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그곳. 초여름 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날이었다. 하얀 천막 위로 포근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돗자리에는 김밥과 빵, 커피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주위에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천막 바깥으로는 연녹색의 나무들과 뭉게구름 몇 점이 보였다. 잠시 눈을 감으면 마치 소풍에 온 것만 같았다. 눈을 뜨고 천막 앞에 놓인 글자들을 읽기 전까지는 정말 그랬다. “부당징계 반대한다”, “징계 이후 한동대는 깨끗해졌습니까?”, “학교는 헌법 위에 있는가. 헌정 질서 준수하라”, “폴리아모리를 이유로 내쫓을 수
겨울의 초입에 골짜기의 바람을 뚫고, 전투경찰들의 벽을 뚫고 내어오는 뜨끈한 오뎅국물을 나눈다. 군인도 경찰도 주민들도 시민들도 감염병을 뚫고 모였으나, 정작 따뜻한 밥 한끼 나누는 평화는 아직 찾지 못했다.지난 27일, 성주 소성리로 또다시 공사 자재가 들어갔다. 힘을 가진 자들 누구도 주민들의 손을 잡아 주는 이 없고, 주민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작고 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국물만이 서로를 잡아준다.
2014년 4월 참담한 기억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아니 영원히 잊을 수 없고 잊지 말아야 한다. 너무 고통스러운 그날을 우리 모두는 함께 경험했다. 그 참담함으로, 미안함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교사들 중 일부가 2014년 시국선언을 통해, 일부 교사들은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 건을 두고 보수단체와 당시 교육부가 해당 교사들을 고발하였다.검찰의 수사와 기소로 재판은 진행되어 2016년 1심에 이어 2017년 항소심에서도 유
코로나19는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팬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회 곳곳마다, 분야마다 혼란이 컸지만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역시 교육이었습니다. 개학 연기를 여러 번 거치고 등교하고 나서도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유례없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시대가 지닌 모순을 지적하며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했지만, 감염병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 교육문제와 현실을 마주하며 공교육의 역할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1. 공교육과 학교의 역할아이들이 학교에
걔 학교 잘렸대. 폴리아모리인가 뭔가 그거 때문이라던데? 나도 잘 모르는데 여럿이 사귀는 거래. 애인이 자기 말고 다른 애인을 한 명 더 사귀고, 셋이 같이 산다나. 말이 되냐? 그게 그룹섹스지 뭐야. 애인 둘 끼고 있는 여자도 웃긴데 그걸 용납하는 새낀 무슨 생각이냐 대체. 애인이 다른 새끼랑 자면 질투도 안 나나. 우리 교회 목사님은 난교라고 하던데 딱 맞는 말 아니냐. 사실 그냥 바람이나 난교라고 하기 부끄러우니까 괜한 이름 붙여서 면죄부 받으려는 거지. 폴리아모리는 무슨. 아무리 포장해봤자 똥이 꽃으로 변하냐. 더러워.그 새
2014년 4월 16일에 진도 맹골수도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는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학살극이었다. 나는 2009년 시월에 있었던 일제고사 폐지 싸움으로 감봉 2월에 신안흑산중학교로 좌천되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을 살았다. 그러고는 2013년에 진도실고로 돌아와 2014년 4.16을 맞는다. 그날도 여느 때 같았으면 5시부터 읍사무소 네거리에서‘18대 부정선거 이명박 구속, 박근혜 퇴진!’을 외칠 판이었다. 그러나 학교가 끝나자마자 진도실내체육관으로 갔다. 생존 노동자 두 분에게 침몰 상황에 대해 직접 듣고, 이틀 뒤
“너도 그 뭐 성소수자, 그거냐?” 아빠가 물었다. 마치 밥은 먹었냐고 묻듯이 가볍게. 아빠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베이비부머’ 세대의 60대 남성,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정당을 지지하며 오랫동안 대형교회에 다니던 사람이다. 평소 ‘잘 지내고 있냐, 졸업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냐, 미래 계획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주로 하던 아빠는 비슷한 뉘앙스로 내가 성소수자인지 물었다. 그때 아빠의 질문과 나의 대답 사이에 흐른 찰나의 순간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 될 거라는 걸, 나는 직감했다.재작년
장애·발달 지체·장애 위험 유아의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인의 특성에 적합한 교육내용·교육 방법을 선정하여 제공함으로써 장애영·유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유아특수교사 김채현입니다.남들과는 달리 조금은 특별했던 저의 학창 시절을 글을 통해 여러분들과 공유해보려고 합니다.어렸을 적, 시골의 자그마한 초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사교육이라고는 일주일에 두 번 피아노 과외받는 것이 전부였지만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사교육의 중요성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시골 소녀가 시내에 있는 중학
코로나19 시대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8월 15일을 계기로 제2차 감염 확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등교가 결정되었지만, 여전히 조마조마합니다. 코로나19가 길어진 사이에 맞벌이 가정은 걱정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성장의 공동체를 잃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학대로부터 학교가 유일한 피난처이던 아이들은 그 피난처를 잃어버렸습니다.우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학교의 진정한 의의를 깨닫습니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깊어지면, 학교도 돌봄, 급식, 교육복지 등 그 기능이 다양하게
인류 역사와 문명의 지속에 따라, 인간의 특성 때문에 인류 사회가 정보를 축적하여왔고, 기록에 의해 정보 축적은 가속화되어 왔다. 그에 따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에너지의 사용을 증진하여, 현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물산의 풍부 속에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과도하고 무분별한 에너지의 사용으로 기후의 위기 속에서, 코로나 사태가 야기되었고,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불균형과 에너지 사용의 불균형으로, 인류 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상당한 위기에 봉착하였다. 일부 생명과학자들은 인류 종의 멸종과 인류 문명의 대단절
