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1)

흔한 말로 교육의 본질은 사랑이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직이 성직인지는 모르지만 교사는 성자일 수 없습니다. 교육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교사는 보통의 사람들이 품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그대로 갖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교육학 서적이 아동의 본성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건 간에 교사는 현실 속에서 수많은 악동을 만나게 됩니다. 교사의 일상은 이들과 벌이는 치열한 전투로 점철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이상과 현실의 이 같은 괴리에서 파생되는 교육계의 오랜 이슈가 체벌문제죠.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소한의 체벌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체벌은 그 자체로 교육적 정당성을 갖지 못할뿐더러 지금의 사회 분위기상으론 교사-학생 간의 갈등사태에서 교사의 처신이 그리 자유롭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예전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정말 다루기 힘듭니다. 장난치는 아이, 거짓말 하는 아이, 서로 싸우는 아이, 숙제 안 해 오는 아이 등 여러 종류의 말썽꾸러기들을 대하면서 교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끓어오르는 부아를 참아내야 합니다. 이런 아이들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저 자신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저는 후배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을 사랑하기”보다는 “아이들을 덜 미워하기”를 권고하고자 합니다. 이 글에서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가 돼서 아이들을 덜 미워하는 요령이나 지혜에 대해 논해보겠습니다.

아기를 키워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아이가 울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누운 자리가 불편하다거나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플 때 그리고 어머니와의 신체접촉이 필요할 때 아이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기의 생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라도 갖고 있는 어머니라면 기저귀를 갈아 주거나 안아 줌으로써 아이를 진정시키지, 아이가 우는 것을 아이의 자질 문제로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교사가 돼서 어린 학생들의 특이한 행동양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을 덜 미워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교사는 아동을 이해하는 만큼 덜 미워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네들이 특별히 장난질이 심한 경우에 어떤 규칙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장난질’이란 어른들의 관점에서 그렇게 비쳐질 뿐 아이들의 입장에선 그저 몸을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일 뿐인데 이 현상의 이면엔 어떤 과학적 필연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비 오는 날에 아이들이 특별히 소란합니다. 40분 수업시간에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쉬는 종이 치면 아이들은 많이 움직입니다. 건강한 아이일수록 많이 움직이는데 어른들은 보통 이걸 '번지럽다'고 표현하죠.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에선 비가 와서 밖에 못 나가니까 실내에서 갑갑증을 해소하려고 많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또한, 비오는 날은 다른 때에 비해 기온이 내려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많이 움직임으로써 추위를 이겨내려 합니다.
비가 와서 습도가 높아지면 소리가 보통 때보다 증폭되어 교실이 더욱 소란해집니다. 교사의 입장에선 아이들이 발생시키는 소음공해에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어떤 교사는 흡사 난동을 진압하려는 듯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또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려 애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처해 스트레스 받은 교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인내심’이 아니라 "아동 행동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라는 것이 이 글의 요지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생리학에서 말하는 '항상성'이란 개념을 골자로 합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항상성(homeostasis)이란 ‘자동정상화장치’라고도 하며 homeo(=same)와 stasis(=to stay)의 합성어로서 외부환경과 생물체내의 변화에 대응하여 순간순간 생물체내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현상을 말하며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호르몬)의 상호협조로 이루어집니다.

항상성의 가장 흔한 예는 포유류와 같은 온혈동물들이 체온을 일정하게(same) 유지하기(to stay) 위해 추울 때 몸을 떠는 행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가 올 때 아이들이 특별히 더 번지럽게 행동하는 이유는 그들이 교사를 괴롭히려는 악동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지극히 원초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반사적 행위인 것입니다. 좀 더 실감나게 말하면, 아이들의 장난질은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비 오는 날 외에 1년 중 아이들이 가장 어수선할 때가 있습니다. 가을을 지나 초겨울에 접어들 때 그러합니다. 점심시간 급식 순서를 기다리며 급식소 바깥으로 쭉 늘어선 행렬 속에서 앞 사람 등을 찔러 장난을 거는 아이나 그에 똑같은 장난질로 응답하는 개구쟁이들의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상황에 교장(교감)선생님께서 눈살을 찌푸리시고 급기야 직원협의회나 부장회의에서 ‘생활지도’에 관한 특명(?)이 떨어지는 것도 대개 이 시기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교장(교감)선생님들께선 이 시기에 아이들이 특별히 소란스러운 것은 담임교사가 생활지도를 잘못해서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추운 겨울 식당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교육적으로 문제의식을 품어야 할 현상입니다. 이 상황에서 앞의 아이를 집적거려 괜한 장난을 유발하는 녀석의 행위는 추위에 몸을 바르르 떠는 강아지의 반사적 몸부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우리는 아이들을 덜 미워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이해력을 갖게 되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건강해지고 무엇보다 교육자로서의 우리 인격이 한층 고양될 겁니다.

 

 


침대가 과학인지는 모르지만, 교육은 과학입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좀 더 현실적인 어법으로 적자면, 아동이라는 인격체를 이해하는 만큼 그들에게 화를 덜 내고 덜 미워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발견을 통해 아이들에게 예전보다 덜 억압적인 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내 그늘 속에서 아이들이 약간은 더 행복한 교실생활을 영위해 갈 것이라 자부해봅니다.



글쓴이 소개) 
현재 칠곡 다부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
1988년부터 경북의 여러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오고 있고, 교육 문제와 문화에 관심이 많음.
전교조 활동가로서 경북지부 교육국장과 칠곡지회장 등의 역할을 맡아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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