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책방 "삼일문고"이야기

▲ 지난 20일 구미 금오시장로에서 책방 '삼일문고'가 복합 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구미에 들어와 산 지 5년이 지났다. 다섯 해를 이 지역에서 보냈다면 엔간한 지역 사정은 짐작이라도 할 만한데도 기실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교단의 마지막 네 해를 시내 고교에서 보냈는데 수업은 많고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안 끼는 데 없이 지역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래서 내남없이 지역 사정을 짚을 수 있었던 안동에서와 달리 구미는 고향과 진배없는 도시인데도 내겐 낯설었다. 안동과는 비길 수 없을 만큼 제대로 도시 꼴을 갖춘 곳이어서 지역에 녹아들기가 쉽지 않았다. 한 다리 건너면 친구인 안동과는 달리 지역에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낯설다고, 또 얌전하게 뒷전에 물러나 지켜보기만 하겠다며 몸을 사리고, 퇴근하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 결국 나는 1970년대에 조성된 국내굴지의 공단이 있는 인구 40만이 넘는 이 도시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셈이다. 

▲ 신영복 서화전 포스터

드러난 구미의 인상은 늘 거기가 거기다. 박정희를 낳은 보수 정권의 아성이면서 단체장의 지나친 박정희 마케팅이 가끔 도마에 오르는 도시. 여느 대구 경북의 고장처럼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선 보수 여당 후보가 예외 없이 압도적 표차로 뽑히는 곳, 공업도시인데도 노동운동도 그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듯한 도시…….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보니 정작 ‘지역 문화’에 대해서도 무지하긴 마찬가지다. 지역의 문화계에 대해서도 거기서 벌이는 지역 문화 운동에 대해서도 깜깜하다. 관이 아닌 민간에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도 있을 법한데 나는 관련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고, 연극 등의 지역 공연 예술에 관해서도 아는 게 거의 없다.

신영복 서화전과 소설 <허형식>

지난 5월 20일, 시내에 어떤 서점이 문을 열고, 거기서 박도 작가의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으로 개업기념 특별전시회를 연다는 이야기를 나는 작가를 통해서 들었다. 얼핏 어디선가에서 들었던 무슨 대형 ‘문고’가 문을 연다는 얘기가 그거였던 듯했다. 

<허형식 장군>의 작가 박도 선생은 구미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까지 여기서 마치셨다. 서른몇 권의 책을 펴내기도 하는 등 아직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선생은 각별한 애착으로 고향과 고향의 역사를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다.


[관련 기사(박도)] 
<금오산을 바라봤다,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56년 만의 귀향 ① 
<이제라도 '반신반인 박정희' 신드롬에서 벗어나자>-56년 만의 귀향 ②

박도 선생께서 오신다고 해서 가보려고 위치를 검색해 보는 과정에서 그 서점이 ‘신영복 선생 1주기 서화전시회’도 동시에 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경로로 찾은 서점이 금오시장로의 ‘삼일문고’다. 서점은 시내와는 얼마간 떨어진 부도심에, 그것도 간선도로가 아니라 이면도로에 있었다. 

▲ 신영복 서화전시회는 삼일문고가 들어 있는 빌딩의 2층 '갤러리 다'에서 열리고 있다.

서점이 들어 있는 빌딩의 2층에 있는 ‘갤러리 다’에서 나는 쇠귀 선생의 ‘서화전’을 돌아보았다. 첫날, 막 문을 열어서일까, 아직 아무도 찾고 있지 않은 전시장은 한복판에 놓인 기다란 의자만이 쓸쓸했다. 낯익은 쇠귀 선생의 필적 가운데서 글귀 하나를 새기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기쁨에 인색하거나 큰 슬픔에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은 작은 기쁨과 우연한 만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개점 특별 전시로 ‘신영복 서화전’은 우연히 이루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예사롭지 않은 삶의 자취를 아는 이들이라면 그가 박정희의 고향 땅으로 초청된 것은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는 박정희 치세에 무기수가 되어 20년 20일을 복역하였으니 말이다.[관련 글 :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을 보내며]  

▲ 박도 저 <허형식 장군>

서점을 열면서 구미 출신의 작가가 쓴 구미가 낳은 항일 투사 이야기를 특별 전시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의 의중이 어디에 있든 쉬운 선택은 아니다. 삼일문고의 김기중 대표는 몸소 박도 선생 댁을 찾아와 그 특별전시 계획을 밝혔다고 했다. 

허형식 장군은 구미 임은동 출신으로 왕산 허위 선생의 종질이다. 왕산은 지역에서도 공식적으로 기리는 항일 독립운동가지만 허형식은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이었다. 그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삶과 대척점에 섰던 이인 것이다.

[관련 기사]

* 왕산 허위 : <'구미' 하면 박정희? 이 사람도 기억하라> 
* 허형식 장군 서평 : 
<허형식과 박정희, 극단으로 갈린 둘의 선택> 

<허형식 장군>의 서평을 쓰면서 인연을 맺은 나는 개점 준비로 어수선한 삼일문고 매장 안에서 박도 선생을 처음 뵈었다. <허형식 장군>은 1층 매장 안의 조그만 공간에 전시되고 있었다. 지하에서 열린 개점 기념 행사에서 나는 이 서점이 꽤 오랜 준비 끝에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았다. ‘돈 안 되는’ 서점을 열기 위해서 그는 여러 해 동안 노력을 기울인 것이었다.

▲ 서점 1층의 독립공간에 마련된 <허형식 장군> 코너. 박도의 다른 저서도 전시하고 있다.
▲ 구조변경에 꽤 공을 들인 서점 내부는 판매보다 고객의 동선을 배려한 구조처럼 보였다.

그는 꽤 오랜 시간을 두고 기존 건물을 구조 변경(리모델링)하는 데 적지 않은 돈을 들였다. 지하와 이어진 지상 1층으로 구성된 서점 공간은 꽤 넓었는데 보다 많은 책을 전시하는 것보다는 고객의 동선을 훨씬 많이 고려한 듯했다. 구조변경에 참여한 건축가는 대표가 아이들이 편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변화를 이끄는 '마중물'로

모든 게 힘든 시절이다. 경기가 워낙 바닥이라는 구미 사정을 감안하면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이 책방의 내일이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도 소중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삼일문고’가 지역 문화를 새롭게 담아내고 그 변화를 이끄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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