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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심장' 구미에 세워진 특별한 소녀상고교생 제안으로 세워... "증언해주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감사"
뉴스풀협동조합 | 승인 2018.03.01 23:03
▲ '평화의 소녀상'은 과거 일본군이 저지른 반인류적 범죄행위를 기억하고 환기하는 형상이다.
ⓒ 장호철

아흔아홉 돌 삼일절, 구미시에도 경상북도에서 다섯 번째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3월 1일 오전 11시,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시민들의 뜻을 모아 구미역사 뒤 소공원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한 것이다. 

경북지역의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10월 군위군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뒤 포항(2015), 상주(2016), 안동(2017)에 각각 건립되었다. 지역별로 소녀상 건립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도시 규모에 견주면 다소 늦게 구미에서 소녀상이 세워지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11일, 구미 청소년 YMCA 연합회가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 설립을 제안하면서부터다.

구미 YMCA 청소년부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는 구미 청소년 YMCA 연합회는 이름 그대로 구미시 소재 고교생들의 모임이다. 이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지고 난 뒤였다. 

정작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이 반영되지 못한 이 협상을 공부하고 토론하게 된 학생들은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는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설립이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구미시민들에게 구미시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 설립을 제안한 것이었다. 

YMCA 청소년회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제안하다

이 제안에 참여했던 청소년 YMCA 영남권역 부회장 강무성(구미고 3) 군은 "전쟁의 아픔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제나 기억하고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이루기 위해서" 소녀상 건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면 인터뷰, 아래도 같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왔던 구미는 정작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고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과 평화의 소녀상이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 구미역 광장에서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 홍보 캠페인을 마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추진위 제공
▲ 학생들의 제안에 화답하여 지난해 12월 7일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공식 출범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 구미추진위 제공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염원하기 위해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가 시작된 지 20년 만인 2011년 12월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의에 대하여 당사자는 물론 전체 여론도 수용하지 못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에 소녀상을 세우는 것도 일정한 압력일 수 있다고 학생들은 보았던 듯했다. 

학생들의 제안에 대해 시민사회도 화답하여 12월 7일에는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공동대표 : 김요나단 시니어클럽대표, 백유경 학생대표, 이재숙 구미시 여성단체협의회장, 지창무 구미YMCA이사장, 전대환 구미참여연대 공동대표)가 공식 출범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건립추진위의 공동대표에 고교생 백유경(현일고 3) 학생이 들어간 것은 바로 이들이 구미 평화의 소녀상 설립 제안자였기 때문이었다. 

건립추진위는 이후 올 2월 말까지 대시민 홍보, 회원모집 캠페인 등의 활동에 들어갔다. 추진위원과 나비회원(일반회원)을 모으고 추진위에서 자체 제작한 소녀상 배지, 텀블러, 에코백 따위를 판매하면서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추진위에서는 매주 1회 이상, 거리 홍보 캠페인을 벌였는데 학생들도 주말을 이용하여 구미역과 구미 중심가 등에서 홍보와 모금을 계속했다. 뜻밖에 시민들은 학생들의 홍보에 큰 관심을 보였고, 모금에도 참여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YMCA 연합회 소속이 아니면서도 현일고 역사 동아리 '사다함'이 힘을 보태어 거리 활동에 참여했다.

'위안부 문제' 생각, 여학생 인식이 훨씬 구체적

학생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주변 친구들의 생각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이 저지른 범죄행위라는 걸 모두가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당사자에 대한 사죄 없이 금전적으로 마무리하려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위안부 합의 문제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대통령이 당사자도 아니고 어떻게 돈으로 정신적 피해를 대체할 수 있냐, 돈으로 입막음이 말이 되냐'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 - 김찬규(구미고, 추진위 2018 공동대표)

그런데 남학생이 대체로 '위안부' 문제를 당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여학생은 이를 현실적인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위안부'의 비극이 여성이기 때문에 빚어진, 여성의 정체성의 문제로 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로서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기에 여학생들의 분노는 훨씬 크고 구체적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모두 용기를 갖고 증언을 해주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위안부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이고 많은 죽음을 낳은 참혹한 역사입니다. 배상에 앞서 하루라도 빨리 일본이 직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권주원(구미여고 YMCA 청소년회장)

이러한 생각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어떻게 정리되는 게 바람직하겠냐는 물음에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인간의 존엄성을 돈과 맞바꾸고 '위안부' 피해자분들에게 사과조차 정식으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화가 안 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이 시점에서 추가적 배상을 원해야 할까요? 과연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자신들에게 배상을 해주는 것을 원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사죄를 계속 요구해 나가야 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권주원(구미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이 비슷해선지 동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금과 물품 판매 활동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우리 뜻을 알아주는 거는 어렵지 않겠지만 물품을 사는 거는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뜻밖에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이거 사자.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해 주었을 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 강무성(구미고)

2016년에 뜻을 모으고 이듬해 시민사회에 제안하면서 시작된 구미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동은 이제 소녀상 제막식으로 마무리되게 되었다. 그 동안 선배들은 졸업하여 대학에 진학했고 햇수로 3년이 흐르는 동안 1학년 학생들은 이제 대입 수험생이 되었다. 

