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활동지원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있다. 바로 얼마 전 보건복지부 공무원 면담을 하는데 노조 앞에서 담당 행정사무관이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에게 24시간 서비스하면서 월 800만 원 소득을 얻는 분들은 다른 건 필요 없고 그냥 계속 그런 식으로 근무하길 원한다고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노동조합의 제도 개선 요구를 일축하고 있었다.이런 종류의 발언은 현장에서도 많이 나온다. 연초다 보니 연말정산을 안내하는 전담인력은 활동지원사에게 이렇게 안내했다 한다. “월 천만 원씩 버시는 분들이 센터 여러 개 하시잖아
지구의 기후위기를 해결해 줄 물고기가 있다. 멍게의 친구로 분류되는 살파(Salpa)라는 피낭동물(被囊動物)이다. 주로 남극해에 사는 이 물고기는 몸이 젤라틴 질의 물질에 싸인 몸에 물을 통과시킴으로써 그 힘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물을 몸 안의 포식 필터로 걸러 식물 플랑크톤을 먹으며 산다. 살파의 몸은 그 자체가 신비하고 수수께끼로 싸여 있는데 더 희한한 것은 살파의 생식 방법이다. 살파는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반복하는 희귀한 생물이다. 한 개체의 살파는 암수 동체로 살다가 복제*를 만들면 그 살파는 자라서 뿔뿔이 흩어진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문제점으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것 중의 하나가, 활동지원인력의 수급 불안정이다. 장애인 부모와 장애인이용자들은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 없어 괴롭다고 말한다. 이 정도 주장에 그치면 고충을 느끼는 당사자로서 느끼는 바를 말하고 정부에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제도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장애인 가족에게도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내용이거나, 용처를 제한한 바우처 대신에 현금으로 달라는 개인예산제와 관련된 주장이 이어진다.가족 활동지원 허용을 주장하
올해 9월 24~25일은 세계기후행동의 날이다. 오늘도 14호 태풍 난마돌이 일본 열도를 휩쓸고 지나가고 또다시 대한민국 포항 등지에 비가 퍼부었다. 2020년 국회 본회의에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에서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국내외에서 기자회견이 이루어지고 각종 선언문이 나오고 뜻있는 사람들이 집회를 벌이고 1인 시위를 한다. 12호 태풍 무이파가 자연법칙을 무시하며 발생했다느니, 가을 태풍이 기후변화로 인해 더 자주 발생할 거라느니 방송언론에서 말이 많다. 사막 지역
향기가 나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곳. 어디일까? 나는 뒷간에, 변소에, 아니 화장실에 있다. 그 이름처럼 한국의 화장실은 화장을 잔뜩 한 고상한 공간으로 격상되었다. 한국인들의 모양과 행태가 백인화된 만큼이나 그들의 변소도 거만한 얼굴을 하고 있다.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은 더 이상 요구사항이 아니라 당연한 조건이다. 이제는 겸손하고 소박하게 쭈그리고 앉아, 물을 흘려보내지 않고 똥을 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도를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문명화의 성취로 읽히는 이 현실은 사실 오만한 삶의 양식에 철저하게, 처절하게 흡수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타카기 슌스케(高木俊介)에 따르면 일본에서 8월 8일은 요괴들의 날이다.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요괴, 유령, 원령, 모노노케(귀신)가 활약하는 괴담 이야기는 여름밤의 오락거리다. 일본의 민속학자인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國男)에 따르면 요괴와 모노노케는 영락한 신들이고, 유령은 이 세상에 미련을 두는 사자(死者)이며, 원령(怨靈)은 한을 품고 죽어도 죽지 못한 자이고, 요괴는 세간 구석구석에 거주하는 유희, 유령은 거주 공간이 없이 서성거리는 자이며, 원령은 한을 품고 상대방의 것을 습격한다. 사람들은 촛불 앞에서
“아, 엄마 밥 먹고 싶다……” 결혼이나 독립을 해서 이제 막 스스로의 부엌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백종원 레시피를 보고 만든 반찬이 맛있어도, 배달 음식이 잘 돼 있어도 까닭 모르게 흉내 낼 수 없어 그리운, 눅진한 엄마 반찬의 맛. 바깥의 한기와 하루의 크고 작던 사투를 달래주는 그 밥상. 엄마가 가장 따뜻하게 내준 밥과 국, 밑반찬으로 구성된 밥상. 외근 중에 한 끼를 거르거나 늦은 한 끼를 해결할 때, 직접 재료를 사서 손질하고 만들어 먹는 비용보다 싼 1인분의 식당과 배달 음식에 질려갈 때, 사람들은 엄마의 밥상을
낯선 것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오랜만에 서울 강남에 다녀왔다. 선입견인지 몰라도 낯설었다. 찻길 대로마다 자라 등 옷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뒤편 골목길에는 노래방에 바에 유흥주점들이 건물마다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병원은 왜 이리 많은지. 후줄근한 건물들이 많고 산천초목에 싸여 있고 작은 하천이 흐르는 하양 촌에 오랫동안 살아서일까.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성곽 같은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골목길을 걸으며 날씨가 무더웠던지 강남은 내 옷에 맞지 않는 뭔가 낯선 곳으로 다가왔다. 숲에서 살아야 할 사마귀가 아파트 담벼락
예전에 학교 엠티 때 학생들이 옥수수 통을 슈퍼에서 사와 먹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그 통을 엎어버린 적이 있다. 지엠오(GMO) 옥수수였기 때문이다. 지엠오란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의 약자로서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여 내부에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한 생명체를 총칭한다. 코로나로 그리고 백신으로 사람들이 눈에 띄게 죽어 나가고 있지만, 지엠오는 사람을 눈에 보이지 않게 죽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역대 어느 정부도 지엠오의 위험성은커녕 지엠오 표시제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슈퍼에 널려 있는 식품들은
