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지체를 넘어 새로운 시민 자치 모델이 필요하다

▲ 적폐 청산의 일부로 '새마을과 폐지', '예산 축소'를 요구하는 구미 참여연대의 시청 앞 1인시위.

지난 5월 25일,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새마을운동 제창 47주년을 맞이해 ‘새마을의 날’ 기념식을 열고, 새마을 운동의 지속적 추진을 다짐했다. 경상북도는 1973년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새마을과를 만든 광역자치단체고, 구미시는 87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새마을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자칭 ‘새마을 종주도시’다. 

구미참여연대, 구미시에 '새마을과 폐지' 요구

나흘 뒤, 구미참여연대(공동대표 김찬 외, 아래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관이 주도하는 ‘새마을운동’은 개발 독재 시대의 상징”이라며 구미시가 “‘새마을과’ 폐지로 시민자치의 새 모델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관 주도의 구미 새마을운동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시대의 요구를 역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상반된 두 시각은 국가 근대화의 견인차 노릇을 한 이 역사적 유산을 어떻게 계승해 갈 것인가에 대한 엇갈린 이해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것은 박정희 통치기간 18년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이어진 것이기도 하다. 

새마을운동이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희망하던 국민의 요구와 ‘조국근대화’를 추진하던 국가의 의지가 결합된 ‘잘 살기 위한 운동’”(국가기록원)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운동이 초기의 농가 소득 배가운동에서 의식개혁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이루어낸 국민적 근대화의 결과가 ‘박정희 신화’의 핵심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 박정희 생가 부근에 세워진 5미터 높이의 박정희 동상. 뒤쪽에 공사중인 새마을테마공원이 보인다.
▲ 구미 상모동 생가 부근 공원의 박정희 동상 뒤에 도열하듯 늘어선 새마을 운동 안내 빗돌.

그러나 절대빈곤에서 허덕이던 저개발국가의 성장전략으로서 기능했던 정부 주도의 근대화 운동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자칫 1970년대식의 패러다임이 강요될 때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미시 새마을운동은 '민간운동'이 아니다?

구미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새마을운동’을 총괄하는 주관부서인 새마을과를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참여연대의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부분도 바로 거기다. 참여연대는 민간운동 조직인 새마을운동이 구미시에선 민간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미시는 청도군과 함께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매우 드물게 ‘새마을과’를 운영하고 있다. 새마을 조직이 펼치는 단위 사업마다 새마을과 5명의 공무원이 배정되어 새마을운동을 ‘전담’하는 구조라는 것이다.[‘구미시 새마을부서 조직’ 참조] 

그뿐만이 아니다. 시에서는 구미시 새마을회에 다섯 명의 인건비를 지원하는데 이는 민간단체 운영비 지원 규모로서는 최대다. 또 시는 새마을 사업에 막대한 예산(2016년 17억, 2017년 16억)을 투입한다. 이 ‘새마을 선진화’ 예산 가운데 50% 가까운 9억여 원(2017년 기준)이 구미시 새마을회 혹은 새마을 관련 조직의 32개 사업에 위탁금 혹은 보조금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에서 새마을 보조금과 위탁금으로 지원하는 사업은 대부분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사업이다. 시 지원금은 독서지원 활동 사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민 생활과 무관한 회원조직, 회원 역량 강화 활동에 쓰이는 것이다. 

시에서는 새마을 청소활동, 재활용품 수집 운동, 교통 계도 활동 등 새마을회가 벌이는 활동에 대한 막대한 예산을 지원한다. 여느 봉사단체에서도 벌이는 활동과 다르지 않은 이런 사업에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생가 앞에 조성되어 있는 '새마을운동'을 상징하는 조형물.

참여연대는 또 2만3천 명의 회원(2015년 기준)으로 구성된 구미 새마을회가 거대조직이 된 것은 구미시의 ‘일방적 지원’과 ‘패권적 운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 활동 방향이 여느 봉사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새마을회가 구미시의 아파트 부녀회와 주민들이 설립한 작은 도서관 등을 새마을 부녀회와 새마을 도서관으로 편제해 산하조직으로 꾸린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참여연대는 구미시의 새마을회에 대한 일방적 지원과 조직 운영이 ‘자발적인 시민 참여 활동과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결국 구미시의 일방적 지원이 ‘다양한 시민 참여활동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구미시가 철지난 개발독재 시대의 운동 모델인 ‘새마을’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원래의 목적보다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의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참여연대는 구미시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민 참여 모델을 모색’하고 ‘새마을과’를 ‘폐지’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구미시, 시민단체 요구 거부

