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버닝썬 사태에 대한 우울한 단상
[칼럼] 버닝썬 사태에 대한 우울한 단상
  • 이성우
  • 승인 2019.03.05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망가지고 부유한 사람은 너무 부유해서 망가져가는 천민자본주의 한국사회

한류 스타 빅뱅의 멤버 승리가 소유주로 알려진 버닝썬에서 벌어진 마약 성폭력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이상한 것은, 우리사회 부유층의 타락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전대미문의 추한 사건에 사회적 공분이 크게 일지 않는 점이다. 미온적인 분노조차 마약을 투약하고 성폭력을 저지른 부유층 남성들이 아니라, 이들의 가공할 일탈에 환경을 제공하고 도운 버닝썬 관계자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아이돌 스타 승리를 구심으로 한 버닝썬 측의 잘못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근본원인은 제대로 조명되어야 한다.

버닝썬과 관련한 비밀들이 양파껍질처럼 하나둘씩 벗겨지는데 하나같이 보통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다. 버닝썬은 추하디 추한 천민자본주의 한국사회의 베르사유궁전이자 소돔과 고모라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 가운데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정리해보자.

버닝썬 폭력사건 뉴스보도 화면 ⒸMBC
버닝썬 폭력사건 뉴스 보도 화면 ⒸMBC

2018년 12월 14일 새벽 한 남성이 성추행 당하는 여성을 막으려다가 버닝썬의 건장한 남성들로부터 폭력을 당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출동한 경찰은 오히려 가해자들을 두둔하고 피해 남성을 연행하였다. 이에 분개한 남성이 변호사를 고용하여 이 문제를 사건화 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술에 취해 심신이 미약한 여성 고객을 보호해야 할 클럽 직원들이 오히려 추행을 하며 어디론가 끌고 가려했다. 이에 한 남성 고객이 '기사도'를 발휘해 이 여성을 방어하려 하자, 가해자들은 ‘작업’을 방해하는 남성을 공격했다. 클럽 직원과 고객의 역할이 뒤바뀐 것이다. 상식적인 차원의 ‘역할 전도’의 절정은 출동한 경찰의 행태였다. 경찰과 버닝썬의 유착관계는 지금 밝혀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클럽의 건장한 직원들이 여성을 어디로 끌고 가려 한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 답은 며칠 뒤 디스패치의 보도에서 밝혀졌다.

버닝썬 직원간 카톡내용 Ⓒ디스패치

버닝썬의 VIP룸을 관리하는 MD들이 주고받은 카톡 내용이다.

MD는 Merchandiser의 줄임말로 ‘상품기획자’란 뜻인데, 버닝썬에서는 VIP고객의 채홍사 역할을 하는 남성 직원이다. VIP고객이 찾는 ‘물게’란 ‘물 좋은(예쁜 여성) 게스트(고객)’의 줄임말이고, ‘골뱅이’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여성을 뜻한다. ‘홈런 친다’는 VIP고객이 자신의 은밀한 룸에서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작금의 버닝썬 사태는, 하룻밤 술값으로 수 천 만원을 결재하는 VIP고객의 “홈런 치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 전부이다.

VIP는 홈런을 욕망하고,

MD는 VIP가 던져주는 (아마도) 백만 원짜리 수표를 욕망하고,

버닝썬은 VIP 고객의 수천만 원 결재를 욕망하고,

경찰은 버닝썬이 던져주는 떡값을 욕망한다.

이 커넥션의 구심에 VIP고객이 있다. 하룻밤 욕망을 불태우기 위한(Burning) 베르사유궁전에 하이패스 입장권을 지닌 이름 모를 탕아들은 천민자본주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1퍼센트, 아니 0.1퍼센트의 귀족들이고 관계망 내의 나머지 부류들은 어느 교육부 관료의 용어로 ‘개돼지들’이다.

문제는, 이 개돼지들이 0.1퍼센트 귀족의 욕망 충족을 위해 희생물을 어떻게 갖다 바치는지, 그리고 귀족은 그 희생물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유투브에 떠도는 충격적인 영상이 말해준다.

버닝썬의 VIP룸으로 밝혀진 은밀한 장소에서 한 남성과 한 여성이 흐트러진 정사를 벌이는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왔다. 뉴스에서 ‘유사 성행위’라 보도된 행위인데, 남성이 주도하는 이 행위가 오히려 더욱 선정적이고 슬프다. 청춘남녀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무슨 짓을 어떻게 벌이든 그것은 본인들의 자유다. 문제는, 그 자리에서 제3의 인물이 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이렇게 인터넷에 떠도는 점이다(모자이크 처리는 되었지만). 아마 VIP가 자신의 홈런 치는 모습을 두고두고 음미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촬영을 요구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리 술에 취한들 최소한의 판단능력이 있는 여성이라면 이 일련의 상황들을 원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현재 버닝썬과 관련한 최대 이슈인 마약 문제가 등장한다.

