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조리 소성리] 소성리에서 전통음식을 배운다
[요리조리 소성리] 소성리에서 전통음식을 배운다
  • 기록노동자 시야(施野)
  • 승인 2019.01.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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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회장님 메주 쑤던 날, '수제자'의 첫 수업이 시작 되다

“내가 다 생각하고 있어, 이제 팔이 아파서 나도 예전처럼 많이 못해, 올해는 진짜 일을 줄여야겠어. 애들도 일 줄이라고 난리고, 올해는 메주도 예년의 절반보다 적게 할 거야. 촬영할 분량은 남겨뒀으니까 걱정마.”

12월에 들어서면서 소성리의 기온은 뚝 떨어졌고, 사람들은 "NO THAAD" 가 새겨진 시커먼 롱패딩을 입기 시작했다. "NO THAAD" 롱패딩 덕분에 진밭교의 칼날 같은 추위로부터 몸을 따뜻하게 보온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사드를 뽑아내는 우리의 작업복이다.

사진 소성리종합상황실

나는 하루가 멀다고 임순분 부녀회장님의 얼굴만 보면 “언제 메주를 쑤는지” 물었고, 임 회장은 한결같이 “아직 멀었다”라고 답했다. 메주 만들 때 잊지 말고 나를 불러 달라고 사정했고, 임 회장님은 헛웃음을 치면서 알았다고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12월도 다 저물어갈 즈음 소성리에서 송년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난 다음 날은 소성리 총회가 개최되었고, 임 회장님은 콩을 삶다가도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부랴부랴 마을회관으로 달려가야 했다. 긴박하고 아찔했던 마을회관 총회는 숱한 사연 속에서 사드 반대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고, 임 회장님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메주 만들 거리를 아주 조금 남겨두었다고 했다. 아주 조금이라고 했거늘….

12월 31일 월요일 10시 소성리 임순분 부녀회장님 집으로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드디어 나는 임 회장님의 메주 만드는 비법을 전수 받는다. 첫 수업이었다.

임 회장님이 젊은 시절에는 직접 콩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의성에서 콩농사 짓는 믿을 만한 농가에서 메주콩 30가마 이상 사들여서 메주를 만들었다. 두부와 순두부도 기똥차게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다.

올해는 도저히 몸이 쇠약해져서 예년의 반도 못 하겠다 한다. 콩 양은 확연히 줄었다.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성주 성산포대로 결정했지만, 성주군수 김항곤이 사드를 소성리로 밀어냈다. 소성리의 역적인 김항곤에게 항의하러 군청을 여러 차례 쳐들어갔고, 성주 생명문화축제에 찾아가 김항곤에게 항의하자, 임 회장님은 공무원들에게 떠밀려서 팔을 다쳤다. 다친 팔은 고질병이 되었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지만, 농사일을 그만둘 수 없었고, 일이 많은 날이면 통증은 더 심해졌다. 아픈 팔이 임 회장님을 괴롭히고 있다.

사드 반대 투쟁으로 경찰공권력에 치인 몸은 골병이 들고 있다.

“내가 배운 건 별로 없어도 명색이 전국여성농민회 회장을 한 사람인데, 어떻게 수입콩을 쓰겠어요? 나랑 친한 농가에서 직접 콩농사를 짓고 있어서 그 사람한테 콩을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콩을 담은 자루가 수입콩 자루인 거라. 나는 그 사람을 믿어. 그 사람도 남 속일 사람 아니고, 직접 농사를 지을 사람이거든, 자루값 아낄라고 헌 자루를 모아서 쓴다는 게 수입콩 자루였던 거지. 나도 다 알아. 그래도 나는 그 콩 다 반품했어. 그 사람하고 친분으로 따지면 모른 척하고 써도 될 일이지만, 내 집에 수입콩 자루가 떠돌다가 혹시나 누구 눈에 띄어봐, 오해 살 일이잖아. 농민회 활동할 때 수입농산물을 죽자사자 반대했는데, 내 집에서 수입콩 자루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내가 쌓아온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일이잖아. 나 배운 건 없어도 고집스럽게 살았어.”

사진 시야(施野)

의성의 농가와는 오랫동안 거래해 온 믿을 만 한 이웃 농가이고, 콩은 암팡지게 둥글둥글하면서 빛깔은 노란색이 아니었다. 샛노랗다는 건 부족하다. 살짝 겨자색을 띠면서 노란빛인데 아주 맑았다.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노란 콩이다.

노란 콩은 커다란 무쇠가마솥에 담겨있고 아궁이는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임 회장님 아들이 장작을 가득 트럭 위에 실어두었다. 아궁이 넷 중 세 곳에 콩이 가득 담긴 가마솥을 걸어 불을 땠다.

“장작을 쑤셔 넣기만 하면 안 되고 불이 피워 오르면 부지깽이로 이렇게 쑤셔서 불이 퍼지도록 해야지 콩이 골고루 삶기지.”

가마솥이 워낙 크고 넓다 보니까 장작을 아궁이 속으로 집어넣기만 하면 불이 가는 곳은 콩이 삶기고, 불이 가지 않으면 생콩으로 그냥 있게 된다. 그래서 장작을 한 번에 많이 넣으면 안 된다. 불을 지피면서 부지깽이로 불을 양 갈래로 분산시키는 것이 중요한 기술이다.

불을 지필 때는 느긋해져야 한다. 불을 다룰 줄 아는 것이 비결이었다.

느긋하게 앉아있을 수가 없는 건 연기 때문이다. 장작이 아궁이를 꽉 막고 타고 있으니 연기가 폴폴 날라와서 눈이 맵다. 사실 뱃살 때문에도 쭈그리고 앉아있기도 힘들다.

