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따뜻하게 만날 순 없을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이렇게 따뜻하게 만날 순 없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현생인류의 출현 이후 1만5천 년쯤 지났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인간 본성은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며 발전해 왔다.
[심청전]이라는 괴기소설에서 보듯, 바다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야만의 문화가 종식된 지 불과 몇 백 혹은 몇 천 년 밖에 안 된다. 앞으로 몇 백 혹은 몇 천 년이 흘러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력(과학지식)이 발전해 현재 가장 똑똑한 과학자의 지식이 칠푼이 같은 인간에게도 상식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올 것이다.(사실 오늘날 우리가 품는 과학지식은 갈릴레오 수준 이상이고, 고대사회에서 최고의 천재였던 아리스토텔레스를 훨씬 능가한다). 그런 때가 되면, 주술에 의존하던 시대에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라는 관념을 폐기할 것이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테러를 저지르거나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는 따위의 무모함이 사라질 것이다.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하여 내 배를 채우기 위해 자기 양심을 저버리며 남을 해치는 ‘불편’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요컨대,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는 종식되고, 존 레넌의 훌륭한 노랫말처럼 인류가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세상이 올 것이다. 아마 지금부터 이렇게 되기까지는 지금까지 살아온 1만5천 년보다 훨씬 적게 걸릴 것이다. 나는 그 10분지 1의 기간 내에도 가능하리라 본다.

인간 사이에 굳건히 형성된 형제애(brotherhood of men)는 동물형제에 대해서도 전이가 이루어져 사진의 모습과 같은 천진한 만남이 일상화 될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지 그 역은 아니다. 고깃덩어리에 대한 식탐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인간이 인간고기에 대한 식탐을 근절한 것이 인간 역사에서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헬조선이라는 나라에선 아직도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에 대한 식탐을 끊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은 보릿고개로 상징되듯 식량자원이 극도로 빈곤했던 문화권에 속해 있었던 것에 연유한다. 지금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이 사회에서 개고기 문화는 향후 눈깜짝할 새(50~100년 정도)에 사라질 것이다.

나도 그런 한 사람이지만, 우리가 육식을 즐기는 가장 큰 이유는 직접 생명체를 해치는 불편함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의 말을 빌리면, 푸줏간(혹은 도살장) 주인의 자비심이 아닌 이기심 덕분인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손에 피 안 묻히고 고기를 뜯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백정은 인간 취급을 못 받았다. 소 잡는 사람은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그 짓을 할 뿐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쉽게 해결되면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만일, 일용할 치킨을 스스로 살육해서 먹어야 한다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채식주의로 갈아타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과도기를 지나 몇 천 년이 흐르면 인간 DNA에서 육식을 탐하는 유전정보는 말소될 것이다. 현재의 우리에게 ‘식인의 추억’이 없듯이 후대에는 ‘육식의 추억’도 사라질 것이다.

결론은, 모든 생명체가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세상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존 레넌의 훌륭한 노랫말에서 "온세상이 한가족처럼 산다" 할 때 그 속엔 미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포함될 것이다. 인간이 육식을 탐하는 것은 근절할 수 있어도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 먹는 것은 어쩌냐고? 그것도 먼훗날 인간역량이 발전하면 해결될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 문제는 아직 인간 세상에서 문제로 부각되지 않기에 해결할 필요도 없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인간은 항상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떠안는 법이다. 인간이 해결 못할 문제는 없다.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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