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측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했다. “재판부는 성소수자,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저는 진짜 성적 지향이 무슨 학교 성적인 줄 알았습니다.”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해도 된다고, 차별해야 한다고 말한 거, 그거 제가 한 말입니다. (웃음) 그럼 안 됩니까. 남녀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성 정체성이 서른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럼 배우자가 서른 명이 넘는 건가요. 이게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장장 8개월간 이어진 소송의 마지막 날이었다. 상대는 한동
김상덕 선생은 1947년, 미군정의 과도입법의원에 참여하여 을 제정하였으나 친일파를 활용하고자 한 미군정이 법률을 공포하지 않아 사장되고 말았다. 그리고 1948년 5·10총선에 고령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제헌헌법기초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헌법에 반민족행위 처벌 조항을 넣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에 따라 국회는 1948년 9월 22일 을 제정하고 9월 29일에는 를 설치하였다. 국회는 10월 13일 국회의원 10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김상
“놈들을 몰아내고 舊疆을 恢復할제 倭風遼雪 三十餘年氣槪가 壯할시고 祖國光復되었으나 同室操戈 슬프도다北으로 달린 檻車 한줌 흙이 되단 말가 옛 伽倻父祖靑山淨土가 無恙하니 魂아 돌아오시어 이곳에 머무소서” 1992년 고령의 유지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건립한 의 마지막 구절이다. 국학의 대가인 이가원 선생이 쓴 사적비의 내용을 네 줄의 시로 압축한 글이다. 요새 쓰는 말로 쉽게 옮기면 이렇다. “왜놈들을 몰아내고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싸우기 30여 년의 기개가 장하도다. 조국은 광복되었으나 슬프게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A를 향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알고 온 거야? 말해봐!” 자신을 A의 가족이라고 밝힌 두 사람은 A의 휠체어를 잡으며 꽥 소리를 질렀다. 이내 그 목소리는 옆에 있는 우리를 향했다. “당신들 뭐야. 왜 장애인을 이용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애 데리고 뭐 하는 짓이야? 장애인이 뭘 알고 여기 왔겠어! 니들이 얘 인생 책임질 거야?”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진정시키며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그들은 기어코 A를 대열에서 이탈시켰다. 지난 3월 14일, 포항 법원 앞에서 경북 시민단체들의
장애인들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어느 누가 당사자의 삶을 대신 결정할 수 없고, 어떤 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장애를 이유로 지역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감옥 같은 수용시설 안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지역에서 자유로운 삶을 가져야 한다고 길바닥으로 나와 외치며 싸움이 시작됐다.지난 3월 26일부터 27일까지, 1박 2일 동안 거주시설폐쇄법 재정 결의대회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전국 집중투쟁이 진행되었다.420장애인차별철폐공투쟁단(이하 420공투단)은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 법제정을
몇 년 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울진 한수원 연수원에서 열리는 학부모연수에 참여하겠냐고. 울진, 하면 핵발전소가 떠오르는 나는 거절했다, 이유도 명확히. 핵발전소가 있어서 가고 싶지 않다, 울진에 가게 된다면 그건 아마 핵발전소를 반대하기 위함일 거라고. 이십여 년 전 귀농지를 찾으며 지도를 보고, 맑은 계곡도 많을 것 같고 오지인 듯하여 땅값도 싸지 않을까 싶어 일단 영양으로 갔었다. 하지만 기대에 맞는 땅을 찾기 어려웠는데 교차로에 영덕 창수면에 괜찮아 보이는 땅이 나 있어 가 보았고 맘에 들었으나, 해안도로에서
오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한 지 8주년이 되는 날이다. 2011년 3월 11일 진도 9.0의 대지진과 해일로 인해 핵발전소 전원이 끊기고 원자로의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자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고 발전소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 용융된 핵연료가 원자로를 뚫고 밖으로 흘러내리고, 녹아버린 핵연료가 땅을 파고 내려가는 '차이나 신드롬' 현상까지 더 이상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버렸다. 후쿠시마 반경 30km 내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최근 2018년 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1년간
오늘 아침 일찍, 나는 평소처럼 페이스북을 확인했고, "미투"와 관련한 기사를 봤다. 인도의 한 여배우가 인도 영화계의 중견 배우로부터 성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는 기사였다.남편은 나에게 '미투'가 뭐냐고 물었다.나는 남편에게 최대한 간단하게 ‘미투’에 대해 설명하였고, 남편은 점점 ‘미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미투’에 관한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다.그때 갑자기 한 살배기 딸이 울면서 깼다. 아마도 우리의 열띤 대화가 아기의 이른 아침잠을 방해한 모양이었다.아기의 울음을 진정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말을 고르겠는가. ‘정보, 네트워크, 디지털, 글로벌, 혁신, 경쟁’과 같은 유행어들이 반짝반짝하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 순서가 돌아오면 나는 그것들을 지나치고 지나쳐, 너처럼 보잘것없고 악취가 나는 말은 후보에 들 자격도 없다는 듯, 저만치 구석에 나동그라진 '쓰레기'를 주저 없이 집어들 것이다. 쓰레기가 '우리 시대의 시'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미국의 시인 애먼즈가 그랬듯이.요란한 수식어 더미들 속에서 기어이 가장 더러운 단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교육의 험악한 본색과 암울한 미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강사법의 본래 취지를 비웃으며 대학마다 이미 선제적으로 대량해고를 감행했고 추가해고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연구와 강의준비에 전념해야 할 수많은 전문 지식인들이 생존의 압박 아래 실존적 고뇌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와 맞물려 있는 강의 수 축소, 강의 규모 확대 등은 강의 질의 악화로 이어져, 미래사회의 산실인 대학의 안마당을 사막으로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 전체는 교육적 필요성과 무관하며, 단순 명료하게 경제논리, 즉
