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시절 학교에서 근무할 때 대화의 상대는 주로 교사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 주제도 학생이나 학부모에 대한 것이 많다. 학부모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대화는 뒷담화가 재미있듯이 학교에 와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학부모를 비난하는 이야기는 자극적이면서도 흥미롭다. 교사들 간에 공감도도 높다. 이런 대화를 통해 교사들은 학부모로부터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학교를 퇴직하고 나니 아무래도 학부모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다. 학부모들을 만나서 학교 이야기를 하면 거의 십중팔구는 학교 교육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 불만의 중심에는 거의 교사들이 있다. 옛말이 떠오른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다.’

이런 현상은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만 세상을 보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동안의 교직 경험을 통해서 보면 일반 학부모가 개인적으로 학교에 올 때는 거의 자녀의 잘못한 행동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하여 학교로부터 ‘호출’된 것이다. 이때 교사들은 호출되어 온 학부모가 처한 상황이나 심정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는다. 교사는 자신의 위치에서만 말한다. 아이의 행동을 자초지종 이야기한다. 잘못된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모가 집에서 관심을 좀 가져달라는 부탁을 한다. 더 큰 잘못을 했다면 교칙에 의한 처벌을 말하고 반복되거나 더 심한 행동의 경우에는 전학이나 자퇴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듣기에 따라서는 협박 비슷한 말도 하게 된다.

이때 학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면 집에서는 말썽을 피우지 않을까? 학부모는 벌써 아이 때문에 상당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처참한 심정으로 오기 싫은 학교에 억지로 왔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선생님은 은근히 아이의 잘못에는 부모책임이 있다는 듯이 말하여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들도록 한다.

교사는 또 어떠할까? 학급에 말썽꾸러기 몇 명은 늘 교사를 힘들게 한다. 교사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가만히 보면 학급의 다른 아이들도 힘들게 한다. 말썽꾸러기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가 미워진다. 그러다가 아이가 사고를 친다. 그러면 교사는 안 해도 될 ‘사고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서 아이가 더 미워진다. 학부모를 부른다. 도대체 아이를 집에서 어떻게 키웠길래 아이가 이렇게 대책이 없나 싶다. 그 학부모에게 책임을 은근히 전가한다. 그런데 그 학부모는 은근히 학교가, 교사가 제대로 아이를 관리하지 못한 탓이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교육의 동반자여야 할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를 두고서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는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만 아이를 보는 것이다. 아이로 인한 서로의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자라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협력적 관계가 아니다. 아이의 성장과 교육을 위해 함께 해야 할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이렇게 왜곡되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과거 지식 중심의 학교 교육에서는 학교라는 제도적 틀이 권위를 가졌다. 그 속의 교사 또한 지식 전수자로서 권위를 가졌다.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의 후원자 정도의 수동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의 부당한 교육적 행위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다양한 정보화시대에서 학교는 더 이상 독점적 지식 전수의 제도적 권위를 가질 수가 없다. 학교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독점적 지식 전수 기관이 아니라 학교는 이제 학생들이 교육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삶의 주체로서 민주시민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 활동에는 학부모의 학교 교육 참여가 필요하다. 교사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부모와 지역 사회가 아이들의 교육에 나서야 한다.

최근 교육의 변화를 꾀하는 혁신학교는 학부모가 교육 주체로 나서 학교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할 때 그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학부모가 주체로 나서고 학생들이 배움의 주체가 되어, 학교를 배움의 교육공동체로 만들 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학교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학교자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학교자치는 교육의 세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민주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때 가능하다. 그 토대로 학생회, 학부모회, 교직원회가 민주적으로 구성되고 법적 기구화 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각 시도에서는 이들 조직을 법제화하는 조례 제정이 줄을 잇고 있다. 광주와 전북에서는 ‘학교자치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위 세 조직을 법제화하였다. 서울, 부산, 인천 등 7개 시도에서는 학부모회를 법제화하는 조례를 이미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고, 울산을 비롯한 다른 시도에서도 조례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다행히 경북에서도 김영선 도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경상북도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하여 제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다.

현재 임의 단체로 있는 자생적 학교 학부모회가 법제화되면 공식적으로 학교 교육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다. 이런 공식적 기구를 통해, 교육에서 배타적이고 독점적 지위를 가졌던 학교는 이제 학부모들을 교육의 동반자로 인식하여 서로 소통하고 협의하면서 교육 활동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변화하는 세계에서 진정한 자유는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고 이를 가능케 하려면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요구된다”라고 했다. 학교자치를 통해 학교에서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 그것 자체가 교육인 것이다.

보수적 지역 정서 속에서 아무쪼록 학부모회 조례안이 순조롭게 제정되기를 바라며 김영선 의원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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