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꼬맹이 하나가 교무실 문을 빼꼭 열고는 이리 저리 둘러보고서 하는 말,
“선생님 없다!”

이윽고 뒤에 있던 아이도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고선,
“진짜네!” 한다.
 
교무실에 사람이 세 명이나 있었는데, 교감선생님과 교무행정사 그리고 나는 모두 ‘선생님’이라 불리어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이들 눈엔 우리가 선생으로 안 보이는 것일까? 두 번째 아이의 멘트 ‘진짜네!’는 우리에게 확인사살이었다.
 

 

그렇다. 1학년 아이들의 관계망 속에 선생님이란 존재는 자기 담임선생님이 유일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아저씨, 아줌마’인 것이다. 50 넘은 남교사는 머리 염색 안 하면 ‘할아버지’ 소리 듣는다.

1학년 아이들 특유의 이 '자기중심주의' 때문에 1학년 담임교사는 힘들다. 이 아이들의 눈엔 자기 선생님이 전부이다. 지나치게 교사에게 집착하는 이들의 행동양식은 거의 스토커를 방불케 한다. 문제는 그 스토커의 수가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이 교사를 힘들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자기 선생님밖에 모르는 1학년 아이들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1학년 담임교사는 ‘가장 위대한 교육자’로 우뚝 설 수 있다.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그는 멀쩡한 아이를 바보로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또래집단에선 바보 취급 받는 아이를 자기 교실에서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교실의 피그말리온’이란 은유법이 조금도 과장이 아닌 이 절대권력자가 “교육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는 극단적으로 악한 범죄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극단적으로 선한 성직자가 될 수도 있다.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첩함이니, 누군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은 이런 뜻이리라.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미성숙한 초등 아이들에게 미치는 초등교사의 영향력을 중요시 하여 교사의 권위를 절대적 위치에 곧추세운다. 그래서 1학년 때 담임교사가 8학년까지 간다고 한다.
 
그러나 사물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순기능과 역기능이 함께 가는 법이다. 모든 교사가 다 유능하고 선량하지는 않다. 숨 막히는 교실살이를 아이들이 버텨내는 것은 1년만 참으면 이 지옥같은 세월을 벗어날 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인데 6년을 견디라면 그건 ‘죽음’이 아닐까?
 
그런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이라는 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던가 잠시 성찰해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사가 아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생각해 본다. 교사는 연예인이 아니다. 아이들의 친구도 아니다. 나는 아이들의 친구 같은 교사가 될지언정 차라리 꼰대 같은 선생으로 남겠다. 존경과 인정은 다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교단의 풍토가 존경이 인정에 밀려나는 쪽으로 흐르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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