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까지 청소년에게 “가만히 있기를” 강요해야 할까요?



지난 5일 구미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가만히 있으라"침묵시위가 오늘 11일 오후 2시 구미역 광장에서 다시 한번 침묵행진이 실시 되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20명의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은 '가만히 있으라'피켓을 들고 행진을 시작한 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노랑피켓으로 바꿔들으며 가만히 있지않고 행동하겠다는 선언으로 행사를 마무리 하고 오는 16일 오후 6시30분 구미역 촛물문화제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민 서홍일씨(24)의 호소문>


우리는 언제까지 청소년에게 “가만히 있기를” 강요해야 할까요?

세월호가 가라앉은지 벌써 3주가 지났습니다.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실종자 수가 없거나 한 자리 수로 줄어야 하건만, 아직도 실종자 수는 수십 명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슬퍼했고, 또 여전히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슬픔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어떤 분들은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고만 계시네요. 이 무책임함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선 이들을 보고 그 분들은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고 말입니다.

섬찟하기까지 한 이 말을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요? 과연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을까요? 참사에 분노하고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하는 말이 “어른들이 미안하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어른들이’ 노력할게”인 것. 미안하고 미안하니 ‘우리 어른들이’ 노력해서 바꾸겠다고, 너희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 이것은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이들의 다수는 청소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청소년들이 이에 분노하고, 일어설 권리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지요. “이건 우리의 잘못이니 우리가 노력해서 바꾸겠다.”고, “너희는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말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주체가 될 수 없는, 그저 지켜주어야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비단 이번 일뿐만이 아닙니다. 청소년은 어디서든, 언제든 늘 그랬습니다. 해마다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학벌 사회에 짓눌려 죽어갈 때에도 정작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어른들”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생활 터전인 학교는 달랐나요? 아니오. 학생들이 주인이라 입으로는 열심히 떠들던 학교는 정작 학생들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깡그리 무시한 채 그저 시키는 대로만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다 혹여 청소년들이 이런 사회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그저 막기에 급급했습니다. 나이도 어린 너희들이 무엇을 알겠냐고. 너희들은 아직 미성숙하니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어린 마음에 보이는 치기 정도로만 여길 뿐이었지요.

결국 청소년은 정말 꽃이 되어갑니다. 화분의 꽃 마냥 주체로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조리 빼앗기고 그저 어른들의 마음에 드는 예쁜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만든 가장 큰 원인에는, 당연히 가만히 있기를 강요했던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청소년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폭력을 멈춰야 합니다. 청소년이 주체적인 사람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적극 지지해야 해요. 또한 청소년과 함께, 그 누구도 가만히 있기를 강요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어나 행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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