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깃국으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소성리

사드 기지가 위치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은 아직 투쟁 중이다. 사드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소성리 마을 앞으로 미군은 통행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해 기름 한 방울 운반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한 장비도 이동할 수 없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그 무엇도 소성리 마을을 지나갈 수 없다. 소성리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서 사람이 살아온 마을이며 평화종교 원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가 달마산 꼭대기에 배치된 이상 우리는 단 하루도 발 뻗고 편하게 잠들 수 없다. '사드가야 평화 돼지해'를 맞아서 소성리 주민은 장기화하는 투쟁으로 지쳐간다. 그러나 살기 위한 투쟁이다. 삶은 치열하다. 소성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투쟁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필자 주

ⓒ시야

 

“내가, 내가 도울게요.”

나의 어설픈 손짓이 못 미더웠나 보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님과 박규란 엄니가 소곤소곤 의논한다. 다음날 있을 수요집회의 점심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함이다. 전국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소성리로 집중한다고 전날부터 찾아오는 사람들로 소성리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반가워서 들떠진다.

장 보아온 음식 재료를 정리하는 김에 미리 시금치는 다듬고 데쳤다. 사용할 김치도 미리 꺼내놓았다. 음식 재료를 다시 점검하면서 일할 사람도 확인했다. 임회장님은 규란 엄니한테 태환 언니와 수덕 엄니와 함께 점심준비를 해달라고 했고 옆에 있는 태환 언니는 부녀회장님은 안 하냐고 묻자 규란 엄니가 의논이 되었는지 “임회장은 다른 거 할 일 있어.” 한다.

사드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시작한 소성리 수요집회는 108차(2018년 12월 26일)를 맞았다. 전국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소성리의 아침은 생기가 돌았다. 마당을 쓸고, 정리정돈과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고 사람들의 손과 발은 분주하다. 큰 손님 대접하는 음식 준비라서 나도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소성리 마을회관 부엌으로 들어갔다.

규란 엄니와 태환 언니 그리고 수덕 엄니가 아침 일찍부터 부엌으로 들어오셨다. 수덕 엄니는 냉장고에 오래된 진미 오징어채를 커다란 프라이팬 두 개에 올려서 볶는다. 일손을 거들어주는 연대자 한 분이 파를 썰고, 태환 언니는 어슷어슷 썰어놓은 무에 고춧가루를 뿌려서 맨손으로 버무리고 있었다. 맨손으로 조물거리는 거 참 오랜만에 본다. 그 옆에서 규란엄니가 돼지고기 뭉텅이를 잘게 썰고 있었다.

“엄니, 고기 볶을 거유?”

“아니 돼지고깃국 끓일라고.”

“태환 언니 무김치 만들어요?”

“아니 국에 넣을라고.”

고춧가루를 묻힌 무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사각사각 달짝지근하다. 바로 무쳐서 먹어도 좋겠다 싶은데 국거리 재료라니 아쉽다.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두부를 기름에 둘러서 굽고, 조림할 간장도 만들어놓았다. 톳은 물에 불려서 살짝 데쳐놓았고, 콩나물도 삶을 준비를 해놓았다. 토란 줄기는 삶아서 물기를 쪽 빼놓았다. 국거리 재료가 준비되었다. 회관 입구에 놓인 가마솥 가까이 있는 선반 위에 재료를 올려두었다.

커다란 가마솥보다는 조금 작은 가마솥을 물로 대충 헹궈내고 가스불을 켰다. 가스 밸브가 세 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세 개의 가스 밸브를 조금씩 다 열고 불티나를 쏘았더니 ‘펑’ 하면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꽃이 둥근 양철통 밖으로 확 튀어나올 거 같았지만 금방 잦아들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불을 조절해보아도 바람이 거센지 불꽃은 씩씩하게 튀어댄다.

