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왜‘곡’이 심한 공포영화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영화계에서 폭풍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곡성’을 보고 글을 남겨본다.
이 영화에 대해,
“재밌냐?”는 물음엔 “그렇다”고, “괜찮냐?”는 물음엔 “글쎄”라 답하겠다.
‘곡’성은 왜‘곡’이 심한 공포영화다.

[1] 국수주의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일본인 악귀가 왜곡 덩어리다.

왜 일본인 악귀가 한국의 산골짜기에서 그 짓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일본에서 가까운 경남 바닷가 마을도 아닌 전남 곡성에서 말이다. 영화의 배경이 전남 곡성(谷城)인데, 영화 제목 곡성의 한자는 곡소리라는 뜻의 哭聲이다. 곡성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영화 보면서 그들의 곡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인 무당이 무슨 식민지 개척의 목적으로 조선에 진출한 사례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귀신이란 게 있지 않기 때문이고 또 설령 있다 하더라도 저거 나라 평정하기도 바쁠텐데 왜 남의 나라에 와서 뻘짓 하겠는가?

조선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다문화 시대이니, 남의 나라 귀신이 입국하는 건 좋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그 외래 귀신의 국적이 왜 하필 일본인가? 이건 명백한 국수주의다. 안 그래도 최근에 [귀향]이라는 영화 때문에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가 불편한데, 이젠 귀신까지도 한국 사람들에게 해꼬지 하는 플롯 설정은 너무 유치하다.

만약 일본판 [곡성]으로, 한국 귀신이 현해탄 건너 가서 저렇게 깽판 치며 선량한 일본사람 다 죽게 만드는 내용의 영화가 나온다면, 우리가 어떤 느낌으로 그 영화를 볼까?

그나마 막판에 한국 무당 일광(황정민 분)이 경찰 아버지(곽도원 분)에게 “점괘를 잘못 봐서” 애꿎은 상대(일본 귀신)를 타겟 삼았다며 정정보도를 낼 때는 속으로, ‘아, 감독이 그래도 양심은 있구먼’ 했다. 양심이라기보다, 최소한 ‘조잡한 한일감정은 피해가는구나’ 생각했건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일본 귀신은 마지막 장면에서 진짜 무서운 악귀의 모습으로 관객에게 써늘한 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 가공할 엔딩 씬은 아마도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문제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감독의 연출 역량에 경의를 표한다.

 

황정민이 일본 귀신과 ‘굿 대 굿’으로 맞짱 뜨는 장면(영화 끝날 때 알게 되지만, 황정민이 살을 날린 대상은 일본귀신이 아니었다)은 거의 한일축구의 명승부전인 도쿄대첩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곡성대첩’에서 결과는 너무 황당했다. 한국무당이 일본귀신과 결탁해서 주인공 가족을 비롯하여 마을사람들을 몰살시킨 것이다. 이거 야쿠자에 이어 무당까지 한일합작이니, 다문화시대의 샤머니즘의 진수를 본다고나 할까...

영리한 감독이 서스펜스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배치한 마지막 전술은 끝이 아닌 듯한 상황에서 막을 내리는 설정이다. 이 순간 관객은 ‘선과 악’이라는 거대한 이분법의 갈림길에서조차 황정민과 천우희 가운데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헷갈려 한다. 답은, 믿었던 황정민이 배신을 때린 것이었다.

그 결정적인 증거를 영화 중간에 살짝 흘리는데 그게 너무 웃기는 것이었다. 황정민이 바지를 갈아입을 때, 보여 지는 빤쭈... 일본 전통 속옷(훈도시)이다. 영화 초반부에 일본귀신이 산속에서 입은 것과 똑같은 그것이다. 그런데, 황정민이 왜 일본 빤쭈를 입고 있는 것인지? 지금도 나는 모르겠다. 민족주의에서 화냥끼로 왔다 갔다 하는 이 영화, 호러물이 아니라 코미디인가 싶다.


[2] 퓨전 엑소시즘

아무래도 이 영화는 ‘다문화 시대의 샤머니즘’이 주제가 아닌가 싶다. 감독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고 말하겠지만 내가 볼 때 그렇다. 이 조잡한 ‘다문화 코드’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보겠다. 그것은 이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한데, 내가 볼 때 이 부분은 외국 공포물을 패러디 혹은 표절의 흔적이 엿 보인다.

