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칼럼]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권영국
  • 승인 2019.01.2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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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10주기를 추모하며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은 1월 20일, 경북노동인권센터 권영국 센터장님이 칼럼을 보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용산참사 10주기를 맞는 날이다. 이틀 전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와 경주지역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함께 김석기 국회의원 경주사무소 앞에서 “용산참사 10주기,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김석기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용산참사 당시 김석기 의원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이자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으로 경찰특공대의 진압을 결정하고 지휘한 경찰 책임자였다.

위 기자회견에는 조희주 범국민추모위 공동대표와 용산참사로 목숨을 잃은 철거민 고 이상림씨의 배우자인 전재숙님, 그리고 당시 용산4지구 철거민대책위원장으로 농성에 함께 했다가 구속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충연씨(고 이상림씨의 아들)가 서울에서 내려와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유족들은 살고 싶어 옥상에 올라간 철거민들에게 도심테러의 누명을 씌우고 살인진압으로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자가 일말의 사죄도 없이 국회에서 국민의 대표 행세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용산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살인진압 주범 김석기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과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용산참사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이건만 유족들의 아픔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로 인해 6명이 사망하자 이명박 정부는 서둘러 서울중앙지검에 검찰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합동수사본부는 수사기간 내내 철거민들에 대한 여론전과 결론을 예정한 편향적인 수사를 통해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화재원인을 철거민의 화염병 투척에 의한 것으로 결론을 짓고 철거민들에게 화재참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돌렸다. 철거용역깡패들의 폭력과 횡포에 견디다 못해 마지막으로 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던 철거민들은 졸지에 자신의 동료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까지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 뉴타운과 재개발을 통한 ‘부자 되기’ 욕망을 무한대로 부추기던 이명박 정부는 경찰 과잉진압의 실책을 덮기 위해 농성 철거민들을 도심테러에 준하는 극단의 혼란을 야기한 범법자들로 몰아 책임전가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경찰은 민사 분쟁으로 인한 갈등이 야기된 장소에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처음부터 바로 테러진압용으로 창설한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하여 이들로 하여금 적을 섬멸하듯이 철거민들을 진압했다. 옥상 위 농성 철거민들은 더 이상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용산화재참사 진상조사단’의 조사팀장과 철거민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나는 사건 당시 국가 공권력의 국민에 대한 폭력, 사건 직후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사이버수사대의 댓글공작을 포함한 대대적인 여론조작, 재판과정에서의 검찰의 수사기록 3천여 쪽 비공개 등 검경과 정권의 도를 넘는 폭력과 횡포 그리고 자기기만에 절망해야 했다.

2017년 촛불혁명의 결과로 정권이 바뀌고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빚어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들이 개시되었다. 용산참사 사건도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표적인 인권침해사건으로 선정되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와 대검찰청 산하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재조사 대상에 포함되었다. 지난 해 9월 경찰청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 참사 당시 철거민에 대한 경찰의 진압은 안전수칙을 위반한 과잉진압이었으며, 김석기 청장 등 경찰지휘부가 화재 위험을 알고도 무리하게 진압 작전을 강행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김석기 의원은 용산참사 당시 자신은 무전기를 꺼놓고 있었기 때문에 진압과정을 잘 알지 못했다고 부인해왔으나 자신의 방인 청장실 옆방에서 유선과 대면으로 진압상황을 구체적으로 보고받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사건 직후 김석기 청장의 지시로 경찰이 사이버수사대 900명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댓글 공작 등 여론조작을 벌였던 사실도 밝혀졌다. 경찰청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참사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조직적인 여론조작 지시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방해죄와 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는 범죄행위이며, 민주헌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였다고 판단했다.

위 결과 발표 후 정부는 총리 담화를 통해 사과했고 민갑룡 현 경찰청장은 재발방지대책 마련 후 적절한 시기에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작 사건 당시 경찰책임자였던 김석기 의원은 “지금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현재 경찰도 똑같은 원칙을 가지고 하지 않을까”라며 사과는커녕 자신의 과잉진압을 정당화하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국회의원이라는 권력과 공소시효라는 방패 뒤에 숨어 또다시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경찰청의 조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김석기 의원의 발언은 유가족과 국민에게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살인진압을 정당하다고 말하는 자를 어떻게 국민의 대표로 용납할 수 있겠는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움직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 해 말 김영희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 총괄팀장은 용산참사 당시 검찰 합동수사본부에서 수사에 참여한 일부 조사대상자들이 용산참사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는 조사위원들에게 민・형사조치 압박 등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들의 외압 때문에 용산참사 사건을 맡고 있던 조사3팀의 외부조사위원 2명이 사임서를 제출했고 이로 인해 조사3팀의 활동이 중단된 상태이며 이후 조사 활동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보도되었다. 검찰 합동수사본부에서 수사를 총괄한 조은석 검사가 외압의 중심으로 알려졌다. 조은석 검사는 현재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다. 조사3팀에 대한 외압 논란은 2009년 수사 관련자들이 검찰 권력을 등에 업고 ‘검찰의 불공정한 수사와 기소’에 대한 재조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용산참사 당시 수사기록 3천여 쪽을 은닉하며 실체진실의 발견과 공정한 재판을 방해했던 검사들이 다시 검찰 진상조사단의 재조사마저 방해하는 형국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는가?

용산참사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2009년 경찰의 살인진압과 검찰의 불공정한 수사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처벌받은 바 없다. 도리어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경찰 책임자는 국회의원이 되어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고, 불공정한 수사와 기소를 총괄했던 검찰 책임자는 검찰 내에서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친일세력들이 해방 후 애국자로 둔갑해 권력을 장악하고 기득권을 유지해 오듯이 용산참사의 실제 주범과 공범들은 여전히 요직을 차지하고 활보하고 있다. 그러기에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용산참사란 뉴타운・재개발 광풍의 바람을 타고 도시환경정비지역으로 지정된 용산 4구역에서 도심재개발을 통한 막대한 이익을 꿈꾸던 토건재벌(삼성물산, 포스코건설, 대림산업)들이 철거용역들을 앞세워 한겨울임에도 폭력적인 강제철거를 진행하자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빈손으로 쫓겨나게 된 상가세입자들이 2009년 1월 19일 새벽 5시경 한강도로변의 남일당 빌딩 옥상 위로 올라가 망루를 세우고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던 중 농성 25시간만인 다음날 20일 새벽 6시경부터 개시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특공대의 진압 과정에서 망루에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불에 타 숨진 사건을 말한다. 

글 / 권영국 경북노동인권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