버닝썬 직원의 성범죄 조직적 관여 정황 보도 ⒸMBC
버닝썬 직원의 성범죄 조직적 관여 정황 보도 ⒸMBC

속칭 ‘물뽕’으로 통하는 GHB는 마시면 몇 분 안에 중추신경계가 마비되어 의식을 잃는 환각제다. 무색무취여서 속기 쉬우며 복용 후 몇 시간 만에 몸에서 약 성분이 사라지기 때문에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워 강간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버닝썬의 MD들은 VIP의 홈런을 돕기 위해 이 물뽕을 공급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직접 물뽕 작업하여 의식을 잃은 여성 사진을 VIP에게 전송해서 “빨리 드시러 오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보다시피, 버닝썬에서 여성은 인격체가 아닌 음식물이나 상품으로 인식된다. 최근 폭로된 또 다른 카톡에서 승리가 ‘잘 주는 애들’이라 표현한 것에서도 그런 점을 엿볼 수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들 엽기적 행각의 문제점은 음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가학적 변태성에 있다.

무서운 세상이다. 범죄가 난무하는 멕시코나 아프리카의 오지도 아닌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을 자랑하는 한국 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유념할 것은, 이런 일들이 클럽 버닝썬에만 벌어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사태는 버닝썬의 문제로 바라 봐서는 안 되며, 이 클럽의 주인인 승리의 도덕성 문제로 몰고 가서도 안 된다.

도대체, 강남 베르사유궁전의 0.1퍼센트 탕아들은 왜 이토록 비정상적인 방식의 욕망을 좇는 것일까? 이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버닝썬에는 1억짜리 양주세트 상품이 있다고 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다. 이 특별한 수요의 주체는 천민자본주의사회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0.1퍼센트 혹은 0.01퍼센트들일 것이다. 버닝썬의 VIP 가운데는 미성년자도 있었다.

해당 미성년자 A 군은 지난해 7월 부모의 돈을 훔쳐 버닝썬에 갔다가 어머니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됐다. A 군은 버닝썬에서 술값 1800만 원을 미리 입급해 일명 '하이패스'로 입장했고, 80만 원짜리 고급 샴페인 20병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경닷컴, 2019.2.22.)

도대체 집 안에 현금이 얼마나 많으면 아이가 1,800만 원을 훔쳐 나올까?

이렇듯,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 부류들이 버닝썬의 VIP룸을 드나들 진대, 이들은 자신의 부에 걸맞은 아주 특별한 쾌락을 욕망할 것이다. 알다시피, 강남에는 부르주아들이 욕망을 배설할 고급 향락업소가 즐비하다. 하룻밤 술값으로 1억을 소비할 0.1퍼센트들을 위한 연예인 뺨치는 미녀들이 대기하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돈이 너무 많아 주체를 못하는 0.1퍼센트들은 "보다 짜릿한" 쾌락을 원한다.

이에, 버닝썬의 장사꾼들(merchandiser)이 이들의 특별한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준비한 상품은 “강간”이다. 경찰이 뒤를 봐주는 버닝썬에서는 어떠한 문제도 무마가 된다. 물뽕은 증거가 남지 않으며, 새벽까지 흥청망청 즐긴 여성이라는 약점을 빌미로 강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에겐 경험적으로 익숙한 상식이다!

강간은 아무나 범할 수 없다. 정상적인 남성이라면 강간을 통해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이들은 약에 취한 상태에서 그 짓을 한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0.1퍼센트 귀족은 변태적인 쾌락에 미치고, 장사꾼은 돈에 미치고, 천민자본주의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미쳐간다.

결국, 버닝썬 사태는 “부의 불공평한 분배가 빚은 참사"인 것으로 나는 본다.

정직한 노동으로 돈을 번 사람이 이런 도착적인 욕망에 빠질 일이 없다. 기형적인 부의 형성이 기형적인 고객과 기형적인 업체와 기형적인 영업방식을 만들고 선량한 대중이 이 기형적인 환락에 동참하여 사회 전체가 소돔과 고모라화 되어 가는 형국이다.

자살현황 Ⓒ한국일보
자살현황 Ⓒ한국일보

미성년 아이가 하룻밤 술값으로 날린 1,800만 원은 서민들의 1년 벌이인 것을 생각할 때, 버닝썬 사태는 우리를 한없이 우울하게 한다. 합리적인 나눔을 위해 부자증세를 하려 하면 "좌파 정책" 운운하며 바르르 떠는 사람들이 도착적인 쾌락의 대가로 1억을 껌값처럼 지불한다니 억장이 무너진다.

40분 마다 한 명이 자진하는 OECD 부동의 자살 1위국이다. 대다수는 경제적 빈곤을 원인으로 목숨을 끊는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망가지고, 부유한 사람은 너무 부유해서 망가져가는 이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이런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서는 아니 될 일이다. 최순실 이후 대중적 분노를 결집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