가마솥에 썰어놓은 돼지고기를 먼저 넣어서 넓적한 주걱으로 요리조리 뒤집어댄다. 맑은 조선간장을 부어서 간을 맞춰가면서 휘젓는다. 돼지고기가 가득 든 가마솥이 약간 작은 느낌이 들었다. 태환 언니가 커다란 가마솥으로 옮길까 했지만, 너무 많은 양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작은 가마솥을 쓰자고 했다. 한참을 휘저어도 돼지고기가 다 익지는 않았다. 고춧가루의 고운 빛깔이 된 무를 부었다. 가마솥의 절반을 재료가 차지해버렸다. 가스불은 씩씩거리면서 활활 타오르긴 했지만 바람에 불꽃이 날아가 버리는 듯했다. 불안정한 가스불 때문에 살짝 걱정스러웠다. 돼지고기와 무를 한참 동안 이리저리 저어대면서 익었다 싶을 때 물을 부었다. 가마솥의 3분의 2가량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토란 줄기와 콩나물과 파 재료를 옆에 두었고, 다진 마늘도 한 그릇 들고 나왔다. 간을 맞출 건 맑은 조선간장 한 병밖에 없었다.

국물 끓이는 동안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거들었다. 시금치도 무치고, 콩나물도 삶아서 냈다. 이구동성으로 콩나물 국물 아깝다면서 국에 넣으라고 한다. 살짝 데쳐놓은 톳은 물기를 빼고 액젓으로 간을 하고 마늘 조금 넣고 잘게 썬 파를 넣어서 무쳤다. 통깨를 먹음직스럽게 뿌려두니 모양이 났다.

ⓒ 시야

 

 

 

 

 

“바깥에 내다봐야 안 되나.”

규란 엄니가 말한다. 아직 안 끓을 거라 생각하고는 부엌에서 반찬거리 만드는 걸 어깨너머로 배웠다. 국물이 어찌 되었나 싶어서 밖으로 나가보니 가마솥은 한바탕 넘쳐서 가스불은 꺼져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들께 물어보니 가마솥 국물이 팔팔 끓어 넘쳐서 가스불을 꺼버렸다는 거다. 다시 가마솥에 가스불을 켜고 지키고 서 있었다.

수덕 엄니가 시찰을 나오셨다. 무가 익지 않아서 조금 더 끓여야 한다는 수덕 엄니의 말씀대로 국을 끓였다. 무가 익었다 싶으니까 토란 줄기를 먼저 풍덩 집어넣었다. 또 끓이다가 콩나물을 넣었다. 가스불이 세서 금방 다 익을 듯이 팔팔 끓었다. 국물이 심심하다.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하는데, 수덕 엄니가 파 넣고 마늘을 넣으라고 하셨다. 확실히 맛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간은 자신이 없었다. 내 입맛에는 싱겁기만 한데, 짠 것보다야 싱겁게 끓이는 게 낫다고 하니까.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꼭 공범을 만드는 법인가보다. 서울에서 내려온 평화활동가 주은 씨에게 국물 맛을 보여줬더니

“제 입에도 살짝 싱겁긴 한데요. 계속 끓이면 졸면서 간이 배니까 간장은 더 안 넣어도 될 거 같아요”

돼지고깃국이 완성되었다. 돼지고깃국이 가득 담긴 가마솥은 약한 불로 달구고 있었다.소성리 마을회관 부엌도 밥과 반찬 준비가 끝났다. 멀리서 달려온 전국의 연대자들이 속속 소성리로 모여들었고, 현수막을 다느라 바빴다. 점심 식사를 하러 회관으로 들어왔다. 할매방에 한 상 차려드리고, 거실에 빼곡히 상을 놓아서 밥상을 차렸다.

나는 국자를 들고 가마솥의 돼지고깃국을 그릇에 퍼담았다.

원래는 소고깃국이다. 적은 돈으로 많은 사람 먹이려고 돼지고기로 끓였다. 약간 어울리지 않는 느낌도 들지만, 막상 먹어보면 심심하면서도 무와 나물이 씹히는 맛이 괜찮다.

도대체 몇 명이나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밥을 먹었는지 알 수 없다. 국을 퍼다가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은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분주하게 움직였고, 할배방에 차려진 밥상 앞에 이장님이 앉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가서 나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편안하게 앉아서 느긋하게 내가 끓인 국 맛을 보았다. 내가 끓였다고 한껏 자랑했다. 이장님은 옆에서 얼마나 장단을 잘 맞춰주시는지 자랑질이 흥겹다.

