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박작가 에세이 '빗소리'
김수박작가 에세이 '빗소리'
  • 뉴스풀협동조합
  • 승인 2018.05.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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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라면 끓여먹자. 비오는 날에는 라면이지.”

빨래를 걷으려 베란다 문을 열었더니 비가 제법 왔다. 여태 제대로 구경 못한 꽃잎들 다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도 조금 했지만 빗소리가 좋았다. 이상하게 빗소리는 울 것 같은데 항상 좋았다. 그래서 브러쉬로 스...스...하고 쓸면서 연주하는 재즈드럼 소리도 빗소리 같아서 좋아한다. 그리고 빗소리 끝내주던 옛날 서울 옥탑방이 생각났다.

조그만 옥탑방은 방 하나, 부엌 하나, 더 조그만 화장실 하나의 흔한 구조였다. 부엌과 화장실의 지붕은 철판이었다. 비가 오면 그 양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철판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찬란했다.

타당탕탕 탕탕탕탕 타다다탕탕. 때론, 우당탕탕탕탕탕!

신기한 게 그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설치거나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거나 한 적이 없었다. 바닷가의‘영원한’ 파도소리에 잠 못 들 리 없는 것과 비슷하달까(나만 그런가?). 더위에 취약한 옥탑방이라 비가 오면 ‘오예!’하고 오히려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다.

다만 성북구의 어느 공공도서관에 면접을 보고 옥탑방에 들른 그 애에게는 창피했다. 그날도 비가 거세게 왔다. 나는 만화 그리겠답시고 서울에 와서 막일을 병행하고 있었고, 그 애는 이번 면접에서 떨어지면 시골 고향으로 복귀해서 눈칫밥 먹어야 한다는 상황이었다.

거센 비가 우당탕탕 철판지붕을 때리는 옥탑방이 창피했던 나는 말을 돌리려, “그래! 라면 끓여먹자. 비오는 날에는 라면이지.”하고 웃었는데 라면이 없었다. 식사는 매번 현장일 하면서 때웠기 때문에 집에 먹을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냄비에 물 좀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라면이랑 달걀 사러 우산을 들고 뛰어나갔다. 빗속을 뚫고 라면 사러 다녀오는 동안 생각했던 것 같다

‘으이구! 면접 봤으면 후딱 내려갈 일이지, 뭐 하러 얼굴보고 간다고 와서는...’ 뭐,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영등포역으로 배웅하던 길은 막막하고 우울했지만, ‘타당탕탕’ 소리 들으며 후루룩 먹었던 라면은 엄청 맛있었다.

아내도 그렇게 말한다. 그날 라면 참 맛있었다고. 베란다 문을 닫고 들어오니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빨래나 개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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