지역의 낡고 오래된 학교들은 폐교되어 사라져가고 있다.‘공산당이 싫어요.’아무도 찾지 않는 운동장을 향해 이 어린이는 아직도 외치고 있는 듯하다.눈에 보이는 것들은 사라져가지만,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경북 봉화군 옥방이라는 마을에서 한 아이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29일 오후 4시 30분경 하굣길에 친구들, 동생들과 함께 걸어오다가 밑으로 떨어지는 아주 마음 아픈 사건이 발생하였다.사고 원인을 내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주위 사람들 말에 의하면 아이가 떨어진 장소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큰 덤프트럭이 거기 다니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바리케이드를 치웠다고 한다.바리케이드만 있었더라면 아이가 다치는 일도, 가족이 마음 아픈 일도, 주위 사람들 마음 아픈 일도 없었을 것이다.좁은 도로
지난 추석을 맞아 평소에도 이미 만연하던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활개를 쳤다. 명절을 늘 따라다니던 가족갈등과 스트레스는 위선적 포장의 내부를 들추는 역할을 해왔는데, 전염병 상황은 이마저도 ‘합법적으로’ 피해 갈 수 있는 명분을 주었다. 가족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오랜 전통과 체화된 문화는 지적,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제1원칙이다. 가족이라는 성역 앞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꼴이 된다.사회적 성공을 향한 기나긴 행렬의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몫을 차지하지만, 부와 권력을 얻으려는 근본적 이유이자 목적
두 달 전인가? A장애인생활시설 직원들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는데 사실이란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난 너무 힘이 들어 한참 동안 멍~때렸고, 만감이 교차했다.나는 시설 직원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얘기가 나오면 내 몸의 온 신경들이 가시처럼 곤두서고, 치가 떨리고, 반감이 아주 크다. 그래서 아주 불쾌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같이 연대할 수 있을까?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설 직원들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구타(폭력)를 당했다. 욕설과 조롱과 차별
한국전쟁 발발 70년, 이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로 67년이 지났다.2년 전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은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고 평화를 선언했다. 온 국민이 이제 전쟁이 끝나고 한반도의 평화가 시작될 거라는 기대와 기쁨 속에 설레었다.하지만 지난 6월 16일 북한은 직통선을 끊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 최근에는 북측 해역에서 공무원이 피격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한 발짝의 진전도 이루지 못하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그 배경에는 미
2월 20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다. 3월과 4월, 밖은 위험했다. 갑자기 시간들이 집안에 갇혀 뒹굴었다. 여러 날 밤을 새우며 드라마와 영화를 눈이 빠지게 봤다. 아, 이 얼마나 기다리던 시간이냐! 이렇게 늘어져 있는 것이…. 눈이 휑해지고 허리가 아프도록, 그간 보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던 소설을 꺼냈다, 이 시절에 떠올림 직한 소설 와 을. 그리고 17살에 내 영혼에 접속했던 만화책 . 10년 전쯤 동네 비디오 가게가 문을 닫을 때 마흔아홉 권 전집을 샀으나 읽지 못한 채, 구석에서
그것이 당도했다. 아니 1월 20일,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냄새도 없이, 멋진 모자도 없이, 접촉하는 사람들의 숨결 사이로 은밀하게.우리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쯤. 매화 소식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아이들은 방학이 지겨워질 때였다. 한 종교단체에서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고, 정치권력과 연루된 비리들도 줄줄이 드러났다. 그것과의 접촉, ‘감염’은 ‘죽음’이라는 공포를 일깨웠다. 공포는 고정관념과 삶의 습관을 깨고 다른 방식을 요구했다. 숨결을 나누는 다정한 포옹은 이제 위험했고,
우리 사회는 ‘몸’에 대한 편향된 특정 인식을 갖고 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이런 속담은 우리 사회가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말이다. 아프면 치료받아야 하고 치료되지 못한 ‘몸’은 자유경쟁 사회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으므로 장애가 발생하면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를 두려워하고 장애가 생기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과 교육, 노동, 문화, 여가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이 일상화되고 배제되는 사회구조이기에 그렇다.장애란 불특정 다수에게 우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은 7월 20일 경북 최초로 24시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시행된 포항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와 담당 공무원을 만났다.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당사자 A씨(뇌병변장애) : 저는 활동 지원 없이는 혼자 움직이지도 먹지도 못합니다. 특히 한 번 넘어지면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나서는 야간에도 제가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을 갈 수 있고, 여러 위급상황이 생겨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껴지니 불
아! 슬프도다.어찌 이리도 매정한 현실이 반복되는가? 정부는 노동 현장에서 직업적 단련으로 형성된 기능을 평가받는 자리가 기능대회라고 설명한다. 아니다. 현실과 멀어진 대회는 산업체에서 외면받았고, 지금은 학생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다.기능대회 개선안을 낸 교육부는 2007년 고 황준혁, 2020년 고 이준서 학생의 죽음으로 보여준 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메달 경쟁 때문에 희생된 학생들의 모습은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죽음의 사슬을 끝내지 못하고 오늘 또 연장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부가 왜 존재하는가?’ 묻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