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노동자 시야(施野)의 요리조리 소성리<2편> 2019년 새해 소성리 떡국 나눔!
기록노동자 시야(施野)의 요리조리 소성리<2편> 2019년 새해 소성리 떡국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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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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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칫국물 끓는 동안 기지 정문에서 피켓팅' 새해 첫날 아침 소성리 이야기

"올해를 황금돼지해라고들 하더군요. 오행에 따르면 기해년은 황금이 아니라 황토돼지해가 맞지요. 황금에 눈먼 세대라서 누런 색만 보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하고 황금이라고 우기면서 덤벼듭니다만, 사실 황토는 황금으로는 비길 수도 없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더욱이 기해년의 황토는 딱딱한 돌이 아니라 부드러운 흙이고, 봄, 여름의 약동하는 흙이 아니라 뜨겁던 불기운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가을의 흙이어서 화이부동하는 군자의 덕을 갖추고 있지요."

- 박수규 주역 이야기15. ䷎地山謙지산겸, 기해년 새해 아침에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의 박수규 대변인이 페이스북에 연재하고 있는 주역 이야기 15편 첫 구절이다.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끝자리 숫자가 바뀔 뿐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새해가 밝아오면 새해를 맞으러 산으로 바다로 해맞이를 떠난다.

롯데골프장으로 사드가 들어오기 전, 소성리 마을은 골프장을 거쳐서 해맞이하기 안성맞춤인 산 언덕배기에서 새해를 맞았다고 한다. 마을의 액운은 붉은 태양의 기운으로 싸그리 지워달라고 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사드 귀신이 소성리로 향했을 때, 소성리 마을 주민은 새해맞이를 위해 달마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붉은 태양의 기운을 받아서 사드를 꼭 뽑겠다는 결기를 다지는 새해 첫날을 가졌던 거다.

2018년 새해를 맞을 때는 소성리 마을 뿐 아니라 사드를 반대하는 연대자들까지 합심해서 달마산을 올랐는데, 나는 산을 오르다가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배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해서 깜깜한 새벽 산길을 중도하차 해야 했다. 마침 착한 농부 정수 씨가 도와줘서 함께 내려올 수 있었지만, 내려오는 도중에 몇 번을 주저앉아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정수 씨는 내 덕에 새해맞이도 하지 못하고 걱정이 태산인 2018년을 맞이하게 되었고, 나는 떡국도 못 얻어먹고 방에서 시름시름 앓아누워서 한나절을 보내야 했다.

이제 골프장은 굳게 문을 닫아버렸고, 철문 안에는 사드라는 제국의 괴물이 들어앉아서 한국장병이 미군과 사드를 지켜주고 있으니 주민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굳게 닫힌 문을 쳐다만 볼 뿐이다. 그러나 우린 그냥 쳐다만 보지 않을 거라고 새해에 다짐한다.

2019년 1월 1일 황토돼지해를 맞아서 소성리 마을 이장님은 바빴다. 축문은 진철 아저씨가 써주었고, 윤성 아저씨께 제 지낼 때 축문을 읽으라고 했는데, 윤성 아저씨는 눈이 어두워서 글이 안 보인다고 했다. 다행히 돼지머리는 가져가지 않기로 했나 보다. 제수거리를 챙겨서 마을회관 한쪽에 모아두었다.

누가 몇 명이나 올지는 알 수 없어도 매년 떡국을 먹었던 수를 생각해서 어림잡아 떡국 끓일 준비 하느라 부녀회장님도 바빴다. 산행팀과 떡국팀으로 나누어서 역할을 분담하고 뭔가 딱 부러지게 정해진 건 없지만 2018년 마지막 날 소성리 마을회관 난롯가는 설왕설래 분주했다. 나는 과감하게 떡국팀에 합류할 것을 선언했고, 나의 선언에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정수 씨였다.

“소희씨 올해도 산에 갈 거 아니제?”

얼마 전 허리 수술을 한 대근 아저씨도 떡국 팀에 합류하기로 했고, 임순분 부녀회장님과 규란 엄니와 우리는 아침 일찍 성주 사드기지 앞으로 가기로 했다.

2019년 1월 1일, 아침잠이 많아도 나는 약속 시각은 꼭 지킨다. 아침 7시 20분 소성리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임회장님과 규란 엄니는 새벽 6시 마을회관으로 나와서 달마산으로 출발하는 산행팀을 배웅했다. 떡국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관의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는 커다란 솥이 놓여있었고, 물은 가득하고 무가 숭숭 떠 올라 있었다. 하얀 보자기에는 멸치와 다시마가 싸여있겠지? 부엌을 비워두고 사드기지 정문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 급한 김에 규란 엄니가 마을회관 바로 아랫집에 사는 정조자 엄니께 전화를 했다.

“형님 빨리 마을회관에 나오소. 떡국 끓인다고 멸치 다시국 끓이고 있는데, 우리 기지정문에 가서 잠시 피켓만 들다가 올 테니까 국물 끓는가 좀 봐주소”

조자 엄니는 두말하지 않고 “알았다”고 하고 잠시 후에 마을회관에 나타났다. "우리 형님은 두말 없다. 해달라 하면 무조건 알았다 한다" 하면서 정조자 엄니의 시원한 협조에 기분이 좋다.

대근 아저씨와 규란 엄니와 임회장님 그리고 나는 성주 사드기지로 올랐다. 준비한 피켓을 하나씩 들고 기지를 향해서 구호를 외쳤다.

