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환호공원에 설치된 체험형 공공미술 조형물 ‘스페이스워크’(SPACE WALK)가 공개된 작년 11월. 이달은 포항이 다시 한번 관광도시로서의 위용을 전국적으로 떨치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로 각종 언론사는 스페이스워크가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있으며, 이 랜드마크의 관광객 유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페이스워크가 전국을 누비는 KTX 차내 좌석에 비치되는 잡지, ‘KTX 매거진’의 대문사진(2022년 1월 호)을 차지한 순간, 그러한
부슬비가 내린 오늘, 수라갯벌을 걸었습니다. 20년간의 간척 사업에도 살아남은 수라갯벌. 방조제 물막이 공사 후 수년에 걸쳐 조개 무덤이 만들어지며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수라갯벌은 금개구리, 흰발농게의 서식처가 되어줬습니다. 해수유통만 된다면 본래의 갯벌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전라북도는 여기에 새만금 신공항을 만든다고 합니다. 현재의 군산 미군기지 바로 옆에 말입니다. 군산, 김제, 부안에 걸친 세계 최장의 방조제는 세계 3대 갯벌로 손꼽히던 새만금 갯벌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역 발전
새벽 4시 30분에 누룽지를 끓여 먹고 대구에서 출발해 소성리로 갔습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많이 따뜻했어요. 겨울 추운 날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우리 할머니들은 딱 버티고 계셨어요. 지금은 주 3회 들어오는데 들어오기 전날 나간 다음 날 한 이틀은 정신이 없어서 실제로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주 5일 들어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어요. 이제 곧 일하는 철이 돌아오는데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불안한 건 사실이에요. 캄캄한 한밤중에 홀로 선 것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누구보다 먼저 새들이 소란스러웠다. 벌이 날아와 밭 둔덕으로 보랏빛 다홍빛 작은 꽃들이 피어났다. 듬성듬성 가지치기를 한 매화나무에도 연분홍 꽃이 피고, 자리를 옮겨 심어 말라죽은 듯 가벼워진 산수유에도 노란 별들이 매달렸다. 겨우내 한 것은 장작 패기였다. 앞밭에 널브러진 통나무를 도끼로 쪼개서 비에 맞지 않도록 쌓아야 했다. 도끼질을 한 40분을 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나고 한 시간을 넘어가면 몸에 에너지가 돌아 계속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신난다고 무리를 하면 육체노동에 단련이 안 된 나
경칩이 지나 밭 한쪽 샘이 솟는 웅덩이에서 기세 좋은 개구리울음이 들리더니 지난밤 내린 비로 울음의 성량이 줄어 겨우 들릴 듯 말 듯 합니다. 산 이마에는 상고대가 핀 것처럼 서설이 쌓여 있고, 산 아래에서는 는개가 스멀스멀 퍼지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경자와 신축의 모진 영하의 바람을 견딘 운룡매가 시절이 닿았음인지 매향이 저의 코에 닿을 듯 말 듯 한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우중이라도 지붕 없는 마루 쪽 창을 열면 산새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 보름 정도면 온 밭에 ‘오얏꽃’ 향이 퍼질 것입니다. 지난해 봄 은은한 ‘
환여의 기억 공사는 몇 해째 이어지고 있었다. 땅을 깎고 파헤치는 일에 무지하지만, 바다를 끼고 진행되는 공사는 한눈에도 험난해 보였다. 돌을 깎고, 돌을 옮기고, 돌을 쌓고, 다시 돌을 다듬는 과정들이 반복되었다. 덕분인지, 절벽 아래엔 전에 없던 산책로가 생겨 지나가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길은 이참에 바다 위로까지 뻗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머잖아 여름철 관광객들이 환여 바다를 찾아 새로 생긴 스카이워크를 다녀간 뒤 남길 후기의 내용이 괜스레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계속해서 남은 돌을 파내고, 깎고, 다듬을 것이
‘예의 있는 반말’에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평어’라는 언어체계를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커뮤니티 디학(디자인학교) 열다섯 명의 글이 담겨있다.언어가 가진 권력을 직시하고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직면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을, 당연함의 렌즈를 벗는 새로운 소통 방식인 언어에서 시도한다. ‘평어’라는 언어를 실행하며 변화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디자인과 미학 전공자들의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 볼 수 있다. 평어는 위계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 상하관계를 의식할 때 사용하는 호칭을 걷어내고 이름으로만 부른다. 언니, 오빠,
