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8일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대통령 관저 경계로부터 100m 이내인 청와대 신무문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 그만’이라고 적힌 손현수막을 들고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집시법 위반죄의 현행범인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리고 20일 검찰은 이들 중 김수억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이하 김 지회장)에 대해 ‘비정규직 이제 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과정에서 진행한 청와대 앞 3차례 집회, 서울고용노동청과 대검찰청 내 농성 등을 범죄사실에 포함시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행스럽게도 21일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김 지회장은 석방됐다. 우리는 김 지회장이 석방됐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해도 되는 것일까?

김 지회장에 대한 경찰의 체포와 검찰의 영장청구는 촛불항쟁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노동자들에 대해 갖는 검경의 공안적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검찰은 지난해 9월 27일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강하게 처벌해온 반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규정되어 있고, 사측에 유리하게 해석・운영되어 온 경향이 있어 우리 노사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된다.”고 하고 “이와 같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불법 폭력・과격 행동을 하게 된 측면이 있고, 결국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경한 대응을 초래한 사례도 있었다.”며 과거 노동자와 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을 두고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경찰청 또한 지난해 5월 14일 경찰 활동 전반의 인권 기준을 정립하고 인권행정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경찰청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경찰 인권보호 규칙’으로 전면 개정하면서 인권 중심의 경찰로 탈바꿈하겠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검찰은 대검찰청 산하에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을, 경찰은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과거 국가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여 국민에게 사죄하고 향후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심지어 문무일 검찰총장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강기훈유서대필사건,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과거 잘못된 검찰 수사와 관련하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검경은 김 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이유로 “피의자는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법체계를 무시한 채 비정규직 해결을 요구하며 불법적인 폭력 집단투쟁을 계속하여 왔다”며, “이에 대통령과 정부 및 정치권에서도 민주노총의 불법행위에 대해 앞으로 엄단하도록 검찰에 지시하는 등 노동계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한 처벌을 지시 당부하였다”고 적었다.

그리고 민주노총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 발언을 분명한 주어도 없이 “①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발언), “② 당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의 법치와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발언), “③ 어떤 집단도 법위에 군림할 수 없다. 민노총이기 때문에 손을 못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특정 집단이 삼권을 다 좌지우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발언)고 열거했다.

이처럼 검경은 민주노총과 노동계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엄벌을 지시 당부하였다는 정부 및 정치권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구속영장 신청 및 청구가 정당한 것인 양 포장했다.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노동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과 대검찰청을 찾아 농성을 하고 대통령을 만나자고 시위를 한 이유는, 법원의 거듭된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등에 대한 불법파견 인정 판결, 노동부의 구미 아사히글라스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노동부가 재벌과 외자기업에 대해 십 수 년간 제대로 된 행정명령도, 사법처리도 하지 않은데 대해 법대로 조치해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위험업무를 외주화하고 안전보호의무를 위반해 김용균님의 목숨을 앗아간 공기업의 책임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피해 당사자들이 2004년 이래 현재까지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을 방치하고 있는 검찰과 노동부의 직무유기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찾아간 행위를 검찰과 노동부가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생명․안전업무와 상시․지속적 업무를 정규직화 하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한 행위가 법 위에 군림하는 행위인가? 정작 처벌받아야 할 자들은 직무유기의 주범인 검찰과 노동부가 아닌가?

인권 경찰과 검찰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그 총수들이 경쟁적으로 피해자들을 찾아가 눈물로 사과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검경은 가장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행동을 하게 된 측면을 외면한 채” 또 다시 노동자들에 대한 몽둥이와 칼잡이로 나서겠다는 태도를 밝힌 셈이다.

지난 2016년과 2017년 국정농단에 맞선 촛불항쟁 과정에서 금단의 성역처럼 여겨졌던 청와대 앞을 국민의 힘으로 개방함으로써 비로소 민주주의와 자유를 회복하고 그 힘으로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는가? 국민이 대통령 집무실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표현하였다고 하여 인신을 구속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문명사회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이 민주노총에 대한 압박 발언을 쏟아내자 곧바로 이에 편승하여 기다렸다는 듯 태도를 돌변하는 검경의 태도는 참으로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의 법치와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라고 법률 문서에 버젓이 기재하는 검경의 공안적 시각은 외형의 포장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정말 암적인 존재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범죄시하는 검경의 태도다.

 

글_ 권영국 변호사, 경북노동인권센터장

 

*2019.1.23. 오마이뉴스에 함께 실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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