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부당징계 철회 촉구 4차 촛불집회 참가 후기

사진 이건기

1월 17일 18시 30분.
포스코 부당해고 철회 네 번째 집회다.

날씨가 좀 풀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조상들이 막연히 생각해왔던 삼한사온의 날씨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하듯 영상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몸으로 느낀다.

특히 포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름엔 덥고 겨울엔 더 춥다.
아마 제철소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8차선 도로의 휑한 포스코 정문은 칼바람이 몰아친다.
칼바람 추위보다는 분진에 뒤덮인 뜨거운 용광로 옆이 그래도 그립다.

길거리에 내몰린 해고된 노조 간부 3명의 동지들의 체감 온도는 더욱더 낮다.
분진에 휩싸인 뜨거운 용광로와 엿가락처럼 휘어져 감기는 열연 코일을 생산하는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민주노총에서 마련한 어묵국과 따뜻한 차는 언 몸과 마음을 일시적이나마 녹여준다.

왼쪽 포스코 본사는 사용자 측이 쳐놓은 철의 장막으로 가로막혀 있다.
사용자 측의 소통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있는 "철의 장막"이다.

철의 장막에는 부당징계 철회하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그 외마디 문구에 사용자 측은 귀를 닫고 있다.
소통과 공감의 부재가, 철의 장막이 대변해준다.

90년대 동서 냉전의 상징물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최근 실질적인 종전 선언으로 남북 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 측에서 쳐놓은 철의 장막은 노조에 대한 전쟁 선포다.
더 말해 뭐하겠는가.
포스코 시계는 거꾸로 돌아간다는 것을.

집회장 어두움과 대조적으로 철의 장막 뒤 포스코 본사는 저녁 7시가 넘어도 불빛이 화려하다.
보이는 곳만 화려한 것이 포스코의 특징 아니겠는가.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사진 이건기

연단 오른쪽으로 공장으로 향하는 포스코 정문이다.

정문에 경비들이 즐비하다.
외주사 '포센' 직원들이다.
그 경비들 속에는 부당해고 5년 만에 승소하여 복직을 쟁취한 노동자 3명이 포함되어 있다.

부당해고 5년을 나와 함께 투쟁했다.
일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우리와는 뜨거운 동지다.

그들에게 경외심과 동지애를 가져야 한다.

정문 아치에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글귀가 화려하다.
자유는 창의이고 창의는 곧 자유다.

노조를 만드는 자유 없이 노동자에게 창의를 요구할 수는 없다.
억압과 통제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 개인의 창작과 창의다.

그룹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우리는 공식대로 살지 않는다'고 했다.
공식을 파괴해야 자유로운 창의가 나온다.
공식대로라면 프레디 머큐리의 위대한 창작품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올 수 있겠는가.

한번 언급한 건데 이쯤 해서 세상 밖에 있는 위대했던 두 사람을 세상 안으로 강제로 소환해 볼까 한다.

한 사람은 자본가들이 혐오하고 그 철학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마르크스.
또 한 분은 그 반대로 포스코 경영자가 존경하는 초대회장 박태준.

여기서 극과 극 두 사람의 공통점은 창의력이다.
마르크스는 미래사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그 바탕에 깔린 변증법은 사회과학에서 최고의 창의다.

박태준은 50년 전에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살길은 창의라고 내다봤다.
지금 세상 속으로 그가 다시 나온다면 자유로운 창의적인 회사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노조탄압은 지금도 남아있는 그 시대의 유물이었지 지금의 시대정신은 '상생'이다.

그가 퇴직 후 일갈한 건 창업정신을 배반하여 스톡옵션으로 떼돈을 번 임원을 향해서다.
정경유작과 자원외교, 부실경영으로 회삿돈을 밑도 끝도 없이 쏟아부었다.

경영진들의 창의력은 참으로 특별했다.

회삿돈이 자기 호주머니 속의 쌈짓돈이라고 최소한의 생각만 했더라도 그리 흥청망청 쓰진 않는다.

 

노동자의 목소리

사진 이건기

연단에 권영국 변호사가 올랐다.
내가 그를 안건 25년 전, 1992년 겨울 해고 후 1993년 경주 포항 해고노동자 협의회를 만들 때였다.

당시 이름은 익히 듣고 있었다.
그는 풍산금속 해고자였다.
포항제철에서 해고되어 갓 태어난 따끈따끈한 노란 병아리인 내가 무척 닮고 싶어 했다.

