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내가 사는 세상"을 소개합니다

 

Prologue.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지역배경 노동영화, <내가 사는 세상>

 

<내가 사는 세상>이란 독립영화가 3월 7일 전국 개봉을 합니다. ‘지역출신으로 꾸준히 돈 안 되는 독립영화계를 떠나지 않고 있는 최창환 감독이 대구를 배경으로 비정규직 세대의 사랑과 불안을 담아낸 장편 극영화입니다. 지역기반 독립영화인들이 지역을 배경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지만 정작 그 소개와 홍보는 소위 중앙’, 서울을 중심으로 대부분 이뤄지고 있습니다. 역수입의 폐해입니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입니다.

누구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더라”, “세계 00개국에 수출되어 벌써 손익분기점에 닿았다더라같은 뉴스가 방송과 언론을 휩쓸어야 우리들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극장으로 향하곤 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고, 먹고 살기 바쁜 시민들은 숱한 개봉작들을 각자의 선구안으로 고를 짬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만 영화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 대부분의 영화들은 최소한의 햇빛을 받지 못해 시들어 갑니다. 그런 와중에도 기어코 개봉하게 된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영화일까요?

 

2. <내가 사는 세상>이 보여주는 대구경북지역 청년세대의 초상

 

출산율이 최저라고 몇 해 전부터 주류언론이 난리를 칩니다. 인재가 해외로 유출된다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으면 안심하고 맡길 데가 없고, 취업하기 위한 난이도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더 힘겹습니다. (‘지방소멸이 사회적 화두가 되어가지만) 정작 아이를 낳으면 사회적 육아를 위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렵게 살아남아 성장하면 입시와 취업지옥을 겪어야 합니다. 그나마 한국사회의 돈과 일자리는 수도권으로 블랙홀마냥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이런 풍경은 지난해 대구 수성못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장편영화 <수성못>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광경입니다. 적어도 대구는 경북보다는 조금 낫다고 합니다. 대구에선 서울을 원망하지만 경북의 시ㆍ군에서는 "그래도 대구는!" 이 흘러나오게 마련이지요. 남겨진 빈자리는 그래도 동네에서 물려받은 게 있거나 어깨 힘 좀 주는 이들이 활개치게 됩니다. 지역의 수치라 불리며 부정적으로 동네 이름을 전국에 알린 예천군의원들의 망신살은 그 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렇게 야심이 있거나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이들은 서울로, 서울로 모자라면 구미로 유학을 떠납니다. 바깥에서 공히 인정될만한 경력실적을 쌓아야 다시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지역에 애착을 가지고 남거나, 타향으로 떠날 형편이 못되는 이들은 마치 쭉정이처럼 움츠러들고 열패감에 휩싸입니다. 각자 노력하며 자리잡고자 하지만 그런 활동은 상당부분 무시당하거나 인정받기 힘듭니다.

<내가 사는 세상>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암울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노동의 현실을 대구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풀어냅니다. 지역의 관객이라면 좀 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익숙해지기 좋은 조건이지요. 대구의 특정공간들을 풍경으로 담고 있지만 수도권에서 만든 영화에 비해서는 분명 대구ㆍ경북지역 관객들에게는 친화적이어서 강점이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우울한 세상 더 잿빛으로 보이게 되는 부작용도 분명 있을 법합니다. 두 주인공 중 시은의 에피소드는 그런 지점을 툭 던지듯 당연하게 후벼 팝니다. 아마 자신의 이야기로 고개를 탁 치며 영화를 보고, 끝나면 술 한 잔 생각날 관객들이 얼마라도 분명 계실 것입니다.

마침 영화제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화가 떠오릅니다. 속칭 SKY에 속하는 대학의 취업준비학회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한편을 개막작으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렇게 일상을 잘 담아낸 작품이 드물어 기대하며 작품을 소개했지만, 첫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지역 관객들은 본인들의 경험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소감을 밝혀서 감독님과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지요. 관객의 항변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쟤들은 그래도 대기업이나 국제기구 인턴까지 진입하지 않느냐, 그게 우리에겐 얼마나 높은 벽인지 아느냐는 울분이었지요. 물론 저는 지금도 그 작품이 예전처럼 학생운동이나 사회변혁에 관심을 갖지 않고, 취업이 절대명제이자 신앙이 된 세태를 잘 담아냈다고 생각하지만,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타이밍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답니다.

익숙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또래 세대의 애환은 요즘 독립영화에서 흔히 다루는 배경이라 치부하기엔 무척이나 상세하고 쏙쏙 스며듭니다. 누구나 나, 혹은 지인이 '알바'하다 임금 떼어먹히거나 부당한 처우를 겪기 일쑤고, 노력보다는 인맥이나 간판이라는 편견 때문에 속상했던 경험이 우리 주변에는 널려 있으니까요.