“연기가 위로 올라가니까 가만히 앉아서 아궁이 쳐다보고 있으면 좀 덜 맵지, 나도 연기 맡으면 눈이 매워, 그래도 우리는 하도 오랫동안 일을 해서 눈 매운 건 잘 참아요.”

노란 콩이 가마솥의 누룽지가 되어 눌어붙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 물을 계속 부어야 하는 건 아닌지 타박받을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임 회장님은 다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절대로 눌어붙지 않는다고 장담하셨다. 방법이 뭘까? 궁금해져서 매눈을 하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연기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사진 이재각

처음엔 장작을 넣어서 팔팔 끓이다 보면 솥이 끓어오르면서 넘칠 듯이 거품이 인다. 그럴 때 바가지에 물을 퍼서 솥뚜껑 위로 살짝 물을 뿌려서 열을 식힌다. 끓어오르던 김이 사라지고, 가마솥 안의 물은 아주 소량으로 숨죽일 정도로만 뿌려주는 셈이다. 솥뚜껑 위로 물을 뿌려서 열을 식힌다.

노란 콩이 뭉글뭉글해지면 장작을 더 넣지 않고 아궁이 속의 숯으로 뜸을 들이면서 콩을 익힌다.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면 시커먼 숯만 보여서 불이 꺼졌나 싶지만, 부지깽이로 뒤적거리면 숨어있던 불씨가 다시 살아 오른다. 잔잔한 불기운을 받으면서 가마솥 안은 하나도 눌어붙지 않고 콩은 뭉글뭉글 익어가고 있는 거다. 콩이 익을 동안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커다란 무쇠 가마솥 안에서 노란 콩이 다 익었다. 임회장님 혼자서 차분하게 하면 물기 하나 없이 뜸 들여서 다 익히는데, 나를 가르치랴, 이바구하랴, 산만하게 일을 해내려니 부산스럽다.

첫 번째 가마솥의 콩은 무를 정도로 푹 익었고, 두 번째 가마솥의 콩은 다 익었지만, 살짝 된 느낌이었다. 세 번째 가마솥은 앞의 가마솥보다 두꺼운 무쇠 가마솥이었다. 역시나 익은 콩은 훨씬 구수하고 맛있었다. 잘 삶겨졌다.

다 삶은 콩을 대야에 퍼담았다. 첫 가마솥의 콩을 대야에 퍼담고, 두 번째 가마솥의 콩을 대야에 퍼담고, 세 번째 가마솥의 콩을 대야에 퍼담아서 차례대로 메주 뽑는 기계에 부어준다. 그러면 무른 것, 된 것과 아주 잘 익은 것이 기계 속에서 골고루 섞여서 네모반듯한 메주의 모양이 되어 나온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노동력을 훨씬 절약하여 인간의 삶이 편리해졌다. 하나의 메주를 만들기 위해서 콩 두 되는 족히 쓰인다.

사진 이재각

기계에서 나온 네모난 메주는 부녀회장님이 조심스럽게 안고 메줏방으로 이동시킨다. 메주 놓을 자리에 볏짚을 깔아두었다.

따뜻한 방에 메줏덩이를 보관하는 동안 볏짚이나 공기 속 여러 가지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들어가 발육하게 된다. 이렇게 착생한 미생물이 콩의 성분을 분해할 수 있는 단백질분해효소(protease)와 전분 분해효소(amylase)를 분비하고 간장에 고유한 맛과 향기를 내는 미생물이 더 번식한다.

가마솥의 삶은 콩을 퍼내는 일은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가지로 퍼서 대야에 담고, 메주 만드는 기계로 부어주는 노동이니 힘만 좋으면 될 일이었고, 콩을 푸는 순서만 지켜주면 되는 일이었다. 가마솥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노동이었다. 퍼도 퍼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한 곳을 퍼내서 바닥이 보일지라도 양옆으로 가득 쌓인 콩 무더기를 본다면 끝이 날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삶은 콩을 퍼담을 때 물기가 들어가면 안 된다. 체에다 걸러서 콩물을 쭉 빼고 담기도 했다. 콩물도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 장독에 있는 메주를 꺼내서 된장 만들 때 쓰기 위해서 따로 모아두고 있었다. 아직은 날이 추우니까 변질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가마솥에 타거나 눌어붙은 콩은 한 알도 없었다. 신통방통한 일이었다.

메주틀 기계가 있어서 공정 한 단계는 줄였지만, 틀에서 나온 메주를 두 손으로 얌전히 모셔서 메줏방으로 옮기는 일도 중노동이었다. 무엇 하나 손쉬운 일은 없었다. 하나같이 다 인간 노동이 투여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임 회장님은 어떻게 혼자서 일을 해왔는지 모를 일이다. 이만한 일을 해내려면 멀쩡한 팔도 고장이 날 법한데, 제국의 전쟁놀음으로 들여온 사드 때문에 골병이 들고 있으니 몸이 남아 날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히 농사일도 줄이고 메주 만들고, 된장 담는 일도 줄인다고 하니 걱정은 한 시름 놓았다.

다만 아쉬운 건 이제 철이 들기 시작한 내가 전통음식을 배우고 싶어 할 때 일을 줄인다고 하니 어디서 이런 고급기술을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위기는 기회이다.

이럴 때 열심히 한국의 전통음식 비법을 연마하여 소성리의 손맛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 회장님 집 마루에 콩이 두 포대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건 어디 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새해가 밝아 첫 수요집회 때 순두부를 낼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나로선 순두부를 먹을 수 있어서도 좋지만, 두부 만드는 비법을 배울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임 회장님이 인정하지 않아도 나는 임 회장님의 수제자가 되고야 말 테다.

임 회장님을 사부로 모시고, 요리조리 소성리에서 한국의 전통음식을 만드는 비법을 전수 받아보자.

사진 이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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