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들의 아름다운 노래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영 연합군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성공적으로 발을 내딛는다. 일명 허스키 작전으로 불리는 시칠리아 상륙작전은 1년 뒤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연합국에 승리를 안겨준 역사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연합군에게 시칠리아 섬이 점령당하자 이탈리아 내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쇼통치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어 갔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하원의장 디노 그란디는 국왕 에마누엘레 3세의 승인을 받아 무솔리니의 정부를 실각시키고, 무솔리니를 알프스의 한 산장에 연금시킨다. 이탈리아 국왕은 무솔리니의 후임으로 바돌리오를 내각 수반으로 선임하였는데, 바돌리오는 이탈리아의 추축국 탈퇴와 나치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항복 선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솔리니의 운명이 곧 독일의 운명이기도 했기에, 히틀러는 어떻게든 무솔리니 정부를 살리고자 했다. 그래서 특공대를 보내 산장에 갇힌 무솔리니를 구출하였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북부 지대에 이탈리아 사회공화국(RSI) 정부를 수립하였다. 즉 RSI는 히틀러의 도움을 받아 세운 무솔리니의 망명정부이자 나치독일의 괴뢰국이었던 것이다. 이에 자유와 해방을 염원하는 북부 이탈리아 민중들은 무솔리니의 괴뢰정부와 나치에 저항하여 투쟁을 벌였다. 이 저항군들이 우리가 ‘빨치산’이라 일컫는 사람들이다. 빨치산은 러시아어 발음인데, 영어로는 ‘파르티잔 partisan’ 이태리어로 ‘빠르띠쟈노 partigiano’로 발음된다.

 서구 진보운동 현장에서 인터내셔널가와 함께 애창되는 [벨라 챠오 Bella Ciao]는 이 이탈리아 파르티잔의 노래다. 만주에서 일제에 저항하던 우리의 파르티잔에게 일본군이 그러했듯이, 독일군은 잔인한 방법으로 이탈리아 파르티잔과 양민들을 학살했다. 파르티잔들이 독일 초소를 습격하여 타격을 가하면 독일군은 몇 배의 앙갚음으로 무고한 시민을 사살하고 생포된 파르티잔들을 잔인하게 고문했다. 이 노래는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산으로 향하기로 마음 먹은 한 청년의 실존적 번뇌와 비장한 결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챠오 챠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 침략군이 쳐들어오고 있었어요.

오 파르티잔이여, 나를 데려가 주세요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파르티잔이여, 나를 데려가 주세요 / 여기 있으면 죽을 지도 모르니까요

만일 내가 파르티잔으로 죽게 되면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만일 내가 파르티잔으로 죽게 되면 / 당신은 나를 묻어주셔야 해요

산에 나를 묻어 주세요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산에 나를 묻어 주세요 / 예쁜 꽃들 아래에 묻어 주세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말하겠죠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말하겠죠 / “저 꽃 정말 예쁘다”고 말예요.

이 꽃은 파르티잔의 꽃이랍니다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이 꽃은 파르티잔의 꽃이랍니다 / 자유를 위해 죽어간 파르티잔의 꽃이랍니다.

 

이태리어로 ‘Bella Ciao’는 남자가 여자에게 친근하게 건네는 인사법으로 “안녕, 예쁜 아가씨” 정도로 해석된다. ‘ciao’는 우리말의 ‘안녕’처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둘 다 쓴다. 인터넷에서 이 노래의 이 부분을 “안녕, 내 사랑”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별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쓰일 뿐, 문맥상 산으로 향하는 청년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말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벨라 챠오]는 이탈리아 농부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노동요였다. 원곡에서도 ‘벨라 챠오’란 말이 반복되는데, 전후 맥락상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의미는 아니다. 전통 노동요나 이 노래에서도 ‘벨라 챠오’는 우리 민요의 ‘쾌지나칭칭 나네’라는 말처럼 별 뜻 없이 반복되는 후렴구일 것 같다. 참고로, 구전 가요 [벨라 챠오]의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 일 하러 나가야 해요.

저 아래 들판에서 일해야 해요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저 아래 들판에서 일해야 해요 / 뙤약볕 아래서 말예요.

벌레와 모기에 물려가며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벌레와 모기에 물려가며 / 힘겨운 노동을 해야 해요.

감독이 회초리를 들고 서 있어요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감독이 회초리를 들고 서 있어요 / 우리를 다그쳐 일을 재촉해요.

돈은 눈꼽만큼 주고선 일은 죽도록 시켜요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돈은 눈꼽만큼 주고선 일은 죽도록 시켜요 / 우리 삶이 망가져가요.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그 날이 올 거예요 /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그 날이 올 거예요 / 우리가 자유롭게 일하는 날이!

 

파르티잔의 슬픈 사연으로 말하자면, 한국은 세계 게릴라전사에서 단연 으뜸에 해당하는 말 못할 곡절과 영웅적인 에피소드로 점철된 파르티잔 전사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겐 심지어 식자층에서조차 ‘빨치산’ 하면 ‘빨갱이’라는 낱말을 떠올린다. 지리산 한라산처럼 빨치산이란 낱말의 의미를 ‘빨갱이 치하의 산(山)’ 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지긋지긋한 극우적 반공이데올로기의 망령이 지배하는 사회의 유산이라 할 것이다. 빨치산 하면 빨갱이를 떠올리는 이 비지성적인 ‘낱말 연상 기제’가 우리 파르티잔의 비극적 역사를 웅변적으로 설명해준다.