 

3. 오랜만에 도착한 본격 노동영화’, <내가 사는 세상>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게 마련입니다. 공상과학 영화도요. (개인적으론 오히려 '판타지'라는 명목으로 작가가 노리고 할 말 다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1990년대 초반의 파업전야같은 작품을 노동영화라 부릅니다. 가장 근래에는 서울 상암동 모 대형마트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났던 일을 극화한 <카트> 같은 작품이 있었지요.

즉 노동문제를 다루면 억울한 현실에 분개한 이들이 어렵게 힘들게 모여서 노조를 만들어 싸워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이야기를 노동영화라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런 내용을 담은 영화는 점점 줄어들어만 갑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이기에, 점점 더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고 노동의 가치나 존중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세태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이죠. 오히려 요즘 등장하는 노동영화들은 반대급부로 왜 그런 (조직적으로 싸우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는지에 대한 스케치에 주력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도 그러합니다.

이 영화가 주목받을 지점은,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노동영화가 잘 비춰주지 않던 분야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커플인 남녀는 각각 음악과 그림으로 꿈을 꾸지만 생계를 위해 퀵서비스 기사와 학원강사로 살아갑니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본인들의 주 전공으로 먹고 살 수 없어 택한 차선책이지요. 예술로 먹고 살 수 없는 베짱이의 숙명을 잘 알고 있죠. 주인공들은 결코 세상물정을 모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찌들었다면 찌들었죠. 그런 그/그녀에게도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불행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그/그녀에게 닥쳐옵니다.

'왜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느냐? '는 소리는 안하느니만 못하게 보입니다. ‘민규는 우연히 길거리 노동상담을 통해 월급 수령액이 이상함을 발견하고, 정당한 급여를 떼어먹는 관리자에게 항의해 체불임금을 받아내지만, 관리자는 적반하장으로 '이 바닥에서 일 못할 줄 알아!' 라고 성질을 부립니다. 그게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 풍경에 보다 가깝습니다. 시은은 우리도 서울 유학파 간판을 써야 하니 속칭 새끼강사로 내려앉으라는 학원장에게 불만은 토로할 수 있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민규는 공연계약서를 써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를 했다가 공연장에서 쫓겨납니다. 사회적으로 남의 일일 때는 상식이던 것들이 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은 멀고 나에게 일자리를 주는 선배들은 가깝습니다. 특히 사적 관계로 이어지는 인맥과 학연ㆍ지연이 일자리 정보에 결정적요인이 되기 십상인 지역생태계는 이런 구습과 폐단이 또아리를 틀고 악영향을 배양하기 딱 좋은 토양입니다.

서울 등 수도권은 그나마 수요가 많고 일자리가 크기 때문에 배경이 없어도 어떻게 치고 들어갈 여지가 가끔씩 생기기도 합니다. 사회인식의 변화가 피부에 조금 더 일찍 와 닿습니다. 하지만 지역 생태계의 폐쇄성은 작은 사회’, ‘닫힌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대화시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비극은 정확히 그 부분을 압축해 보여줍니다. 흔히 베짱이처럼 취급되지만 엄연한 노동의 영역에 속하는 문화예술분야 노동이 더 소외되고 은폐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내가 사는 세상>은 새로운 영역을 노동영화 범주에 포함시키면서도 단순한 배경소재가 아닌, 그 자체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노동문제를 올려세우는 21세기형 노동영화입니다.

 

Epilogue.

 

<내가 사는 세상>은 열악한 지역의 영화제작환경 속에서도 일정 부분 이상의 성취를 이룬 영화로 완성되었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여러 영화제에서 이미 검증받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극장개봉은 별개 문제입니다. 한국의 영화시장은 사회의 다른 영역과 매한가지로 대기업의 독과점 치하에 놓여 있으니까요. 전국 개봉이라 하지만 지역별로 섬처럼 드문드문 떨어진 외로운 몇몇 극장에서 관객들이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길을 헤매야 할 운명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정처 없는 방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라 노동영화가 왜 안 나오냐고 목말라하던 이들, 영화는 왜 전부 서울 풍경만 담느냐고 푸념하던 이들 앞에 <내가 사는 세상>이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으니, 소비자 의식이 아니라 동료애로 맞이해줘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조금만 인터넷 검색하면 지역에도 상영관이 한두 곳 존재하기는 합니다. 3월 7일 개봉했지만 언제까지 극장에서 버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극장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내가 사는 세상>을 맞이해주세요.

 

작품정보 ]

내가 사는 세상 Back from the Beat (2018)

드라마한국2019.03.07 개봉6712세이상관람가

(감독) 최창환 (주연) 곽민규, 김시은

19회 전주국제영화제(2018) CGV아트하우스 - 창작지원상

 

필자본인(김상목)
ⓒ김상목

글 _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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