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친구도 멋지게 낡아 가면 좋겠다

옛날부터 허쉬파피 워커를 좋아했다. 요즘은 허쉬파피 매장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지만, 대형마트 젤 안쪽에 찾아보면 꼭 한 군데씩 자리하고 있다.

이 워커는 2010년 말쯤에 산 것 같다. 나는 운동화가 없다. 그때부터 주구장창 신고 다녀서 지금은 낡디 낡았다. 물론 경조사 등의 정장을 입어야 하는 경우에 착용하는 검정 구두가 하나 있다. 9년 전인가, 10년 전인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아참! 결혼이란 걸 했었지-그날 하루 ‘필요’해서 산 검정구두를 지금도 쓰고 있다. 신을 일이 잘 없어서 지금도 멀쩡하다. 게다가 경찰이신 처갓집 삼촌들이 경찰용 검정구두를 나랑 발이 맞다고 두 켤레나 주셨기에, 그것들을 모두 신으려면 앞으로 20년 쯤 더 걸릴 것 같다.

또한 매년 여름에는 저 워커가 잠시 쉰다. 동네 시장 어귀에 있는 뭐, ‘공룡발통’과 같은 신발 집에서 운동화같이 생긴 만 원짜리 슬리퍼로 한 여름을 나곤 찬바람불면 냅다 버린다. 그래서 여름 신발은 1년에 만원!^^ 그 외에는 (다시 한 번) 주구장창 저 워커만 신었다. 갈색이라 청바지랑 잘 어울린다. 그래서 바지는 정장 외에 청바지류 밖에 없다.

그런 나의 소중한 ‘허쉬파피 똥구두 워커’가 못 신을 지경까지 왔었다. 뒤축이 너무 닳았고 거짓말 보태어 바닥에 구멍이 날 지경이었다. 아내에게 신중하게 나의 처지를 고백하고, 쉽지 않은 허락을 받아 대형마트 젤 안쪽 구석의 허쉬파피에 찾아찾아 들어갔다. 역시 담백하니 점잖고 묵직한 신을만한 워커를 찾아내었지만 이 친구를 떠나보내기가 못내 아쉬웠다. 이런 걸 물을 때는 왜 주눅이 들까?

- 혹시, 아끼는 구두라서 그런데 수선이 되나요?
- 그럼요! 어디 봅시다. 아이고, 멋지게 신으셨네. 깔깔깔

아, 역시 허쉬파피는 나의 친구. 그리고 친절한 허쉬파피 아주머니!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나의 구두로 친구 삼으리라. 이렇게 이만오천원에 구두 바닥을 멀끔하게 갈았다. 꼼꼼한 박음질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나는 이 워커를 신고 걷다가 이따금 아래를 쳐다보며 피씩 웃는다. 남들은 나의 뿌듯함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내 친구를 자랑해본다. 앞으로 5년만 더 가보자, 친구. 그리고 나도 아주 먼 길 걷고 걸으며 멋지게 낡아가 보련다^^

물론 사람친구도 멋지게 낡아 가면 좋겠지만, 그저 사람은 구두가 아니기에 음... 음... 결론은, 사람은 구두가 아니다. 친구는 구두가 아니다. 구두가 소중해도, 구두보다 소중하지.

키워드

#N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