우리 사회의 망국적인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서울 강남 부유층 가정의 극단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 행태에 환멸을 느끼며 공감하기도 했지만, 내 자식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디까지 뒷바라지해야 하나 상대적인 박탈감과 고민거리가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스카이 캐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뭘 준비해야 할지 불안하고 막막한 학부모들이 많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를 둔 예비학부모들이다. 해서 가 2월 12일,
지난 시절 학교에서 근무할 때 대화의 상대는 주로 교사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 주제도 학생이나 학부모에 대한 것이 많다. 학부모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대화는 뒷담화가 재미있듯이 학교에 와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학부모를 비난하는 이야기는 자극적이면서도 흥미롭다. 교사들 간에 공감도도 높다. 이런 대화를 통해 교사들은 학부모로부터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학교를 퇴직하고 나니 아무래도 학부모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다. 학부모들을 만나서 학교 이야기를 하면 거의 십중팔구는 학교 교육에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어김없이 역과 고속버스터미널,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귀향 인파.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설을 맞는 풍경이다.설날 떡국 한 그릇을 다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을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에, 두 그릇을 먹고 두 살씩 건너뛰고 싶었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기억이다. 하지만, 이번 설의 떡국과 나이 듦은 불편함을 더한다.새해 첫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란 청원이 올라왔다. 이어 ,
오랜만에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로 향했다. 정문에 들어서 아파트를 끼고 오르막을 오르면 왼편에 학교와 운동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방학 중인 오후의 한산한 운동장에는 남자아이 네 명이 추위도 잊은 채 축구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기계적으로 몇 바퀴 도는 동안, 슛, 슈팅과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세리머니'라고 외치며 특별한 동작을 취하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자리를 뜰 때쯤 아이들은 7분 내에 점수가 나지 않으면 승부차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숱하게 보아 온 운동장이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면들이 문득 낯설게 다가왔다. 그것이 만들어놓은 구획 안에서 정해진 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나의 몸도, 그들의 존재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며칠 전 난
2019년 1월 18일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대통령 관저 경계로부터 100m 이내인 청와대 신무문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 그만’이라고 적힌 손현수막을 들고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집시법 위반죄의 현행범인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리고 20일 검찰은 이들 중 김수억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이하 김 지회장)에 대해 ‘비정규직 이제 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과정에서 진행한 청와대 앞 3차례 집회, 서울고용노동청과 대검찰청 내 농성 등을 범죄사실에 포함시켜 구속영
1월 17일 18시 30분. 포스코 부당해고 철회 네 번째 집회다.날씨가 좀 풀렸다.언제부터인가 우리 조상들이 막연히 생각해왔던 삼한사온의 날씨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하듯 영상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몸으로 느낀다.특히 포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름엔 덥고 겨울엔 더 춥다.아마 제철소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그러나 8차선 도로의 휑한 포스코 정문은 칼바람이 몰아친다.칼바람 추위보다는 분진에 뒤덮인 뜨거운 용광로 옆이 그래도 그립다.길거리에 내몰린 해고된 노조 간부 3명의 동지들의 체감 온도는 더욱더 낮다.분진에 휩싸인 뜨거운 용광로와 엿가락처럼 휘어져 감기는 열연 코일을 생산하는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민주노총에서 마
※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은 1월 20일, 경북노동인권센터 권영국 센터장님이 칼럼을 보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오늘은 용산참사 10주기를 맞는 날이다. 이틀 전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와 경주지역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함께 김석기 국회의원 경주사무소 앞에서 “용산참사 10주기,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김석기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용산참사 당시 김석기 의원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이자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으로 경찰특공대의 진압을 결정하고 지휘한 경찰 책임자였다.위 기자회견에는 조희주 범국민추모위 공동대표와 용산참사로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