그러나 구미시는 5월 31일, 이를 거부하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했다. 구미시는 “정치적 환경변화와 이념적 차이로 인해 ‘새마을과’ 폐지 논란이 야기되고 정치적으로 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역정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구미시는 ‘정치적 이유’로 ‘새마을’ 부서 명칭 때문에 조례를 개정하는 것은 명분이 없고, 직원 수는 노동 강도를 감안한 합리적 운영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간단체 지원을 통한 민관 협력은 세계적 추세라며 참여연대의 요구에 대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새마을과 폐지로 ‘시민자치의 새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에 ‘이념과 지역 정서’를 지적하며 이를 거부한, 다소 엇갈린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또 구미시는 새마을 지원 예산이 다른 지자체와 비슷한 규모인 4억8천만 원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구미시가 참여연대에 제공한 자료의 액수(7억 원)와 배치된다. 

이후, 구미시와 참여연대 사이엔 이를 두고 반박 성명이 이어졌다. 참여연대는 구미시의 입장에 대해 ‘시민단체의 상식적 요구에 이념 논쟁과 지역 정서를 들먹이며 시민들을 편 가르기 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구미시의 입장에 대해 참여연대는 ‘새마을운동’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민간단체인 ‘새마을회’의 활동을 지원하되 관이 주도적으로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라 밝혔다. 참여연대는 ‘새마을과’가 사실상 새마을 사업을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구조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6월 7일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다시 구미시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참여연대는 구미시의 지원금 내역을 분석한 결과 새마을회와 새마을 관련 기관에 지원하는 예산(9억) 중 60%에 해당하는 5억 3천만 원이 새마을회의 ‘조직 내부 사업 예산’으로 분류되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시민들의 삶과는 관계없는 새마을회 자체 사업에만 시용되고 있는 이러한 예산 지원은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원 내역을 들여다보면 관행에 기대어 ‘새마을만을 위한 예산’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많다.[‘구미참여연대가 분류한 구미시 새마을 지원예산(2017년)’ 참조]

다른 지자체보다 많은 3명의 상근 인력에 대한 인건비 지원, 해마다 유치하는 새마을 관련 전국대회, 옷장 구입까지 챙기는 새마을 합창단 지원, 중고등학교에까지 새마을 동아리를 만들기 위한 지원 예산, 역량 강화 교육, 지도자 대학, 평가대회, 한마음 대회 등 그 차이를 알 수 없는 각종 교육과 행사, 그리고 장학금과 해외 문화체험활동 지원까지 구미시의 새마을에 대한 지원은 남다르다. 

2016년 자료에 따르면 구미시는 새마을지도자 자녀 97명에게 5천5백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였으며, 36명의 새마을지도자에게 1인당 5십만 원, 총 1천8백만 원의 해외 문화 체험비를 지원하였다.


- 참여연대, 보도자료(2017. 6. 7.) 중에서

참여연대는 구미시의 새마을 예산은 대부분 보조금 심의위도 거치지 않고 구미시의 일방적 지원으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편향된 예산 지원으로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주체인 새마을과를 폐지하는 것은 새마을의 올바른 진로 설정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구미시와 시민단체 간의 공방을 바라보면서 참여연대가 말한 ‘시대의 요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혁명은 이 지역에서 수십 년 간 기려져 온 박정희 신화의 종언을 예고했다. 박정희가 개발독재를 통해 이룩한 근대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 힘입어 온존되어온 지역 기반 보수정권의 몰락은 더 이상 그러한 체제가 시민 참여의 시대적 요구를 수렴하지 못했음을 반증한 것이다. 

시대 지체를 넘어 새로운 시민 자치 모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구미시가 구태의연한 개발 모델로서 ‘새마을과’를 고집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1980년대 학교마다 편제되어 있었던 ‘새마을과(부)’가 1990년대에 하나씩 자취를 감춘 것처럼 더 이상 새마을과가 시민들의 참여와 자치에 유의미한 모델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미시가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새마을 관련 사업을 끌고 가는 것은 조만간 시대 지체(遲滯)로 평가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지난해에 이어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꾸어낸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로운 시민’들에 걸맞은 시민 자치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주장을 대국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이다.

*구미참여연대와 구미시의 주장과 입장은 각각 누리집 참고
-구미참여연대(http://gumisimin.org/
-구미시(http://www.gumi.go.kr/portal/bbs/list.do?ptIdx=204&mId=04010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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