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은 농촌 마을에서 가장 큰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새해의 안녕과 풍년 농사를 기원한다. 정월 대보름날 오후, 청도 삼평리로 향했다. 봄미나리 농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가로수에 내걸려있다. 유기농 딸기 판매 팻말을 건 비닐하우스를 지난다. 보리 순은 이제 한 뼘쯤 자랐다.

청도천을 건너, 산줄기에 우뚝 선 송전탑 사이로 겹겹이 걸쳐진 전선 아래를 지나면 도로 옆 ‘삼평 1동 경로회관(구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송전탑 반대 운동 연대단체에서 걸어둔 성탄 행사 현수막이 회관 마당에 걸려있다. 철제대문은 잠겨 있고, 회관 건물 안에도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회관 뒤뜰 작은 쪽문이 열려 있다. 회관 입구 미닫이문 아래에 신발 여러 켤레가 놓여 있다. 인기척을 하며 들어가니 안쪽 방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딸기 상자를 안고 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 안에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화투를 치고 있었다. 어디서 왔냐고,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할머니는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딸기를 씻어 쟁반에 담아 와서 먹기 좋게 자른다. 천장의 형광등을 켠다.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으셔서 대답을 드렸더니, 서랍장에서 종이와 필기구를 꺼내 적으신다.

“오늘 보름인데, 마을 사람 다 모여서 점심도 먹고 윷도 논다는데 우린 아무도 복지회관에 안 갔어.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길 가다 옷깃이 스쳐도 인사를 안 해.”

삼평리에도 정월 대보름 행사는 열렸지만, 할머니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경로회관을 지켰다. 전 마을 이장이 경로회관 건물을 팔아버리고, 새로 ‘마을회관’과 ‘복지회관’을 지었다. 동의 없이 회관 건물을 판 일로 지금까지 소송이 진행 중이다. 새 ‘마을회관’과 ‘복지회관’으로 정부지원금이 전부 가면서 할머니들은 ‘연금 받은 돈 모아서 쌀 팔아 밥해 먹고, 물세 내고’ 한다.

“전기 요금은 한 번도 안 냈어. 벌금 낼 돈도 없어. 할마이 붙들어 간다고 하면 이불 하나씩 싸매고 들어가서 살아야지.”

동네에서 마을 사람들이 ‘50만 원 내고, 10만 원 내고 해서 지은’ 회관이었다. 그 돈 돌려줄 테니 회관에서 나가달라고 하지만, 할머니들은 ‘버티고 있다’.

“어느 날 마을회관에 이제 못 들어온다고 나가라고 하길래, 다들 나왔지. 그랬더니 문을 다 잠가 버리고 못 들어가게 하데. 새로 짓는 회관 건너편, 먹을 물도 없는 고추밭 비닐하우스에서 고생을 말도 못 하게 했어. 여름에는 얼마나 덥던지! 7월 말에 39도라고, 폭염주의보라고 마을 방송을 하는데, 이래가 사람 죽겠다 싶어서 회관으로 다시 돌아왔지.”

할머니들은 1년 넘게 두 명씩 조를 지어 돌아가면서 매일 잠을 자며 회관을 ‘지켰다’. 지난 연말 성탄 행사에 온 활동가에게 ‘찢어진 현수막 꼬매게 좀 떼줘’ 했더니, 오래된 현수막은 떼서 버리고 새 현수막 두 개를 달아주고 갔다고 한다. 그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왔었다며 웃었다.

비는 잦아들었지만, 밖은 흐리고 어두웠다. 눈도 침침하실 텐데, 왜 불도 켜지 않고 계셨을까.

“우리 바라는 건 나가라는 소리 안 듣고 여기서 사는 것뿐이라. 그리고 한전 사장이 와서 주민들한테 사과하는 거. 우리는 경로회관, 송전탑 찬성한 사람들은 복지회관 이렇게 나눠져가지고. 회관이 있는데 또 지어서 뭣하나. 뭐 하러 돈을 자꾸 주나. 한전이 이렇게 갈라놓았지.”

할머니들은 ‘한전’ 사장의 사과를 원했다. 나주 혁신도시에서 열린 한국전력공사 신청사 개청식 날,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한전 사장을 만나려 ‘몇 시간을 밀고 당기고’ 했지만 결국은 만나지 못했다. 청도를 비롯해 밀양, 군위, 단양에서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나주 한전 본사까지 가서 마주한 이는 ‘새까맣게’ 앞을 가로막은 경찰뿐이었다.

“(송전탑이) 비슬산 관광지로는 못 가고 여기로 왔지. 왜 약한 사람을 딛고 밟나. 청도군에도 돈이 많이 간다는데 죽을 사람은 우리뿐이라. 서장이 우리한테 손가락질하면서 ‘끌어내! 끌어내!’ 그래. 경찰 인권위에서 (인권침해) 조사한 게 4월에 나온다는데, 제대로 조사해서 우리 분을 풀어 줘야지. 옳은 건 옳다, 그른 건 그르다 정부가 밝혀야지.”

벽시계가 6시를 가리켰다. “할머니, 삼평리 많이들 오라고 한 말씀 해주셔요” 했더니, “우리가 아무것도 줄 것도 없고, 오면 미안하기만 한데 그 말을 어떻게 하노” 한다. 이어서 할머니는 말했다.

“나이 많은 노인이 자식, 손주랑 따뜻한 아파트에서 같이 있다가, 혼자 자기 집 주택으로 오며 그랬대. 오면 아기 춥다고, 오지 말라고. 그러고 와서는 내내 집 문 앞에 서서 자식 오나 손주 오나 기다리더래. 못 오게 해도 기달리고 그렇다.”

경로회관 밖으로 나오니 날이 저물어 어두웠다. “구름이 끼가 달이 없네” 한다. 할머니들은 골목길로 사라졌다. 새로 지은 마을회관으로 가 보았다. 회관 입구에 의자를 두고 누군가 담배를 피운다. 새 회관 건너편, 할머니들이 머물렀던 비닐하우스는 허물처럼 남아있다. 언제 달았을지 가늠할 수 없는 찢어진 현수막이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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