입춘이 지난 2월은 새내기 농부에겐 한없이 한가한 계절이다. 곧 봄이 오겠지만 겨울 끝자락 해발 350미터의 보현골 날씨는 제법 두툼한 솜바지를 입어도 흠칫흠칫 몸이 떨린다. 매서운 겨울 끝자락에 가스통을 잘라 만든 나무 난로 옆에서 농부는 시집에 빠졌다. 영천을 한없이 사랑하는 이중기 시인의 시집이다.벌겋게 달군 난로 옆에 앉아 뜨거운 차를 홀짝이는 내 몸이야 무람없이 한가하다만, 마음은 시집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다.영천 이야기다.밥 한 끼가 간절한 민중의 피와 땀을 가로챈 권력자와 그 하수인인 친일 관리의 포악함
빈부를 수치화하는 등급과 통계 좌표상에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정확히 점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가 그렇듯 빈곤 역시 구체적인 삶이자 내력이며 외면만이 아닌 내면의 어떠함이다. 홈리스의 삶은 생애 내내 꽁무니에 붙은 채 끊어지지 않고 길어지기만 하는 서사의 실타래다. P312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의 매각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엄청난 자본을 쏟아부은 사업주는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 건물을 철거하고 높이 올리기로 한다. 시대사적 의미의 건축물 철거라는 기사와 함께 화려한 건물 뒤, ‘도시 빈곤 메커니즘’, ‘숨어있는
보청기 센터 아빠의 귀에는 매미 두 마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매미 울음소리가 쉼 없이 들려 온 게 벌써 몇 년 됐다고, 청음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엔 다소간 흥분이 배어 있었다. 테스트가 시작됐다. 외부 소리가 차단된 청음실. 헤드셋을 차고, 청음사의 지시에 따라 들리는 소리에 반응하려 애쓰는 모습을, 숨죽이며 뒤에서 지켜보았다. 소리가 들리면 버튼을 누른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이곳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정작 와서는 열심히 버튼을 누르는 아빠의 작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 단
햇살이 드는 복도에 앉아 도나타와 나는 인터뷰를 시작했다.“이스라엘에는 왜 왔어?”가을학기가 시작한 지 2주 차가 되자, 교수님들은 차차 과제를 내시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인 분쟁 보도 수업에서도 첫 번째 과제가 나왔다. 언론 수업을 듣는 학우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인터뷰 시작할게. 이스라엘에는 왜 왔어?”…사람들이 이스라엘이라고 쓸 때 나는 특정 도시명으로 읽는다. 우리가 익히 이스라엘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지역들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닌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
평소 술이라고는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오르는 체질이라 평소 술과는 거리를 두고 지내 왔지만, 동짓날만큼은 술독에 빠진 하늘과 소나무, 그리고 독으로부터 퍼지는 솔향에 홀려 그만 대취에 빠진다.서당 도반들과 시골 서당 훈장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를 받아 삼십여 년 전부터 꾸준하게 이어오는 동짓날 행사이다. 그 비결이 내게 넘어온 것은 서너 해 남짓, 서당 밥 먹은 지 십 년이 넘어서이다. 人文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하여 송하대력주계(松下大力酒契) 행사이다.동지는 가장 긴 밤이 짧아지기 시작하고, 가장 짧은 낮이 길어
9월 말에 시작한 집 보수공사는 12월이 되어도 완성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완성되기를 재촉한 덕분에 이제 거의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남은 공사는 언제 될지 알 수 없으나, 봄이 와야 할 것 같다. 땅이 얼었으니 마당 공사와 나무 심기는 미루었다.대추나무를 베어내고 난 텅 빈 밭에는 새들이 오고 바람이 산다. 배가 노랗고 갈색 꼬리를 까딱거리면 딱딱 소리가 나는 딱새, 벼슬이 왕관처럼 우아한 후투티, 수백 마리의 참새떼가 베어놓은 대추나무 가지에 앉아 벌레를 잡고 화르륵 날아가고 나면, 꿩이 게으르게 골목을 어슬렁거린
돌아오기 어떤 돌아오기의 끝에는 달라진 게 없지때 묻은 손톱도 늘어진 주름도 변함없이 내 것이라는어떤 돌아오기는 자꾸만 눈곱 낀 거울을 들이밀지어떤 돌아오기의 끝에는 그래도 달라진 게 없지때 묻은 손톱도 늘어진 주름도 변함없이 내 것인데거울을 들여다보면, 거울을 들고 있는 내가 보이지어떤 돌아오기의 끝에는거울을 돌아선 사람이 보이지때 묻은 손톱을 영영 늘어진 주름을 돌아설 수 없는곳으로돌아온 사람의눈곱을 닦아주지 - 2021년 12월 3일, 경산시의 대형 장애인 거주시설인 성락원의 거주인 학대 사건을 규탄하고 시설 폐쇄 및 장애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