심리학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만날 때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이를테면, 마음씨 좋게 보이는 이방인과 악수를 건넬 때 그의 손이 의수라면 소스라치게 된다. 공포 영화의 방정식이 이를 기본으로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한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주인공 경찰의 어린 딸이 아비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라 하겠다. 이 꼬맹이는 일본인 악귀 다음으로 이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공포의 화신’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그 시츄에이션 아닌가? 맞다. '엑소시스트', '사탄의 인형' 패러디다.

 

그나저나 쪼끄마한 녀석이 욕을 어찌 그리 잘 하냐? 그것도 지 애비 보고 말이다. 영화를 재밌게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는지는 몰라도, 대한민국 초등교육자로서 좀 거시기 하다. 초딩 여자 아이가 어머니와 할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는 설정도 그렇고.(살인 장면은 안 나온다. 몽타주 기법으로 학살 뒤의 핏빛이 낭자한 현장을 카메라가 응시한다)

윤리적 차원을 떠나 어린 아이가 어른 아니 부모를 죽이는 신들림의 행태는 한국 고유의 것이 아니다. 이건 물 건너온 것이 아닌가 싶다.

계속해서, 관객의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배치로, 감독은 저 태평양 건너 중앙아메리카의 귀신(=좀비)까지 불러온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장면이 아닌가 싶은데, 산속에서 만난 움직이는 시체를 향해 삽으로 곡괭이로 머리를 찍어대는데 절대 안 죽는다. 그래서 너무 무섭다. 엄마야!

국산 귀신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문자 그대로 신출귀몰할 뿐, 느린 걸음걸이로 흐느적거리며 총 맞아도 안 죽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건 명백한 ‘좀비’다. 즉, 한국 샤머니즘에선 절대 등장할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이 장면은 좀비가 등장하는 어떤 영화의 씬을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 일본 + 아메리카 = ???

다문화 시대의 총아로 “퓨전 엑소시즘”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려는 것일까?

도대체 한일합작도 모자라, 태평양 건너온 귀신까지 설정하니 이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영화라는 게 플롯의 일관성이나 개연성을 싹 무시하고 그저 재밌게만 찍으면 그만인가?
 

[3] 가부장적 가족주의

‘성평등’이란 차원에서, 이 영화는 지독한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유감이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 주인공이 평소엔 게으르고 무능하고 비겁한 행보로 일관하다가, 자기 가족이 피해를 입으니 갑자기 영웅적인 행동주의자로 돌변한다. 경찰 마누라는 그저 무식한 시골 아줌마로 자기 남편 밥이나 해주고 성욕 배설 대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선한 여자귀신(천우의 분)은 남성인 한국 무당과 일본 귀신에 비해 존재감이 확연히 떨어진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인터넷에서 영화 평을 검색하여 읽어 봤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호평을 주는 반면 관객들 가운데 실망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글 쓰는 나도 그 한 사람이다. 나는 영화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평이 엇갈리면 전자의 시각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호평을 남겼다는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더욱 고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품는다. 사춘기적인 호승심이 발동해서가 아니라 어떤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서다.

이 영화에 대한 전문가의 호평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영화 보면서도 ‘범상치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두 악의 화신 일본귀신과 꼬맹이의 연기력은 정말 대단했다. 이 두 연기자가 내뿜는 악마적 이미지는 외국의 유명한 여느 공포영화에 견주어 손색없다고 생각한다.

호러물인 만큼 심리적인 부분이나 비쥬얼한 부분(이미지)이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전문 평론가들이 뭐라 말하건 간에, 철학적, 사회학적,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이 영화에 호감을 품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귀신영화’ 자체가 코미디라 생각한다. 사실, 무섭고 경악스러운 것은 현실 자체가 아닌가? 40분마다 한 명씩 자살하는 이 사회가 호러 천국 아닌가?

인간의 열정과 관심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어서 “초자연적인(말도 안 되는) 무엇”에 공포 에너지를 다 쏟으면 정작 우리 이웃이 겪고 있는 비참하고 잔인한 리얼리티에 대해선 무관심 해지는 역기능이 초래되기 때문에 나는 ‘곡성’ 따위의 공포영화에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다.

모든 예술작품은 대중에게 일정한 교육적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 까닭에, 예술작품은 “사회적 책무성”이란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흥미를 높이기 위해 유능한 기법으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공포영화가 훌륭하다면, 그게 이수만이가 찍어대는 쓰레기 K-팝과 뭐가 다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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