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인생에 충고질은 폭력

예전에, 그러니까 서울생활 할 적에...

학교 다닐 때도 말 안 듣더니 졸업해서는 더더욱 말 안 듣던 한 기수 후배 하나가 있었다. 이 친구는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에이, 선배!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요 뭘...’이라며 이제는 아주 맞먹자는 태도였다. 이십대 후반에 말이다. (하하하, 늙어가는 처지래!).

나는 이래 뵈도 ‘하극상’ 이런 거 안 좋아한다. 못 참는 사람이다.
(물론 ‘형, 아우’나 선후배 관계를 애초에 설정하지 않았다면 나이에 관계없이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후배는 만화가 하겠답시고 돌아다니는 나를 볼 때마다 충고질이었다. 나에게 게임제작에 필요한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내가 그리는 그림 말고는 못 그린다고 했더니,

“선배, 만화가는 말이에요. 어떤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어야 되요. 클라이언트가 요구할 때는 말이에요...”

후배는 ‘클라이언트’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이 새끼가 가만히 놔두면 이제는 아주 선배한테 선배노릇을 할 것 같아서,
“괜찮다. 나는 알아서 잘 산다.”
그랬더니, 드디어 나에게 물어본다. 얼마 버냐고.

나는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에게, 남들도 있으니 가까이 다가오게 하곤 귀에다 속삭였다.
‘한 오륙백?!^^’ 그리고 저 이모티콘처럼 웃었다.
후배는 웃지 않았고, 그 날 이후 나에게 충고질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물론 ‘1년에 한 오륙백?!’에서 ‘1년에’를 빠뜨리긴 했지만,
남의 인생에 충고질은 폭력이므로 충고질을 막은 것만으로도 선배로서 보람을 느끼는 바이다.
안 그러면 더 얼마나 돌아다니며 충고질하고 다니겠는가?

살다보면 이런 저런 모임에서 이 후배를 가끔 만나기도 하는데,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는다.

만화가 김수박 / 뉴스풀협동조합 조합원 / [아날로그맨], [오늘까지만 사랑해], [내가 살던 용산](공저),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 사람 냄새], [만화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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