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10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1348년 3월에 피렌체를 덮쳤다. 흑사병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사회 전 분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는 르네상스 촉발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흑사병이 종교 권력에 몰고온 파국 ). 오스트리아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에곤 파리델(Egon Friedell, 1878-1938)는 저서 에서 흑사병이 터진 1348년을 ‘근대 인간을 수태한 해’로 평가했다.사실 피렌체에서만 해도 흑사병은 1348년부터 1495년까지 여러 번 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대구에 확진자가 대량 확인되면서 전국에서 힘내라고 이어지는 응원의 손길이 고맙다. 자영업자나 영세 상인, 관광업계 등이 겪는 어려움은 얼마나 클 것인가. 하루속히 이런 상황이 종료되길 바란다.의료진이 감염되거나 병원이 폐쇄된 소식, 확진자가 진료받고 싶어도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부족한 상황도 전해진다. 경상북도 청도군 대남병원 정신 병동 확진자 관리는 우리 사회의 재해 약자 대응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포항에는 나의 20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학교 입학 후 학기 중은 물론 방학을 해도, 휴학을 해도 나는 포항에서 지냈다. 무기정학이 아니었다면, 아마 서른 살도 포항 바다 앞에서 맞이했을 확률이 높다. 비록 월세였지만 하나둘 살림을 꾸린 나만의 원룸이 좋았고, 집 근처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좋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동네가 좋았다. 포항 토박이도 잘 모르는 나만의 히든 플레이스도 몇 군데 있었다. 인적 드문 바닷가라던가, 구석에 숨겨진 호수 산책로라던가,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 같은 곳들.징계 무효 확인 재판
나는 아파트에 산다. 현대 사회에서 허락된 거주 공간 중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곳도 아파트다. 아파트에 사는 건 왠지 벌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은희경은 아파트 단지에서는 “공기의 냄새마저도 도식적”이라고 했던가. 그런데도 나는 아파트에 산다. 다른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왜 나는 아파트에 살아야 할까? 언제부터 아파트에 사는 것이 당연하게 된 것일까? 사회의 산업화는 인간의 개조와 집의 개조를 동시에 요구했다. 기존의 삶의 양식을 박탈당하고 새로운 자원으로 거듭나야 했던 이들을 수용할 ‘산업화된 집’이 필요했던 것이
한동대 징계무효 확인소송의 마지막 변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택시에 타자마자 함께 사는 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재판 끝나서 기차 타러 포항역 가고 있어요.” 오늘 재판이 어땠는지, 상대가 어떤 변론을 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반박을 했는지, 그럼에도 무엇이 우려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통화가 끝나자, 묵묵히 운전을 하던 기사님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법, 뭐 이런 일 하시나 봐요.” “아, 제가 일하는 건 아니고요. 다니던 대학에서 2년 전에 부당징계를 당해서 징계
“우스갯소리지만…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그렇게 징계를 받을 수 있어요?”“아, 모르시는군요? 제가 만든 명언인데… 노력 없이 징계 없다! 노오~력을 해야죠.” 지난달, 한동대와 장신대의 부당징계 당사자들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당사자 개그’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식일 거다. 일곱 명의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각자가 경험한 부당징계 사건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헐 그 학교도 그랬어요? 저희 학교가 제일 문제인 줄 알았는데.”“징계 과정도 지난하고 아팠지만, 징계 이후의 삶도 확 달라졌어요. 앞으로 뭐를
올해 초, 한동대에 ‘반기문 글로벌 교육원’이 지어졌다. 84억 원이 투입된 건물은 1,300평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개원식에서 한동대 총장은 말했다. “반기문 글로벌교육원을 통해 이웃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합니다.” 반기문 교육원의 핵심 가치 중에는 ‘극심한 빈부 격차 및 불평등 해결’이 있다. 교육원이 지어진 한동대가 동성애자 ‘이웃’을 ‘반대’한다고 선언하고, 페미니즘 강연을 열었다고 학생을 무기정학 시킨 학교라는 점만 빼면 훌륭한 말들이다. 한 가지
산업혁명의 발원지이자 한때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나라, 그러나 지금은 쇠퇴일로에 있는 영국.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빈국으로 떨어졌던 나라, 그러나 지금은 유럽 최강국인 독일. 영국과 독일의 극명한 차이는 제조업 정책에서 비롯된다.영국은 수십 년 전 제조업을 버리고 서비스업을 택했다. 노동자를 버리고 금융가, 변호사, 경영컨설턴트를 택했다. 영국의 고임금 경제로는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가와 경쟁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처지에 놓인 독일은 다른 선택을 했다. 오히려 제조업 투자를 늘리고 기술 혁신으로 그
