인들 가운데서도 친일파 출신의 선친이나 조부 덕분에 논란이 된 이들도 적지 않다. 가까이는 2015년, 선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평전을 냈다가 해묵은 친일 논란에 휩싸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현 바른정당)가 있다. 기득권층의 연원, 친일 부역의 역사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밝힌 김용주의 친일 행적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