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이 생각하는 상징 1위

오륙도 등대는 한반도의 관문이자 세계 5대 항만의 하나인 부산항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이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가 나오는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아니더라도 오륙도는 부산의 상징 중 상징이다. 이런 부산의 대표적 상징인 오륙도에 등대가 개설된 것은 1937년 11월이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고 부산의 관문인 오륙도 앞으로 배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자 등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부산항을 드나드는 어떤 선박도 오륙도 등대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등대가 축조되자마자 부산항의 상징물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애초에는 높이 6.2m로 건립되었다. 70년대에는 벽돌건물이 있었고 옥상은 강판 지붕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등대가 낡아 보수가 필요하자 현상설계 공모를 통하여 1998년 12월 웅장한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등탑의 높이만 27.5m이고 등대섬 자체가 해발 28m이니 전체 56m의 등대섬이 된 것이다.
오륙도의 물목은 조류가 극심한 곳으로 예로부터 사고가 잦았다. 오륙도는 보기에는 풍광이 좋은 명승지이나 예전 뱃사람들에게는 풍선을 단박에 침몰시킬 수 있는 암초일 뿐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공양미를 받치는 해신제사를 올려왔다. 또 오륙도공원 승두말에서 이어진 이기대 해안에는 부처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의 농바위라는 기암이 있다. 심지어 이 자연석조차도 지나는 배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돌부처 바위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오륙도 등대는 이 같은 암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책이었던 셈이다.


오륙도
 



부산시에서 조사한 부산시민이 생각하는 부산시의 상징으로 1위 오륙도(15.8%), 2위 갈매기(13.9%), 3위 부산타워(9.0%)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오륙도는 명승 제24호, 부산문화재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으며, 년간 10만명의 방문객이 내방하는 부산의 자랑 10가지의 하나로, 해운팔경의 하나인 오륙귀범(五六歸帆)으로 알려져 있다.
오륙도는 12만년전까지는 승두말에서 이어진 하나의 조그마한 반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후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에 부서지고 밀려나가는 침식작용에 의해 지금과 같은 대여섯개의 섬으로 분리된 것이다.

오륙도는 일본인이 쓴 초량화집(草梁話集)에는 용대(龍臺)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용두촌(龍頭村--용당동의 어느 마을로 추정)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그 용두천 앞바다에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한 전설로는 그 용두촌에 가나진(加那辰)이라 하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 사람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는 것이다. 용두촌이나 용대는 일본인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그 일본사람이 우리의 전설을 수집해서 쓴 것으로 여겨진다.
오륙도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이 다섯으로 보였다가 여섯으로 보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다섯으로 보였다가 여섯으로 보이는 것은 용호동의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방패섬과 솔섬의 중허리가 밀물일 때 물이 들면 두 섬으로 나누어져 여섯 섬이 되고 썰물일 때는 물이 빠져 하나로 붙어서 다섯 섬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오륙도의 유래를 밝힌 내용이 있다.  동래부지(東萊府誌) 산천조(山川條)에는, "五六島(오륙도) 在絶影島東(재절영도동) 峰蠻奇古(봉만기고) 列立海中(열립해중) 自東觀之(자동관지) 則爲六峰(칙위륙봉) 自西觀之(자서관지) 則爲五峰(칙위오봉) 故名之以此(고명지이차) 第三峰(제삼봉) 有唐(유당) 將萬世德碑(장만세덕비)"

"오륙도를 절영도(絶影島) 동쪽에 있다고만 하고 봉만(峰蠻)이 기고(奇古)하여 바다위에 나란히 섰는데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그리 이름 하였다"고 한다.

섬이 다섯으로 보였다가 여섯으로 보였다 하는 것은 보는 위치에 따라 한 섬이 가려져 보였다가 보이지 않았다가 한다는 것이다. 또 동래부지에 오륙도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래부지가 편찬된 1740년 이전부터 오륙도라는 이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오륙도 근처는 좁은 목이 되어 조류의 흐름이 빨라 뱃길로는 위험한 곳으로 옛날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들은 무사를 빌기 위해 공양미를 던져 바다 신을 달랬다고 한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자취가 끊이지 않았으며 오륙도를 소재로 한 한시가 많이 남아 있다. 오륙도를 현대적 감각으로 잘 나타낸 글로 노산 이은상의 시 ‘오륙도’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륙도는 부산만 북쪽해안. 승두말로부터 남남동방향으로 가지런하게 뻗어 있는 우삭도(32m), 수리섬(33m), 송곳섬(37m), 굴섬(68m), 등대섬(28m)으로 불리는 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우삭도는 너비 1m의 해식동굴이 형성되어 방패섬과 솔섬으로 분리되어 가고 있고, 유인도인 등대섬을 제외하면 모두 무인도이다.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방패섬은 방패처럼 생겨 세찬 비바람을 방패처럼 막아준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고, 솔섬은 그섬에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생긴 이름이다. 송곳섬은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고, 수리섬은 지난 날 갈매기를 포획하기 위해 독수리가 모여들어 붙여졌다 하는데 당나라 장수 만세덕(萬世德)의 비(碑)가 있었다하여 수리섬을 비석섬이라고도 했다.
굴섬은 가장 큰 섬으로 섬 안에 굴이 있어 천장에서 방울방울 흐르는 물이 한사람 몫의 음료수가 될 만하고 가마우지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등대섬은 위가 평평하여 밭처럼 생겼다하여 밭섬이라 했다가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는 등대섬이라 하게 되었다.



오륙도 등대


용호동 오륙도 해맞이공원 남쪽 해안 승두말에는 오륙도 유람선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배를 타면 오륙도와 인근 방파제에 내릴 수 있다. 단순 유람객은 별로 없고 대부분 낚시꾼들이 이용한다. 해운대에서도 관광유람선이 운항하지만 등대섬이나 오륙도에 내릴 수는 없다. 유람선선착장에서 등대섬까지 5분이면 도착한다. 등대섬선착장에 내리면 급격한 경사 70도의 벼랑에 층계를 만들고 난간을 세웠다. 잿빛 바위에 굽이굽이 걸쳐 있는 하얀 난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다가온다. 올라가다 굽어보면 흰 난간과 푸른 바다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끝에 ‘부산지방해양항만청 오륙도 항로표지관리소’라는 나무문패를 달고 있는 오륙도 등대 입구가 나온다.


오륙도 등대는 ‘바람 길이 열린 벼랑위의 하얀 집’이다. 바람 길이 뚫린 건축물 덕분에 어디에 서던 바다가 시원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경관은 좋을 줄 모르지만 등대섬은 흙 한줌,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혹독한 환경의 바위섬이다. 이곳에도 생물이 살고 있다. 바로 항로표지원(등대지기)과 강아지이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강아지는 뭍의 개들과 그 성질이 다르다. 외로움을 타서인지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가워하고 따른다. 등대에 잠시 머무는 동안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 다닌다. 마지막 떠나는 선착장까지 따라 내려와서 배웅을 한다. 배낭에 들어 있던 과자 한 움큼 던져주고 짧은 시간 느꼈던 사람 냄새를 잊기를 바랐다.

 
오륙도 등대: 부산시 남구 용호동 941번지




< 기사 및 사진제공 : 도영주 (현)구미치과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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