공산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침략자들을 상대로 저항운동을 펼치던 파르티잔은 모두 영웅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파르티잔들은 ‘빨갱이’라는 라벨과 함께 비적(匪賊)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민족해방과 인간해방의 이름으로 산으로 향하는 파르티잔은 세 가지 각오를 해야 했다. 총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자신이 목숨 바쳐 싸운 이유로 삼은 동포들로부터 빨갱이 소리 듣게 되는 수모가 아닐까 싶다.

도무지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빨갱이’라는 단세포적인 호명(naming)이 생성·발전해온 토양은 말할 것도 없이 극심한 반공주의다. 단순무식한 인간일수록 간명하고 자극적인 수사법이 잘 먹혀드는 법이다. 이들에게 빨갱이가 왜 나쁘냐고 물으면 “그냥 나쁘기 때문에 나쁘다.”는 동어반복 외의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남한 대중들에게 이 묻지마 식 세뇌교육이 가능했던 것은 격동의 해방 정국에서의 무자비한 폭력 정치를 배경으로 한다.

서구 사회와 달리 이 나라에선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았다.(현재까지도!) 전략적 요충지인 한반도의 이남에 미국이 바라는 지상과제는 공산화를 막는 것이었다. 미군정은 남한 내에서 좌익세력의 씨를 말리고자 했다. 미군정의 이러한 입장은 친일세력들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미군정과 마찬가지로 이승만 정권도 친일세력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좌익소탕을 감행했다. 특히,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곳곳에서 양민학살을 자행한다. 이 부도덕한 지배세력에 저항 의지를 품는 청년들이 산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건만, 압제자들은 이들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했다. 그리고 누구든 이들을 약간이라도 비호하거나 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거창에서 문경에서 대구 근교 경산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골짜기로 끌려가 학살되었다. ‘골로 간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선량한 대중들은 골로 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빨갱이들을 절대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강력한 학습을 받았다. 자신이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빨갱이에 적개심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파블로프의 개가 수차례의 조건화 학습 과정을 거쳐 종소리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입에 침을 흘리는 것처럼, 이 나라 백성들에게 좌파적 사상은 곧 ‘골로 감’을 의미하는 조건반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단세포적인 학습의 효과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친일 장교의 딸이 대권을 장악한 것은 자기 정적에게 '빨갱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가능했다. 

구린 과거를 가진 인간들이 한국 사회에서 비빌 유일한 언덕이 반공주의라 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projection)’라는 기제로도 설명이 된다. 즉, 인간은 항상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상대의 흠집을 내려 애쓰는 법이다. 친일세력과 대립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력한 흠집 내기 전략이 ‘뺄갱이’라는 호명인 것이다. 이 이치는 룸펜 양아치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양아치들은 범죄자 콤플렉스 외에 못 배운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학력 콤플렉스’까지 지니고 있다. 박정희 집권기에 중앙정보부는 이들의 이런 폭력성과 콤플렉스를 적절히 이용해 빨갱이 소탕작전을 벌이기도 했으니 이것이 유명한 ‘녹화사업’이다.

독재정권이 녹화사업을 진행하게 된 배경은 부도덕하다 못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은 종신집권을 위해 세계헌정사에 유례가 없을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민적 저항을 무마시킬 목적으로 생뚱맞게 ‘통일의 의지’를 천명한다. 그전까지 북한 공산당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분쇄 또는 박멸의 대상이었다. 이런 박정희가 유신 이후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할 목적으로 이후락을 북으로 몰래 보내 김일성을 만나게 한 뒤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앞으로는 북한공산주의자들과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 보이면서 뒤로는 남한 내의 대규모 좌익소탕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주로 파르티잔 출신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대상으로 벌였는데, 교도소내의 흉악범들을 이용해서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비인간적 테러와 고문을 통해 강제로 전향서에 도장을 찍도록 했다. 웃지 못 할 비극은 이들 단세포적 살인병기들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빨갱이들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자기 심연에 잠재해 있는 학력 콤플렉스와 범죄자 콤플렉스를 애국심으로 승화시키는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김하기의 흥미로운 소설 <완전한 만남>에 이런 이야기가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제주도 들녘 곳곳에서 펼쳐 있는 유채꽃을 보면서 4.3을 생각한다. 필경 이 아름다운 꽃들은 파르티잔들의 주검을 자양분으로 그렇게 화려하게 만발한 것이리라. 그들의 피와 살이 거름 되어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이리라. [벨라 챠오] 노랫말의 글귀대로 한라산 중턱에 핀 아름다운 유채는 이름 모를 파르티잔의 꽃이리라.

[벨라 챠오]는 수많은 가수에 의한 수많은 버전이 있는데,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고런 브레고비츠(Goran Bregović)의 라이브 영상이 좋다. 이탈리아와 인접한 유고슬라비아에서도 파르티잔들이 독일 침략군을 상대로 저항운동을 펼친 바 있다. 그런 이유로 대중음악가이지만 발칸반도의 뮤지션 고런 브레고비츠의 연주에선 파르티잔의 아우라가 느껴져서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OyMA84-mowI

 

엊그제 우리 시대의 얼마 안 남은 파르티잔 유영쇠 선생님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

이 아름다운 음악을 선생의 영전에 바친다.

저 세상에 가셔서는 해방의 자유를 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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