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소성리 평화행동' 이야기

새벽녘 저절로 눈이 뜨인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창밖은 깜깜하다. 시간을 가늠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뒤척거리면서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갑자기 궁금해서 핸드폰을 켜보면 시계는 5시40분이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다시 이불속으로 푹 파묻혀버렸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전화기 모닝벨로 시작해서 핸드폰 알람까지 나를 번쩍 깨운다.

차에 시동을 켤 때는 6시30분이다. 소성리 마을은 7시면 도착한다.

소성리 마을이 가까워질 때면 경찰버스 한 대가 내려온다. 밤새 성주 사드기지를 지키면서 경계근무를 선 경찰병력이 교대를 하는가보다.

소성리 마을에서 진밭교까지는 걸어서 0.9km다. 원불교 2대 교주 정산 종사가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걸었던 구도길은 군사시설이 되어 통행을 저지당했다. 막힌 길목에서 교무님들은 “길을 열라”며 밤새 철야기도를 시작했다. 비닐 한 장에 의지해서 혹한 추위를 이겨낸 원불교의 철야기도로 진밭교는 평화교당을 세울 수 있었다.

매일 새벽 5시 원불교의 염불로 진밭의 새벽을 깨운다.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부추기는 사드 배치를 국민은 원하지 않았다. 미제국주의 하수인 노릇하는 한국 정부와 경찰 공권력은 원불교의 구도길을 막았고, 수 백 년 이어져 삶의 터전이었던 마을과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막았고, 철철이 나물을 캐고, 약초를 캤던 젖줄을 막았다.

우리는 사드를 운영하기 위한 장비의 운반을 막고, 기름을 막고, 미군의 통행을 막았다. 군대와 군인의 이동을 막았다.

소성리 마을에서 진밭교로 오르는 길에 힘찬 기합소리가 울린다. 아침 해가 밝지도 않은 6시50분 김선명 교무는 선요가를 시작하였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매섭게 추운 날은 몽골텐트로 만들어진 진밭 교당 안에서 아침기도회를 했고, 장작이 준비된 날은 난로를 피웠다. 선요가를 마치면 7시10분부터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난롯가에 둘러앉아서 진밭의 아침기도회를 시작한다.

진밭 평화 교당. 사진 소성리종합상황실

진보신앙단체 예수살기의 회원 강 장로님은 사드가 배치될 소성리 마을로 내려와 상주하면서 헌신적으로 사드반대활동을 해왔다. 소성리 마을에서 시작한 새벽기도는 진밭의 아침기도회가 되었고, 요일별로 특색 있는 기도회를 이어갔다.

월요일은 강 장로님 성경 말씀, 화요일은 박 선생의 ‘주역 이야기’, 수요일은 ‘원불교의 정신’, 목요일은 백 목사님 설교, 금요일은 강 장로님 성경 말씀, 토요일은 소성리 평화지킴이들의 시국토론회로. 아침기도회는 다양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아침기도회를 마치면 2부 순서는 성주 사드기지 앞 평화행동으로 이어진다.

진밭교에서 성주 사드기지까지는 1.6km의 짧은 거리이지만 오르막길이다. 나 같은 느림보 걸음으로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작지만 성능 좋은 엠프와 마이크를 챙겨들고, 우리가 시위하는 목적이 분명히 담긴 “사드 빼! 미군 빼!” 현수막과 피켓을 준비한다. 차를 타고 오르면 5분도 안 걸릴 짧은 거리다.

나는 여러 날을 성주 사드기지로 걸었다. 아침 7시 소성리 마을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한다. 성주 사드기지 까지 2.5km라고 핸드폰의 거리측정기가 알려주었다. 진밭교에서 ‘평화’라고 불리는 늠름한 황색진돗개가 나를 보고 두 발로 서서 껑충껑충 뜀박질을 한다. 난롯가에 앉아서 아침기도회를 열고 있는 소성리 평화지킴이들을 향해서 두 손 모아 “평화를 빕니다” 합장을 하고는 성주 사드기지로 걸었다.

진밭의 칼바람은 무뎌진 듯 포근했다. 계곡의 물이 요란스럽게 소리 내며 아래로 흐른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이 내 볼을 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면 딱따구리가 “따따따닥”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산 아래로 울려 퍼진다. 성주 사드기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딱따구리의 부리가 조금만 더 단단해지고, 야물었으면 좋겠다. 사드를 구멍 내서 쓸모없이 만들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귓가로 저음의 기계음이 스쳐지나간다.

“붕~~~~~~~~~~~~”

낮은 소음은 일정한 높이와 길이로 귓가에서 맴돌았다. 기분 나쁘게 들린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동차는 보이지는 않았다. 경운기도 없었다. 나무와 새와 바람과 물이 어우러지는 자연의 소리가 있을 뿐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 뜬금없는 기계음이었다.

낮은 소음에 절망감이 엄습했다. 사드가 돌아가고 있는 소리일까? 사드가 아니라도 사드기지 안에서 어떤 장비가 운영되고 있는 걸까? 출처를 확인할 길 없어 답답하다. 기분 나쁜 낮은 소음은 일본의 교가미사키 라는 아름다운 마을을 떠오르게 했다.

