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의 역사유린 도구로 악용될 국정교과서

공자가 ‘春秋’를 짓자 뭇 제후들이 두려워했다고 한다.

춘추시대 패자들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고 못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 광폭한 제후들을 교화시킬 현실적인 도리는 없었다. 공자는 오직 역사책을 지어 후대의 명예를 위해 그들의 무도한 생활에 절제를 요구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이른바 ‘역사책’이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이야기다. 공자의 이 춘추필법은 동양의 역사서술방식에 하나의 전형이 되었고 후대 사마천 이후 많은 역사가들의 표상이 되었다. 이처럼 동양의 역사학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기능으로서 그 출발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유교적 통치가 천년 가량 지속되는 과정에서 역사가는 우대되었고 역사가의 전문성과 사료의 보존을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실록 편찬의 기초 사료인 사초를 엄정히 관리하고 정치적 격랑 속에서도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왕들조차도 관람할 수 없게 하였으며, 반정이 발생하더라도 政敵들이 편찬한 실록에 손을 대지 않고 수정실록으로 보완하는 등의 조치만 취한 경우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기록유산에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이 등록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들의 지조는 일제식민지 통치에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는데, 경술국치 때 자결한 매천 황현, 의열단의 정신적 지주인 단재 신채호,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 등 불굴의 애국자들이 모두 역사학자이다.

지난 10월 2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토론회 <사진출처 : 정의당>

그런데 현대사에 와서 그 기본적인 원칙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대부분 전직 대통령들은 자기의 치부와 비리를 가리기 위해 임기 내 활용된 방대한 자료를 폐기하는데 급급하였고, 과거사에서 철저히 금기시한 역사가의 고유 영역인 역사편찬에 함부로 칼을 대었다. 민주화가 진척되는 가운데, 국민의 정부 및 참여정부 시절에 이러한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정교과서 체제에서 검인정교과서로 전환되었고, 이는 변화하는 세계화 시대에 시대적 발전의 한 표본이라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문제가 생기기 시작되었다. 빨갱이교과서다 뭐다하면서 금성교과서를 대놓고 요구하여 교과서 내용이 수정되었으나, 추후 교과서 선정에 금성이 거의 배제되다시피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어 결국 대법원 판결로 정부의 불법적 간여가 인정되고 금성교과서 집필진이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 금성교과서는 7차교육과정(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기존에 강압적으로 요구된 정권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인 견해를 강조하면서 남북한 정권의 흐름을 공정하게 제시하여 학생들 스스로의 판단력을 요구하였으며 당대에 형성된 학술적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학계와 일선 교사들의 정서를 대변하였기에 압도적인 채택률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5년 후, 이번에는 뉴라이트교과서가 문제가 된다.
더 노골적이다. 정권과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가 한통속이 되어 정권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급조하여 보급하자는 것인데, 새누리당의 실세 김무성이 그 첨병 노릇을 하였다. 뉴라이트가 정치적인 단체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지만 심각한 문제는 이제 역사학계의 전문적인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고,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은 이론을 주창하고 있음은 물론이며, 동시에 현재의 국민정신과도 부합되는 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냉전논리인 자본주의대 사회주의의 구도를 견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구도를 강조하다 보니 제국주의 일본을 자본주의적 틀 안에 포용하려 했고, 이는 결국 반민족적인 해석을 만들기에 이르렀는데, 식민지 발전론과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 측 입장을 답습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그 교학사교과서는 교과서로서의 기본요건도 갖추지 못한 급조된 형태의 조악한 교과서인지라 교사들에게 철저히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대통령을 주축으로, 뉴라이트교과서 채택에 실패한 여당 대표인 김무성이 여기에 다시 보조를 맞추면서 아예 국정화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역사학자들의 좌편향을 문제삼으며, 심지어 90% 이상의 역사학자 및 교사들이 좌익이라는 이야기를 서슴지않고 있다.

그들이 이토록 집요하게 교과서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교과서를 바꾸어 이제는 무너져버린 과거 친일반공독재체제의 구조와 그 관념의 허상을 다시 구축하고 과거를 미화시킴으로서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려는 의도이다.

이번 국정교과서로의 전환은 이명박정부 때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아주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검인정교과서 좌편향으로 물아놓고 → 뉴라이트 대안국정교과서 집필 → 역사학계의 분열 조장 → 국정교과서로 전환)

이렇게 정치적 의도하에 계획적으로 추진되어 만들어진 국정교과서가 공정할 수 있을까?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과서도 시대에 맞고 인정을 받으려면 서로 경쟁해야 됨은 자명하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내용을 많이 수록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교육과정으로 구성하여야만 소비자들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다. 사상을 통제하고 특정 이념을 주입하기 위해 국가에서 교과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역사의 후퇴이고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행태가 아닌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가운데 다양화된 검인정교과서에서 다시 후진국 및 독재국가형 국정교과서로 돌아가는 것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행각으로, 전 세계의 비웃음꺼리가 되기에 충분하며, 이는 다시 국격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몇몇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것은 역사학자와 교사들의 전문성과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권력형 폭거일 뿐이다.

 

※ 본 칼럼의 내용은 익명의 시민이 쓴 글로,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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