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양산을 쓰고 오면서 내한테 윙크를 하노?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나... 큰 이모는 우리 집에 양산을 쓰고 놀러오셨다.

우산은 잘 알고 있었지만 양산은 처음 보았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을 쓰고 햇볕이 눈부실 때는 양산을 쓰는 것이구나. 큰 이모가 용돈을 100원 주시길래 풀빵 사러 갔다 오겠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100원어치 풀빵은 동그란 풀빵 10개가 붙어있는데 한 개 10원에 팔지는 않았고 10개 100원에 팔았다.

여전히 햇볕이 쨍하길래 큰 이모한테 양산 쓰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무심한 큰 이모는 좀 있다가 외갓집에 가야하니 ‘퍼뜩’ 다녀오라고 하셨다. 햇볕 아래 양산 쓰고 걷는 기분이 신났다.

저쪽에 풀빵가게가 보였다. 풀빵 100원치 주이소 했을 때 풀빵아저씨가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니는 남자애가 왜 양산을 쓰고 오면서 내한테 윙크를 하노?”

음... 나 윙크를 안했는데... 햇볕이 눈부셔서 눈을 찌푸리긴 하였나 보다. 추측해 보건데 풀빵아저씨는 양산과 윙크를 연결시켜서 인식한 것 같기도 하다.

아저씨의 기분이 좋았는지 안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양산을 접고 걸었다. 아저씨에게 양산을 쓰고 걷는 내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이 좋지 않은 기분의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씨발씨발 하면서 걸어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따져 봐도 어느 누가 어떤 잘못을 한 점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특별한 교훈도 얻지 못하겠다. 다만... 이 사소한 일은 두고두고 잊혀지질 않는 이상한 기억 중 하나에 속한다. 어릴 적 기억 중엔 이렇게 이상한 것들이 꽤 있다. 그리고 구태여 해석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내 마음에 남은 딱 한 가지는, 양산을 쓰고 걸어보고 싶었던 꼬마 녀석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긴 하다. 어른이 된 지금은 양산을 쓰고 걷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데, 물론 그 날의 그 일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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