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밝은 대낮에 달이 뜨냐?

어제 오후에는 흔한 낮달이 떴다. 파란 하늘 가운데 하얗게 박혀있었고 반달보다 조금 컸다.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다 큰 사람도 그것을 ‘해’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다. 아주 옛날에 중학생이던 사촌누나가 그것을 해라고 했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과학 시간에 낮달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그 과목을 포기했나? 아니면 국어시간에 배운 시적 표현인가?' 싶어서 다시 물어보았지만,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무슨 훤한 낮에 달이 뜨냐?" 저거라고 가리키려고 했더니, 하필 낮달이 보일 때 해는 저쪽 산 뒤로 넘어가 있다. 아주 잠깐 이렇게도 생각했었다. 누나가 미쳤나? 그러나 곰곰이 살피니 누나는 진심이었고, 우리는 코스모스 밭까지 가던 논둑을 다시 걸었다.

둘 다 지방 사람인 아내와 나는 서울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한강 고수 부지를 지나는 중에 내가 말했다. 저기 공원에는 농구대도 있고 사람들이 개도 산책시키지만 비가 엄청 많이 오면 저기까지 물이 차오를 수도 있다. 그래서 저기 주차되어 있는 차들은 옮겨야 된다.

아내는 나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곳에다가 왜 공원을 만들어 놨냐고. 아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고... ‘잠수교’라는 다리도 있지 않은가? 저기 저런 높은 다리 아래로 물위에 떠있듯 차가 지나다니는 다리인데, 역시 비가 많이 오면 한강물에 잠긴다.

그래서 이름이 잠수교이지 않은가? 라고 했더니 역시 아내는, ‘아니... 그런 다리를 왜 만들어요?’ 그때도 잠깐 생각했었다. 얘가 미쳤나? 살다보면 나에게는 분명하지만 남에게는 뻥인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답답했던 나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노래 모르냐? 박영민 씨가 불렀다며 불러주었더니, 젝스키스의 팬이었던 아내는 그딴 노래는 모른다고 말했다.

나의 진심을 더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나는, 사실은 박영민 씨의 노래 중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애화의 푸른 구두’라며 말을 돌렸다. 물론 선배들 세대의 노래이지만 나는 아주 짠하게 좋아한다고...

길을 바꾸거나, 먹고 살아보자고 떠돌고 헤매는 우여곡절을 겪던 끝에 나는 남쪽 도시에서 아홉 살, 다섯 살 아이들과 낮달을 보았고 어제 아내는 아이들에게 저것은 달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다 큰 사람도 그것을 ‘해’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괜히 재미나고 좋더라. 진심이라면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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