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진정 '한 마을'이 되었는가?

 

 보통 세계화라고 하면 우리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세계화를 떠올린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촉발된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은 거대하고 단일화된 세계 경제를 낳았고, 그 세계화된 경제 구조에 의해 정치, 문화를 비롯한 다른 모든 요소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혹은 흡수당한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사회적 요소가 연관되어 있다.

 쟝 피에르 바르니에의 문화의 세계화는, 오늘날 도처에서 발생하는 세계화의 현상 중 문화의 세계화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경제적 세계화가 일부 산업화된 선진국과 웬만한 국가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게 된 초국적 기업의 이해논리에 종속되면서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듯이,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논쟁도 선진산업국가가 자본과 권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문학, 예술, 하위 문화 등의 일방적 유통경로를 장악하므로써 ‘문화 제국주의’라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오늘날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주된 담론은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나 팝등의 대중문화의 세계적 확산이나 맥도널드, 코카콜라 그리고 최근의 스타벅스까지 생활 전반에 걸친 문화의 침식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바르니에는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시도함으로써 문화의 세계화라는 현상의 본질을 짚어낸다.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즐기면서 반지의 제왕을 본다고 해서 미국의 문화와 같아지는 것인가? 저자는 ‘문화’와 ‘문화 상품’을 분리해서 정의내림으로써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문화는 문화 상품이 아니다. 일시적이고 끊임없는 가변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중심의 산업문화와 특수한 지리적·사회적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지역문화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한 정체성 파괴와 문화적 획일화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문화상품에 의해 고유의 지역 문화가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침투하는 문화가 일방적으로 우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선진국의 문화상품의 지구적 확산이 그것을 수용하는 모든 국가나 민족에게 혹은 개인에게 똑같은 가치관과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용자들은 그저 필요에 의해 선택적인 상품을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동일한 문화상품의 세계적 유통이라는 현상이 지역문화를 파괴하고 동일한 문화를 확산시킨다는 생각은 문화의 속성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결여된 섣부른 판단일 뿐이다.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지역사람들은 특정한 문화상품을 수용하면서 그 지역만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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