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걸린 문제다

아내는 아주 옛날부터 주성치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부터 워낙에 주성치 매니아였다고 한다. 주성치와 자신의 나이 차이도 계산해보았다고 한다. 만약 주성치가 청혼한다면 결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인정한다. 누구나 그렇게 간절히 좋아할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도 주성치를 좋아한다. 사실, 아내보다 내가 주성치를 더 많이 좋아할지도 모른다. 아내는 결국 주성치에게 청혼 받지 못했고, 주성치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웃긴 나와 결혼했다. 얼마 전에 다시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 만약 지금 주성치가 당신한테 청혼을 한다면 어떨 것 같아?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내는 잠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 결혼할 것 같아. 주성치가 나에게 청혼할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다면 나는 할 거야. 당신한테 미안하지만 거짓말 하고 싶지 않네. 

아내는 진지했고, 나 역시 주성치를 알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담배를 피워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우리 아파트 계단실 창문에서 한 대 피우는 동안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인정해야 된다. 인정해야 된다. 만약 주성치가 내 아내에게 청혼한다면 나는 물러서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주성치가 청혼하기 전에 내가 주성치보다 멋지고 웃긴 놈이 되어있다면 아내는 고민할지 모른다. 내가 그녀의 주성치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렇게 평소답지 않게 두 번째 담배까지 피운 나는 마음을 정리하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나는 말했다.

- 나도 있어. 지금 그녀가 청혼한다면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
- 누군데?
- '이바노비치'라고 아나?
- 그게 누군데?
- 세르비아 테니스 선수야. 요즘 케이블에서 테니스를 즐겨보고 있는데 사라포바처럼 소리도 꽥꽥 안 지르고 멋있더라.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해
- ?!?! ......

이렇게 해서 대충 마음의 평화를 얻긴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진 것 같다.

젠장, 최근에 우연히 케이블 보다가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랑 30년 가까이 마음에 품은 주성치랑 어떻게 비교가 되나?! 비겁하게 주성치가 어서 죽거나 망하기를 바라진 않겠다. 주성치가 홍콩 깡패 삼합회랑 친하다거나 바람둥이라는 험담을 하지도 않겠다. 나 역시 수많은 소문에도 불구하고 주성치를 좋아했으니까. 내가 주성치보다 더 웃기거나 주성치와는 전혀 다르게 웃기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말겠다. 

인생이 걸린 문제다.

만화가 김수박 / 뉴스풀협동조합 조합원 / [아날로그맨], [오늘까지만 사랑해], [내가 살던 용산](공저),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 사람 냄새], [만화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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