가마솥에 가득했던 돼지고기 국은 반으로 줄었다. 내가 국을 끓이고 퍼담는 일을 하는 바람에 늘상 내 차지였던 설거지는 다른 연대자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상마다 반찬 접시 다섯 개 또는 여섯 개에 국그릇과 밥그릇, 숟가락과 젓가락, 어마어마하게 많은 식기구가 개수대에 쌓였다.

때마침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에 연대하기 위해서 소성리 수요집회에 참석한다고 연락이 왔다. 고단하게 투쟁해왔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소성리가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집회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노동자 여덟 분이 소성리마을회관에서 넉넉하게 밥을 먹었다.

모두가 맛있다고 말해주지만, 맛있게 먹어주어서 고마운 108차 소성리 수요집회 점심 식사 풍경이었다.

식사를 끝내놓고 부엌의 뒷정리를 마친 규란 엄니와 태환 언니는 내게 뒷마무리를 맡겨두고 임회장님 댁으로 갔다. 멀리서 오는 연대자들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임회장님은 집에서 순두부를 만들고 있었다. 수요집회 마치고 사드기지 정문에서 평화 행동하고 내려오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거다. 뒤늦게 순두부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내가 임회장님한테서 어깨너머로 두부 만드는 걸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

나는 마지막 식사자리를 정리하고 나서야 바깥으로 나갔다. 평화마당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소성리 할매와 김천 노곡리 할매들은 늘 그 자리를 지켜주셨다.

뭐니 뭐니 해도 반가운 건 호떡이었다. 원불교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호떡,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큼직한 사드 반대 행사가 있을 때면 호떡을 굽는 교무님이 순창에서 먼 길 달려오셨다. 하루 종일 호떡을 구워주셨다. 사람들은 한 개, 두 개 물리도록 호떡을 먹을 수 있었다. 형선 교무님이 앞치마를 입고 호떡 뒤집개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빵 터졌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서글서글하게 웃음 짓는 교무님의 모습이 어릴 적에 즐겨보았던 호호아줌마를 연상케 했고, 호떡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어서 웃었다.

집회를 마치고, 사드기지 정문을 다녀오는 동안 몇 시간 동안을 호떡을 뒤집어대느라 쉬지 못했을 원불교 교무님들이 김천 촛불로 가서 호떡을 굽는다고 한다. 힘들어하는 교무님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서 김천 촛불을 따라가게 되었다. 나 혼자였다면 안 갈 확률이 높았지만, 갑자기 임회장님이 김천 촛불을 가자고 나서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따라나서게 된 거다.

사드기지 정문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간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회장님이 직접 만든 순두부를 대접했다.

어느 분이 “아이고 지난번에 평화 행동하러 왔을 때는 밥 사 먹을 데도 없고, 여기서는 밥도 안 해줘서 배를 쫄쫄 굶고 갔었는데, 오늘은 밥도 얻어먹어, 호떡도 먹고, 떡도 줘서 먹었는데, 순두부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고 돌아갑니다” 한다.

ⓒ소성리종합상황실

사실 사드가 소성리로 배치확정이 되고 나서는 소성리 부녀회가 손이 닳도록 밥을 해댔다.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멀리서 오는 연대자들까지 먹을 수 있도록 밥과 반찬과 국을 끓여댔다. 차리기도 엄청나게 차렸었다. 그렇지만 천 명씩 몰려드는 큰 행사 때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녀회의 젊은 사람들은 점점 발길이 뜸해졌고, 나이 많은 할매들만 남은 상황에서 큰일을 치를 때마다 밥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만 많이 온다면 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소성리 부녀회는 말한다. 사드 뽑겠다고 와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오는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은 먹여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래, 먼 길을 달려와 주신 고마운 님들께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할 수 있어서 행복한 오늘이었다. 그리고 돼지고깃국은 확실히 배웠다. 다음엔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한번 끓여서 대접을 해보아야겠다.

기대하시라 돼지고깃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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