2017년 여름날 사드가 배치된 일본의 교가미사키를 찾아서 떠난 적 있었다. 미국 영토인 괌 기지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감지하기 위해 사드 X-밴드레이더가 설치된 일본의 작은 마을이었다. 사드 X-밴드레이더는 바다를 향해 놓여있었지만, 레이더를 가동하는 발전기의 소음은 바다를 마주한 산 중턱의 마을까지도 종일 들려왔었다.

저음으로

“붕~~~~~~~~~~”

하는 낮은 소음에 노출된 삶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성주 사드기지 정문 철조망. 사진 소성리종합상황실

성주 사드기지를 마주하고 서 있으면 화가 난다. 아직도 사드가 성주에 배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적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사드는 두 번에 걸쳐서 경찰 병력 8천명을 동원해서 소성리 마을을 짓밟고 들어갔다.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해야 했던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철조망 너머의 성주 사드기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날의 아픔이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서 진통이 시작된다. 바라만 봐도 눈물이 흐른다.

사드가 놓인 자리는 미국 땅이 되어버렸고, 철조망을 쳐서 우리 땅을 갈라놓았다. 철조망 안 쪽은 군부대 시설이자 미국 땅이란다. 진리를 찾아 구도길을 걷고, 약초와 나물을 캐고, 성묘를 다니는 마을길이었던 곳. 성주 사드기지는 우리를 외부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군사시설이란 이유로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였다.

7시 50분이면 평화행동을 시작한다. 작지만 성능 좋은 엠프의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첫 시작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하고 싶은 연설을 하거나 구호를 외친다.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고,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드배치는 불법이다. 불법적으로 배치한 사드를 운영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래 좋다. 철조망 너머는 미국 땅이라고 너희 마음대로 할 거라면, 어떤 소음도 한국 땅에 내보내지 말라. 미군은 마을길을 밟지 말고, 군대도 마을로 내려오지 말라. 군 헬기는 한국 상공을 날아다니지 말라. 그럴 자신 없으면 사드 갖고 떠나라. 이 땅에는 사드 필요 없다.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 사드가 있는 한 우리 주민들은 단 하루도 발 뻗고 편하게 잠들 수 없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소리쳤다. 땅을 뺏긴 것을 용서할 수 없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미국 땅이 되어버린 사드기지 앞에서 마냥 울 수만도 없다.

매일 아침마다 성주 사드기지 앞에서 외친다.

“사드 빼! 미군 빼! 경찰 빼!”

목이 터지라고 외친다.

“미국의 군수산업 폭삭 망해라.”

달마산의 정기를 받아 목청을 돋우니 목소리는 한결 더 커졌다.

“미국 사드 미국으로, 평화는 이 땅으로”

“사드 가야 평화 되지! 사드 뽑고 평화 심자”

매일 아침마다 평화행동은 계속된다. 미군은 마을길로 내려오지 못한다. 한국 군인도 마을길로 나다닐 수 없다.

두 명이 모이면 두 명이 외치고, 세 명이 모이면 세 명이 외친다. 구미에서 오는 사람, 대구에서 오는 사람, 더 먼 서울에서도 내려와 하룻밤을 묵고 평화행동을 해낸다. 한반도에 또 하나의 미군기지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실천 활동이다.

성주 사드기지 정문 평화 행동. 사진 소성리종합상황실

아침 평화행동을 마치고 나면 마을회관을 향한다. 조금만 늦으면 전화벨이 울린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님이다. “어디에요? 얼른 밥 먹게 회관으로 와요.”

임 회장님과 규란 엄니는 마을회관에서 매일 아침밥을 한다. 새해 첫 날 사드기지로 올라가 목소리 높여서 “사드 빼” 라고 외쳤다. 새해 싸움을 결의할 때, 평화지킴이들 밥은 굶기지 말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나보다.

아침마다 밥을 하고, 평화행동을 하고 내려오는 평화지킴이를 위해서 상을 차려놓는다. 갓 지은 밥과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규란 엄니는 고봉으로 밥을 퍼준다.

아침 평화행동 참가자가 많을 때는 상을 세 개는 펴야 하지만, 사람이 적을 때는 한 상에 둘러앉아서 아침식사를 나눈다. 부엌일이 소성리 부녀회에 전가되는 것은 미안하지만, 한편으론 엄니의 노동에 기대고 싶다. 때론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다. 소성리 마을회관 부엌은 가슴 한편의 송곳 같다. 부엌은 음식 조리 뿐 아니라 후원 물품으로 들어온 식재료를 관리해야 한다. 내가 음식 하는 일에 낄 틈은 없지만, 그나마 상차림과 설거지 그리고 심부름을 해서 밥값을 한다.

엄니들에게 부엌일이 마냥 즐겁지는 않을 거다. 자신의 영역이라 자신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자부심은 높다. 사드를 뽑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거다.

평화지킴이가 매일 성주 사드기지로 평화행동을 하듯이 말이다.

평화행동을 거르지 않아야, 미군이 마을로 발을 못 디딘다.

우리가 약속했던 사드 뽑는 날까지 천천히 웃으면서 함께 하자던 약속을 지켜나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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