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문화유산 답사기

'구미하면 생각나는게 뭐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집에서 문득 그 곳으로 가고 싶어졌고 타지역에서는 구미하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구미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를지, 구미 하면 금오산,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 새마을 운동 말고는 뭐가 있을지 알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도 생각해 보았다.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구미에 유명한 문화유산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비록 회사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학시절에는 구미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간간이 왔었고 사료 조사도 한 적 있기에 구미의 문화유산을 찾아다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집에서 가까운 '황상동마애여래입상'이다.


불적 관광자원화 아쉬워

옥계동(구포동)에서 인동으로 넘어가는 석현(石峴)이라 불리는 고갯길을 넘어 우측 빠지면 암벽에 7.3m 제법 큰 규모의 마애여래입상이 나온다. 이 마애불은 보물 제1122호 지정되어 있어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겠으나 구미시민 대다수는 이 불상의 존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구미시민조차 잘 모르는 문화유산을 어찌 타 지역 사람들이 알 수 있으랴~ 구미에는 해동최초가람인 도리사도 있는데 대한민국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자나 관광객이 많지 않다. 구미시의 불적 관광자원화가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옥계4거리에서 인동4거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석현(石峴) 이라 불리는 고갯길이 나오는데 여기를 넘으면 바로  <구미황상동마애여래입상> 안내가 나온다.




이 마애불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으나 불상 옆에는 마애사라는 작은 암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불상은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큰 규모로 암벽전면에 약7.3m 높이로 조각되었다. 암벽 위에는 별도의 판석을 얹어 불상 머리 부분을 덮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야외에 노출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머리에는 소발과 큼직한 육계,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었다. 불상은 바위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조각하여 전체적으로 율동감이 느껴진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양식이 혼재 되어있으나 통일신라의 세련된 균형미는 다소 세퇴하하여 10세기 이후(고려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처음 봤을때는 다소 거친 느낌이었으나 자꾸 보다보니 둥글둥글 나름의 균형미가 느껴지는것 같았다.
 

수인(手印)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손모양이긴 하지만, 양손을 명치 끝 부근에 모으고 오른손으로 왼속 끝을 잡을듯한 손모양을 지으면서 각기 가볍게 주먹쥐어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굽힌 모양을 한 설법인(說法印) = 전법륜인(轉法輪印)으로 보인다.






철저한 보강 필요

거의 방치되다 시피한 마애불은 몇해전 훼손과 안전상 위험이 있어 철재 구조물과 비를 막을 수 있도록 보완되었다.

측면과 후면을 보면 보완되기는 했으나 다소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는데, 일제 시대의 석굴암 복원에서 보듯이 어설픈 조치는 오히려 문화유산에 해가 될 수 있으니 철저한 사전 조사와 보강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옥계4거리에서 인동4거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석현이라는 고갯길이 나오는데 그 고갯길을 넘으면 BEONE-CNR이라는 회사와 황상동마애여래입상 안내간판이 나온다.

인동4거리에서 옥계 사거리 방향으로 석현 고갯길을 넘어가면 구미척화비도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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