A: 남자 연예인 볼 때 멋지다거나 섹시하다고 느낀 사람 누구 있어?나: 공유? 유지태?A: 그 사람들 볼 때 감정이 어때?나: 음… 모르겠어. 동경?A: 그 감정에 확신이 있어? 혹시 네가 그 사람들 보면서 남자라는 성별을 인식하는 순간, 어떤 감정의 굴절이 생겨서 호감을 동경이나 선망으로 바꾸는 거면?나: 응?A: 그럴 수도 있다고. 아니면 말고. 한 번 생각해봐. 유학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만난 A의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이어서 A는 말했다.“난 남자랑 여자 모두에게 끌려.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더라. 일본 가서 알았어. 한
1_1. 2019년 7월 총선 : “시리자” 4년 반 만에 정권을 잃다 7월 7일, 그리스 총선 결과가 발표되면서 2015년부터 만 4년 반을 집권했던 “시리자 SYRIZA”(급진좌파연합)가 패배해 정권을 잃었다. 그리스가 ‘유럽의 환자’로 불리며 구제금융 대상국의 대명사가 되다 보니, 국내 언론에서도 이번 선거 결과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시선으로 단순 외신을 넘어서는 수준의 보도가 이뤄졌다.2차 세계대전 직후 발칸반도의 거의 모든 나라가 구소련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국가로 자리 잡으면서, 그리스는 해당지역에서 유일한 서방세계
정관 수술을 처음 결심한 건 20대 후반의 어느 봄이었다. 근처 비뇨기과에 전화를 걸었다. “정관 수술 예약 가능한가요?” “네, 근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대뜸 나이를 묻는 상황이 이상했지만, 별생각 없이 답했다. “아… 근데 20대는 좀 곤란한데, 혹시 결혼하셨어요?” 하지 않았다고 말하니, ‘그럼 곤란하다.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일 거다’라는 답이 돌아왔다.따질 생각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정관 수술을 받는데 나이나 결혼 여부가 대체 왜 필요할까. 검색을 해보니 여러 증언이 나왔다. 어리면 안 해준다, 미혼은 안 해준다, 자녀
“피고 학교법인 한동대학교와 피고 OOO은 공동하여 원고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 열 달 동안 진행된 소송의 최종 판결이 이뤄진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미처 내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이뤄진 선고에 어리둥절했지만, 결과는 일부 승소였다. 사건의 시작은 재작년 12월,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했다는 이유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한동대는 나를 징계했다. 졸업을 1년 앞둔 무기정학 처분이었다. 교수와 목사들은 집단적으로 나에 대한 비방을 시작했다. 내가 맺는 관계와 사생활을 악의적으로 폭로(아웃팅)하고, 나를 “암세포”와 “곰팡이”
1984년 5월, 대구지역에서 시작된 택시노동자의 파업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경산지역 택시노동자들은 사납금 인하 등을 요구하며 농성투쟁을 전개했었다. 2019년 5월, 택시노동자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다. 경산시청 앞 피케팅 첫날. 빨강 노조 조끼를 입은 이상국 대림택시분회장은 “어제는 점심만 네 끼를 먹었다”며 동료들의 응원과 상담 전화가 이어진다고 했다. 5월 초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 출범 이후 경산시청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었고, 최저임금 관련 집단 소송도 준비 중이다.하지만 노동조합 활동은 출발부터 쉽지 않다. “대림택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창립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ILO는 6월10일 개최하는 총회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했다. 한국 정부는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1991년 ILO에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나 ILO 회원국으로서 존중하고 실현해야 할 ILO 핵심협약(기본협약)을 아직도 비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ILO 기본협약 중 결사의 자유 협약이 가장 논란이다. 노사 단체 결사의 자유와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과 노동자 단결권과 단
“인피니티 스톤 건틀렛 끼고 핑거스냅으로 사라지게 하고 싶은”
상대측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했다. “재판부는 성소수자,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저는 진짜 성적 지향이 무슨 학교 성적인 줄 알았습니다.”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해도 된다고, 차별해야 한다고 말한 거, 그거 제가 한 말입니다. (웃음) 그럼 안 됩니까. 남녀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성 정체성이 서른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럼 배우자가 서른 명이 넘는 건가요. 이게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장장 8개월간 이어진 소송의 마지막 날이었다. 상대는 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