“사드빼" 하면 다 함께 "사드빼“

“사드 가가”하면 다 같이 “사드 가가”

“사드 out" 하면 “사드 out" 하고 외쳤다.

목청을 풀고 나서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구호를 외치고, 하고 싶은 말을 목청껏 소리쳤다. 쑥스러워할 거 같았던 규란 엄니가 “내 하라고?” 하더니 “2019년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사드 꼭 가져가세요. 사드 가고 평화오라!” 라며 외쳤다.

임회장님은 “국방부 초소 어림없다. 국방부는 깊이 명심하고 초소 반입 하지 말라”고 외쳤다. 국방부는 장병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인권 보호 차원에서 초소를 들이겠다고 통보를 해왔고, 이전에 이미 초소를 들이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주민과 평화 지킴이들의 반발에 무산되었다.  장병들의 인권 보호는 사드를 빼고 소성리에서 군대가 철수하는 것이다. 군대에 청춘을 가두는 건 인권이 아니다. 무엇보다 임시배치 되었다는 성주 사드기지에 더는 사드를 유지하기 위한 장비나 시설을 들여놓는 걸 용납할 수 없다. 사드도 뽑아야 하니까.

성주 사드기지 정문에서 피켓을 들고 황토돼지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붉은 태양의 기운이 첩첩산중에 가려져서 둥근 해는 보이지 않았다. 빛살만 넘실거렸다.

이게 다 사드 때문이다.

▲ 2019년 새해 첫날 아침, 성주 달마산 정상에서 / 소성리종합상황실

롯데골프장 시절에 산 언덕배기 가장 좋은 위치에서 해돋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붉은 태양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던 시절은 옛 추억이 되었지만, 우리는 되찾아오고야 말거다. 붉은 노을 같이 넘실대는 빛살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졌다. 산행팀도 그 시각 달마산 꼭대기로 도착해서 떠오르는 새해를 맞았다고 한다. 제를 지내고 기도를 하는 중이라고 연락이 왔다. 마을회관 부엌으로 내려갔다. 떡국 끓일 준비를 위해서다. 부엌에는 떡국팀 식구가 늘었다. 이장님 부인 문여사가 등장했다.

떡은 물에 불려놓았고, 다시국물은 다 끓었다. 두부는 사각사각 썰고 쇠고기 갈아 넣은 거로 국물 자작하게 볶아서 고명을 만들어놓았다. 계란 고명은 떡국 위에 얹어놓으면 예쁘긴 하지만, 대량으로 떡국을 끓일 때는 손이 많이 가는 거라 생략하기로 했다. 나 개인적으론 계란 고명은 터벅한 느낌을 주어서 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임회장님이나 규란 엄니도 그렇게 생각하신 듯했다.

산행팀이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고 떡을 다시국물에 넣으려고 ‘카운트 다운’을 세고 있었다. 조미료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마을회관에서 담은 간장 하나로 간을 맞췄고, 다시국물이 맛을 좌우하는 천연재료만 사용했다.

나는 미리 상을 폈고, 김치와 숟가락, 젓가락을 상마다 배치했다. 할매방에 두 상을 폈고, 거실에는 6상을 폈다. 몇 명이나 떡국을 먹을지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조자 엄니가 큰 냄비의 국물을 작은 냄비로 옮겨서 떡을 넣고 끓였다. 팔팔 끓인 떡국을 ‘스텐’ 대야에 붓는다. 맞은편에 앉은 규란 엄니가 적당한 크기의 국그릇에 떡국을 퍼담고, 문여사가 쇠고기와 두부 고명을 떡국 위에 얹는다. 그럼 내가 비닐장갑을 끼고 앉아서 김가루를 살짝 뿌려주었다. 그렇게 떡국을 쟁반 위에 나란히 올려두면 부엌으로 들어오는 누군가가 밥상으로 배달해주었다.

달마산 꼭대기에서 해돋이를 보려고 식구가 다 함께 참석하기도 하고, 딸래미와 사이좋게 온 아빠도 있었다.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반가운 사람들이 새해라고 찾아주었다.

할매방과 거실이 북적북적하면서 한 그릇 먹고, 또 한 그릇을 더 먹는다. 그리고 빠지면 다음 사람들이 들어와서 떡국을 먹었으니 최소 50명 이상은 소성리에서 새해 떡국을 먹은 거 같다. 설거지할 그릇이 어마하게 탑으로 쌓였다. 산행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도 부지런한 평화지킴이들이 부엌으로 들어와서 설거지한다. 상을 치워주고 그릇을 옮겨주고 음식 찌꺼기를 모아주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각자의 할 일을 찾아서 한다.

소성리의 새해는 그렇게 밝았다.

“사드가야 평화돼지!” 라고 한 새해 인사는 우리의 다짐이고 결기다. 달마산 꼭대기에 올라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봤던 사람들 저마다 소원 한 가지씩 염원했겠지만, 소성리 떡국 먹은 우리의 소원은 딱 하나다.

소성리에서 사드는 뽑아야 할 적폐이지, 최신무기가 아니다. 최신무기는 평화를 위협할 뿐이다. 우리는 더불어 공존하기 위해서 노력할 테니까 무기 같은 거 필요 없다. 

사드 뽑아야 군대도 철수시킬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을 미국에게 뺏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드 뽑을 때 미군도 같이 철수시켜야 한다.

“사드가야 평화돼지! 미군가야 평화돼지!”

기해년 황토 돼지해에 소성리에서 '평화돼지' 자알 키워보자.

▲ 2019년 1월 1일 성주 달마산 정상에서 맞이한 일출 / 소성리종합상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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