▲ 지난 2월 10일 주말을 기해 학생들은 다시 시내에 나와 홍보 활동을 펼쳤다.
ⓒ 장호철
▲ 시민사회에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제안한 구미 청소년 YMCA 연합회원인 고교생들이 제막식에 참여했다. 왼쪽부터 강무성, 권주원, 김찬규 학생.
ⓒ 장호철

그러나 이들이 지난 시간 동안 공부하고 토론하고 준비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동은 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과정을 자기 성장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의젓하고 힘이 실려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캠페인을 준비하기 위해 사전 지식을 공부함으로써 조금 더 그 문제에 대해 가까이 갈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강무성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소 알지 못했었던 역사적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었고, 이를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생각을 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활동으로 소녀상이 세워질 수 있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김찬규

"소녀상 관련 활동은 평소에 알고 지낸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제 생각들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것으로 이어져 뿌듯하고 저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언가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권주원

▲ 구미추진위가 자체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 평화의 소녀 배지
ⓒ 장호철

추진위 최인혁 사무국장에 따르면 모금 기간이 삼 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2월 말 현재,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은 시민 1150여 명이 참여하여 3600만여 원이 모였다. 

참여 시민들의 이름을 새긴 동판 제작과 설치는 명단정리와 확인 작업이 2개월 정도 걸릴 듯하여 5월 말께로 예정하고 있다. 모금 참여는 3월 말까지 가능하고 추진위 제작 후원 물품 판매로 계속 진행한다고 한다. 

소녀상 건립 장소는 구미시청과 금오산도립공원, 구미역 광장 등을 후보 등을 검토하였으니 최종적으로 구미 역사 뒤쪽의 소공원으로 결정되었다. 

구미 평화의 소녀상은 군위 출신 이병준 작가가 제작했다. 군위에 세워진 소녀상과 같이 대구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 속의 소녀는 서 있다.

의자에 앉은 소녀와 그 옆 빈 의자로 구성되는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작품과 달리 구미 평화의 소녀는 두 손은 모으고 맨발로 서 있다. 옆에는 코고무신 한 켤레가 외롭고, 그리고 통나무 의자 하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에서의 '위안부' 학살 영상이 공개되다

그 모습 위로 2월 28일 서울시에서 공개한 영상 속, 학살된 '위안부'의 모습은 차마 떠올릴 수 없다. 태평양전쟁 패전 직전인 1944년, 중국 윈난성에 진주한 미·중 연합군이 찍은 영상 속에서 학살되어 무더기로 쌓아 둔 조선인 위안부들의 주검은 참혹했다. 

▲ 태평양전쟁 패전 직전인 1944년, 중국 윈난성에 진주한 미·중 연합군이 찍은 영상으로 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 학살 사실이 드러났다.
ⓒ MBC 뉴스데스크(2.27.) 화면 갈무리

미중 연합군은 윈난성 텅충(騰沖)을 점령한 뒤 "일본군은 (텅충)성 안에 있는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너무 처참하여 가려서 공개한 흑백 영상은 그것 자체로 '위안부' 강제연행조차 부정해 온 일본 정부의 주장이 허위와 기만임을 증빙하는 자료다. 

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의 앳된 소녀다. 그 소녀들은 일본군에게 전선으로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어 죽거나 돌아왔다. 어린 소녀들은 이제 평균연령 90세가 넘는 할머니가 되었고, 치욕적인 상처를 공개하면서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올 들어 두 분이 세상을 떠나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30분뿐이다. 

새로 구미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그 상이 환기해 주는 역사와 현실의 간극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 합의는 사실상 파기된 셈이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새로 드러난 명명백백한 증거 앞에서 일본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 평화의 소녀상은 구미역사 뒤편 소공원에서 시민들과 숨쉬며 어둡고 아픈 시대의 역사와 함께 평화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 장호철
▲ 구미역사 뒤쪽 소공원에 세워진 군위 출신의 이병준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을 모델인 이용수 할머니가 안고 있다.
ⓒ 장호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퇴행

이에 대한 직접 반응은 아니지만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27일, 일본 정부 차관급 관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발언을 통해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부정했다.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았다'라는 이번 발언은 그 전날,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반론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일본 정부의 태도는 고노(河野) 담화(1993)는 물론,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조차 뒤집고 있다. 이미 대다수 우리 국민에게서 배척된 예의 합의에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이라고 적시한 바 있었다. (관련 글 : 1993년 오늘, 고노 담화-정의의 기억, 그 행방을 묻는다)

일본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면서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소녀상이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기억하고 환기하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반인류적 범죄를 부정하고 그 책임을 거부하는 한 한국인들의 '기억과 환기'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일본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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