2014년 7월에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과 카페 ‘그’의 임차 상인들의 ‘법 앞에서’라는 다큐멘터리 연극이 있었다.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를 모델로 한 연극이었다. 대한민국은 760명의 검사, 2,918명의 판사(2019년 기준), 변호사 29,724명(2021년 기준)이 있는 나라다. 최근에는 법 위에 있는 검찰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무소불위의 국가권력까지 거머쥐었다. 검수완박으로 시끄러운 시절, 이래저래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가 생각난다.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를 보자(이 소설은 카프카가 1919년에 발표한 『시
감정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 유해물질과 직업병 등에 대하여 기업의 노동 안전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불완전하게나마 만들어도, 노동자의 노동건강권을 주장해도, 4시간에 1명이 일하다 죽는다. 1990년도에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2236명, 2020년 기준으로 2062명이다. 그저 일하다가, 노동력을 상품처럼 팔다가, 그것도 헐값에 팔다가 죽는다. 죽어도 곱게 죽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깔려 죽는다. 이것은 손가락 잘리고 반도체 백혈병으로 죽는 것도 문제지만, 산업재해 수준이라고도 볼 수 없다.
활짝 핀 벚꽃들이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구경거리가 된 벚꽃은 그렇게 실컷 소비된다. 처음부터 그럴 운명이었다. 일렬로 서 있으라는 명령은 구경거리에게나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인위적으로 배치된 벚나무들과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사람들은 어쩐지 잘 어울리는 한 쌍 같다. 계절을 잃어버린 시대의 재촉으로 허겁지겁 피워낸 벚꽃에 ‘기쁨조’의 억지 미소가 겹쳐 보이는 순간이다. 흙으로 떨어지고픈 꽃잎의 기대는 아스팔트와 시멘트에 가로막힌다. 꽃잎을 부르는 흙의 목소리도 효과적으로 차단된다. 정처 없이 뒹굴던 꽃잎들은 빗자루에 몸을 맡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어코 침공했다. 구소련 시절 체코 헝가리 침공을 지나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2014년에 합병하더니 다시 이제는 우크라이나 자체를 공격한 것이다. 크림반도 합병 이후에도 이 지역에서는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 아니라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었고 최근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크림반도 합병 이후의 전략을 개시한 것뿐이라는 말이다. 푸틴은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언론에 흘렸지만, 푸틴의 이 말을
“내 꿈은 탑 저거 하나 내 힘으로 구부릴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는 거지. 탑 저거 때려 없애고 싶은 기밖에 없어. 내가 탑 들어설 때는 탑 구덩이에 들어가 죽으려고 했는데. 그리 들어가 죽지도 못하고. 내 눈에 저 탑이 안 보이면 얼마나 좋겠나.” - 손희경 할머님 76만 5천 볼트의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맞선 밀양 주민의 싸움은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나긴 시간을 정리하고, 여전히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온라인 기록관’을 만든다.
‘눈물이 났다’, ‘세금을 이렇게 좀 써라’. 2조 원의 예산을 투입한 12년간의 연구 끝에 한국의 독자 기술로 개발되었다는 누리호가 발사된 순간, 미디어가 전한 사람들의 반응은 벅찬 감동과 환호, 자부심이 뒤섞인 것이었다. 같은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굉음과 연기를 내뿜으며 솟아오르는 로켓은 우주를 향해 겨눈 총구 같았다. 파리의 에펠탑에 송전탑이 겹쳐 보였던 과거의 어느 날처럼, 나는 ‘자랑스러운’ 누리호와 북한이 걸핏하면 쏘아 대는 미사일이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사람들의 눈은 로켓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감동과 위로, 희망을 주었다는 올림픽이 끝났다. 사람들의 의식을 저당잡았던 올림픽의 광풍은 여느 이벤트와 마찬가지로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이벤트들에 자리를 내주며 잠잠해졌지만, 그 찌꺼기는 여전히 미디어를 떠도는 듯하다. 전염병 가운데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개최 전의 수많은 우려와 비판이 무색하게도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자 점수와 승패, 메달에 대한 중계가 모든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올림픽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은 이미 오래전에 퍼진 전염병인지도 모른다.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은
환상의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귤을 따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밥을 짓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오래된 방 안에서 잠을 청한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에게 환상은 없다. 우리와 같이 반복되는 일상만이 존재한다. 저 묵묵한 시간에 고개를 숙인다.
마을 길 한가운데 앉아있는 소성리 주민을 보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