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백로(白鷺, 흰 이슬)’를 만났다.마을 회관 옆 논에 거미가 전깃줄과 전봇대를 지지대 삼아 허공에다 크게 거미줄로 그물을 쳐 놓았다.새벽녘에 자욱하던 안개가 해를 만나 그 거미줄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혀, 한걸음 뒤에서 보면 거미줄이 하얗게 보인다. 레이스는 아마도 이슬 맺힌 거미줄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지 않았을까?허공에다 과감하게 그물을 쳐 놓았지만, 바람 한 번 사르르 불면 집이 통째로 날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다.거미줄처럼 학교가 사라질까 봐 이사 온 그다음 날부
.1_ 때맞춰 등장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년사 다이제스트 연일 언론과 방송에서는 8월 31일 미군 완전 철군 전후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재 벌어지는 난장판을 소개한다. ‘탈레반’이라는 중세 회귀를 꿈꾸는 것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많은 이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한다.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도 잘 모른다.대체 왜 20년간 미국은 그 황량하고 척박한 땅에서 전쟁
여름은 뜨거웠다. 온막은 비와 풀들이 번갈아 열기를 빨아들여 푸르렀다. 빌딩과 불빛이 없는 이곳은 하루가 참으로 선명하다. 시간이 지나가는 길이 있고, 그 길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낮엔 마당에 선 소나무 그림자를 밟고 지나다, 노을이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간다. 텁텁한 마당의 열기를 밀어내는 생울타리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시각각 냄새와 온도가 다르다. 모기와 감나무 밭의 거름에서 나는 쿵쿵한 냄새는 후텁지근하고, 들꽃과 칡향기를 품은 달콤함은 시원하며, 뒷산 소나무의 푸른 향기는 서늘하다. 바람의 냄새와 온도로 매미와
1_ ‘난민’의 형성 과정과 현실UN 난민협약 제1조는 다음과 같이 ‘난민’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국제법상 난민 기준의 준거가 되는 해당 협약의 문제는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해 발생한 피난민의 경우 위 규정 범위 내에 해당하는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는 이유는 하나다. 미군이 육로로 통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국방부와 경찰이 자국민을 상대로 합동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이 간명한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다.국방부의 대외협력단 정 소령은 소성리 할머니들께 ‘국방부는 공사 인부들에게 마을길로 다니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공사 인부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항의하기 때문에 말릴 수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만난 공사 인부들의 말은 달랐다. 그들은 예전부터 소성리 마을길을 이용하지 않고 미군 숙소로 연결된
6월과 7월의 소성리는 마늘과 양파, 감자를 수확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농사철이었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경찰병력이 들어오는 바람에 마을길을 지키느라 일할 시간을 빼앗겼다. 틈틈이 밭에 나가서 수확하고 빈 땅은 또 깨 모종을 옮겨심느라고 이 집, 저 집 품앗이가 한창이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들의 일손이 웬만한 장정보다 더 필요한 철이었다.도금연 할머니가 몸살이 났나 보다. 온몸이 아프다며 생전 빼먹은 적이 없는 소성리 야간시위를 나오지 않으셨다. 소성리 부녀회장님도 몸이 아프면 나올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푹 쉬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7월 8일은 미군 육로수송 20번째 군경합동작전이 있는 날이었다. 마을길에서 경찰들에게 끌려나와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주변 사람들은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겠지만, 한 번씩 펑펑 울고 나면 속이 시원했다.경찰청인권위원회가 소성리로 찾아왔다. 마을길로 들어설 때부터 성주경찰서장의 관용차로 의전을 받아 들어왔다. 경찰 방송하는 경비작전 계장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고 부드러워졌다. 간곡히 시위대가 스스로 갓길로 이동하길 바란다고 했지만, 우리는 웃음만 났다. 그리고 경찰들의 행동도 느려졌다. 예의를 갖춰서 집회참가자들에게 마을회관 쪽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새벽마다 소성리 마을길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경찰폭력에 부상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소성리 부녀회장님은 반찬이라도 연대를 받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2016년 9월 30일 소성리로 사드 배치가 결정 나고 그해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해를 넘기고도 끊임없이 소성리로 연대자들이 들어왔고, 소성리 부녀회장님은 밥을 지었다.처음엔 마을 주민들이 먹을 밥을 했지만, 마을에 모여드는 연대자를 외면할 수 없어서 식사시간이면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회관으로 들어와서 반찬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밥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한솥
6월 17일 목요일은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드 기지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공사 인부들이 들어오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는 경찰과 싸우려고 소성리로 오는 게 아니다. 사드-미군 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막고 소성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경찰이 어마어마한 병력으로 우리의 앞길을 막고, 사드 기지 건설을 돕고 있으니까 부득이 경찰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경찰병력이 하루 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소성리로 아침 일찍 올라갔다. 공사 인부들이 사드 기지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미군의 육로수송을 열어주기 위해서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는 5월 14일부터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새벽부터 소성리로 달려와 한판 싸우고 나면 사람들은 출근하기도 하고, 참외 하우스, 딸기 하우스, 과수원, 논밭으로 농사지으러 가야 했다. 새벽부터 열을 내고 땀이 나도록 경찰과 한판 전쟁을 치른 사람들에게 아침밥을 먹여야 했다.