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잡대 청춘에게 고한다

이 글은 수능성적 카스트의 하위 계급에 속하는 학생들을 위한 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SKY를 비롯하여 소위 명문대 학생이거나 자신은 수능 카스트에서 나름 괜찮은 계급에 속한다고 자뻑하시는 분들은 미련 없이 ‘Back'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제 30대 초중반입니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나름 위안해 봅니다. 우선 제 얘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저는 4학년 2학기 때, 지금은 조금 밀리지만 그래도 한 때 대한민국 최고였다는 유명 전자회사에서 6개월짜리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대기업 직원으로 생활하다 1년 반쯤 지난 후, 나름 뜻한바가 있어 한 컨설팅회사로 옮겨 컨설턴트로 일하게 됩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잘 아는 유명 증권회사에서부터 제조 대기업, 금융, 공공기관 등을 컨설팅하고, 강의도 곧잘 하러 다녔습니다. 수원 쪽에 있는 어느 대기업에 강의를 갈 때는 기사가 딸린 자동차를 보내주기도 했었죠. 아, 동시에 유명한 중견 프랜차이즈 업체의 자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 때 제 나이는 고작 서른 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고 지금은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에서 임직원들의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저의 자랑 같지 않은 자랑에 거북하기도 하시겠죠. 그런데 나이에 비해 화려해 보이는 이런 경력을 말하면, 제가 유명한 일류 대학 출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지방에 있는 잡스러운 대학, 일명 지잡대 출신입니다. 안동이라는 소도시 구석에 위치하고 있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대기업 취업은 꿈도 못 꾸는 학교입니다. 국립대라 등록금이 싸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죠. 그런데 이렇게 싼 등록금도 낼 돈이 없어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3개씩 해야 할 정도로 매우 가난한 집안 환경이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할 땐 면접에서 1등을 하고도 출신학교 때문에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그래서 이 그룹 계열사 보험은 절대 가입 안합니다.) 이런 일이 저에겐 너무나 큰 절망이었습니다. 취업 후에도 학벌로 저를 판단하는 편견과 힘겨운 싸움을 계속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한 고민과 원망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렇게 고민과 원망으로 가슴이 사무치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학벌 위주의 세상을 탓하십니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집안을 탓하십니까? 다 맞습니다. 저 역시 학벌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바뀌어야 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능력보다 학벌을 중시하는 세상을 원망하며 술자리에서 분노를 토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정말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혹 자신의 노력 부족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구실로 이 사회구조의 비합리성을 사용하고 있진 않습니까?

우린 먼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화려한 학벌의 그들보다 뒤처져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장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악을 쓰며 노력해야 합니다. 10대 시절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그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몇 배 더 노력해야 합니다. 혹자는 저에게 운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운도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저는 지금 사회구조가 이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분들을 폄하하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라도 자신의 노력 부족을 사회구조 탓으로 합리화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입니다.

한비자가 얘기했습니다. ‘사람이 모두 잠들었을 때는 누가 맹인인지 알 수 없고, 모두가 침묵할 땐 누가 벙어리인지 알 수 없다. 나중에 깨어난 뒤 사물을 보게 하고 물음을 통해 대답을 하게하면 벙어리와 맹인을 가려낼 수 있다. 어느 말이 명마인지 알려면 달리게 해 봐야하고 진짜 보검을 감별하려면 베어봐야 한다.’

언젠가 세상이 여러분에게 달려보라고 하고 자신만의 칼을 꺼내 베어보라고 할 때가 분명히 옵니다. 그 때를 위해 칼을 갈아야 합니다. 취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길을 가던 자신만의 내공을 쌓으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남들처럼 번듯한 대기업에 취업을 하든, 음악을 하든,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든......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우리의 꿈을 위해 더 힘들게 노력하고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사회구조의 벽은 너무나 높습니다. 사실입니다. 부모님과 주변 시선, 현실의 벽은 너무나 견고합니다. 꿈을 얘기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인 것도 맞습니다. 부끄러운 사회이고 바꿔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노력부족을 합리화시키고, 세월이 지난 후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푸념하는 것은 더 부끄럽습니다. 진짜로 끝까지 부딪히다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한 사람의 진실 된 경험은 사회를 발전시키지만 자신을 합리화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의 경험은 사회를 고착시킵니다.

아직 세상을 탓하기에는 여러분들의 청춘이 너무나 눈부시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글은 과거 한 지방대학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rocky8088@naver.com)

박기철 기자는 뉴스풀 협동조합 조합원이며 지역밀착형 밴드 '살인배추'의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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