탄탄한 이론과 대중의 가슴을 자극하는 감성에 푹 빠져들었다.
당시에도 연단 위에서 작은 체구에서 터져 나오는 사자후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토해내는 사자후는 곧바로 책으로 엮을 수 있는 정리된 언어였다.

오늘도 그때와 같은 느낌이다.
“됐나? 됐다”로 끝나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
이젠 노동자를 더 폭넓게 이해하고 행동하는 우리 시대의 변호인이다.

포항의 진보적 여성단체인 포항여성회 김박은주 회장과 여성회 간부들이 연단에 올라섰다.
지나가는 시내버스의 엔진소리를 덮어 버리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동자 집회에 이런 박수와 함성은 극히 이례적이다.

편파적인 박수다.
살짝 불만(?)이다. 성평등에 맞지 않는다.
너무 깊이 받아들이지 말자. 긴장 속에 좀 웃자.

지덕체를 겸비한 분들이 성을 뛰어넘어 연대를 약속했다.

내가 여성회에 월 1만 원씩 내는 진성 회원이란 것이 자랑스럽다.

이제부터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교육부장 안대희 동지
프로급 연설은 아니더라도 그 내용은 차고도 남았다.


"부자가 되기보다 부끄럽지 않은 노동자가 되자.
우리 아이들도 노동자가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좌절을 주지 말자.

부당함에 당당히 맞서고 존경받는 선배 그리고 아빠가 되자.

내가 노조 집행부를 하는 이유다.
포스코 지회여 포기하지 말자."


구호를 외치고 내려온다.
구호는 평소 그가 좋아하는 가치관이라 한다.

 

"배부른 노예보다 배고픈 자유인이 되자! 투쟁!"

"포스코 지회여 자유인이 되자! 투쟁!"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현장 노동자를 통해 또 느낀다.

다음은 복지부장 공형우 동지다.

큰 절로 엎드려 인사한다.

그의 말을 줄여서 소개한다.

 

"난 97년 노경협의회 출신이다.

사활을 걸고 여기에 나왔다.
노동자를 위해 나와 동료를 위해 가족과 아들을 위해 나왔다.

진정한 노사평화 상생, 직업윤리 도덕성에 포스코는 무엇을 했는가?
복지도 최고 수준은 아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정비하다 사고가 나면 오히려 징계받는다.

책임은 노동자가 진다.
안전사고가 나면 피해자가 덤터기를 쓴다.
경직과 군대식. 이것이 지금의 포스코 문화다.
자원외교와 부실경영으로 13조 날린 경영진은 시말서라도 써보았는가?"

 

포스코는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

현장의 소리는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억울, 분노, 갑질, 아쉬움, 사랑 등 모든 회한이 뒤섞여 있다.

국민은 포스코는 좋은 회사라고만 알고 있다.
흔히 좋은 회사는 임금과 복지 수준을 의미한다.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더 좋은 회사로 가기 위해서는 노사 소통과 공감 그리고 자유와 풍부한 창조성이 요구된다.
이것이 노동의 재미다.

단순 작업과 획일적 지시와 교육,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을 만드는 회사는 인간이 아주 우둔하고 멍청한 동물에 근접한다.
동물도 슬픔과 분노는 안다.

포스코는 혁명이 필요하다.

혁명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다.
인간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자기 결정권이다. 주인의 권리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
주인 된 삶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 속에 이루어진다.
노예의 삶에 익숙하면 자기가 결정을 못 한다.
학습된 무기력이다.

인간성 소외와 존엄성 침탈은 인간의 이기심과 무기력 사이를 교묘하게 침투한다.
무기력한 사람이 마치 선한 사람으로 둔갑해 버린다.
약한 자가 내미는 화해의 손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사용자는 이윤추구를 위해 경쟁한다.
기업도 글로벌 정글 속에서 강해야 살아남는다.
강한 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동자 또한 강해야 한다.

노동자도 경쟁한다.
그 경쟁은 다른 노동자보다 고과평가를 잘 받아 높은 연봉에 먼저 승진하기 위한 경쟁이다.
그런 경쟁이 일반적이었다.

이젠 경쟁의 프레임을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자.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경쟁하자.
그 공동체는 자주적인 민주노조다.
노조가 살아야 모두가 사는 길이다. 진보의 길이다.
이제부터 노조의 발전과 진보의 길을 가기 위해 서로 경쟁하자.

 

글 / 2000년 포스코 해고노동자 이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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