첫날은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에서 빵과 음료 그리고 김밥 등의 요깃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나눠 먹었다. 하루만 전쟁을 치르고 끝날 줄 알았지만, 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차례 정기적으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정기적이고 지속해서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면서 국가폭력을 당해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새벽까지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지고,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서 화끈거린다. 6월 10일은 소성리로 12번째 경찰 침탈이 있었다. 경찰버스 50여 대가 소성리로 들어왔다. 1000여 명의 경찰병력이 타고 있는 버스다. 늘 하던 대로 하면 6시 50분에 작전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작전은 조금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이었다.집회를 시작하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사복 입은 경찰이 집회 장소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도로 한가
1_ 다시 중세로 회귀하는 아프간을 바라보며 미국의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사실상 도망치듯 종결되었다. 2001년에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미국의 침공은 몇 달 만에 공군력과 특수부대, 북부 동맹 지상군만으로 승리를 거뒀다. 탈레반의 5년간 통치는 붕괴하고 그들의 본래 근거지인 남동부 산악지대로 숨어들었다. 수도 카불에는 친미 정부가 들어섰고, 막대한 원조와 미군의 후견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친서방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설 것으로 보였다.승리에 도취한 미국은 곧바로 이참에 중앙아시
6월 3일은 10번째 경찰 침탈이 있는 날이었다.나는 지난주부터 경찰들에게 끌려 나올 때, 발가락에 쥐가 났다. 끌려 나오기도 전에 여경들이 둘러쌀 때부터 몸이 경직되고, 뻣뻣해져서 잡아끌지 말라고 말해도 경찰들에게 내 말이 닿지 않는 듯했다. 여자 경찰은 “가실께요”하면서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끌고 나갔다.그날도 경찰들이 난입해 들어오니까 옆 사람에게 밀착한다고 몸을 움직이는데 종아리가 경직되고 발에 쥐가 난다고 끌어내지 말라고 했는데도 경찰들은 막 끌고 나가려고 해서 소성리 구판장을 운영하는 이옥남 어머니를 붙잡았다. 옥남 어머니
5월 14일 이후 1000여 명의 경찰병력이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소성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벽 6시까지 소성리로 달려갔고, 사드기지 건설 반대 집회를 하면서 경찰들의 폭력에 온몸이 피멍으로 물들었다. 소성리 주민들은 몸과 마음에 골병이 들어간다.5월 18일 화요일부터 본격적인 미군 육로수송 군경 합동작전이 시작되었다. 2021년 소성리로 5번째 경찰 침탈이 있는 날이다. 개신교 진보단체 ‘예수살기’에서 소성리로 파견 나온 강형구 장로님의 거처(컨테이너)와 소성리책방 컨테이너 사이에서 평화지킴이들이 격자를 들
나는 성주 주민이다. 10여 년 전에 도시의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대구 인근의 시골 마을인 성주로 이주해왔다. 대구에서 전투기 폭음으로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K2 군 공항 바로 옆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가난한 살림에 K2 군 공항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가 크는 동안 전투기 폭음에 노출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찾아서 떠나고 싶었다. 대구에서 가장 가까운 성주로 이주를 결정했었다. 대구에서 가깝다고 했지만, 대구는 우리 식구가 살던 아파트를 팔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본부장 김태영)는 지난 3월 노동자들의 알아야 할 주요 주제들에 대한 정책교육 영상을 공개한 데 이어, 지난 6월 ‘체제 전환기 노동의 선택과 제7공화국 운동’을 주제로 대담과 토론 형식의 정책교육 영상을 유튜브 ‘민주노총 경북TV’를 통해 공개했다.이번 영상은 일자리보장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제7공화국 운동 제안, 노동의 체제 전환 대응, 판을 갈아엎는 노동 운동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뉴스풀에서는 민주노총 경북본부 정책교육 영상 두 번째 편에 대해 4개의 강의와 종합토론에 대해 다섯 차례에 걸쳐 싣기로 했
1. 무대가 저문 뒤 말 많던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본래 2020년 예정되었던 올림픽은 코로나19 창궐로 1년 연기를 겪은 후 결국 무산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워낙 걸린 게 많은 IOC와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결국 무 관객으로 치러졌다. 코로나19 비상사태 확산에도 큰 사건 사고는 (다행히) 없었지만, 일본의 정치적 편의를 봐준 부분이 적지 않아 꽤나 논란이 남았다.히로시마 피폭 헌화나 한국과 중국의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욱일기 도안의 은근슬쩍 사용 등이 행사 기간에 일어났고, 이는 IOC가 기존에 고수하던 정치와의 분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그대로 되돌려 주고 싶어요.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있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p82친구들은 제가 역사랑 국어를 학교에서 제일 잘했다는 걸 기억하니까 저한테 그래요. “너는 나보다 한국어 잘하는데 왜 군대 안 가냐?” p159 이주아동과 이주인권활동가, 이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변호사의 인터뷰를 기록한 《있지만 없는 아이들》(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은유 지음)이 2021년 6월 출간되었다.이 책은 보이는 이들과 없
만화가 김수박주요 저서 〈아날로그맨〉, 〈내가 살던 용산(공저)〉,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사람 냄새〉, 〈메이드 인 경상도〉, 만화 에세이 〈더 힘들어질 거야 더 강해질 거야 더 즐거울 거야〉, 〈아재라서書〉, 〈날라리 X세대의 IMF 이야기-타임캡슐〉, 〈나! 이봉창〉 외 다수.블로그_김수박과 파편들 https://blog.naver.com/orpeo74
열대야, 저번 주부터이다. 숲으로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보에도 없었던 소나기를 맞거나 흐리다고 했는데 빛은 강렬하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체감온도 35도에서 시작했다. 어제는 체감온도 37도. 여전히 폭염의 나날들이다. 내려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여름 숲속은 높은 온도에 걸맞게 높은 습도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찜질방 증기처럼 한 층 더 여름의 더위에 가세한 것이니. 막다른 골목을 만난 듯 숲이 제 기능하기에도 너무 뜨거운 여름이다. 데워진 숲의 열기들은 오히려 숲의 꽃들을 깨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