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별 이야기] ‘좀생이 별’ 보며, 풍년을 기원하자
[좌충우돌 별 이야기] ‘좀생이 별’ 보며, 풍년을 기원하자
  • 김용식
  • 승인 2019.03.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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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력 2월 초 엿새 ‘좀생이 별’ 행사가 강릉 하평리에서 열린다.

겨울부터 이른 봄 저녁,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별무리가 ‘좀생이 별’이다.

‘좀생이 별’은 서양별자리의 황소자리에 속한 별로 플레아데스(Pleiades) 성단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별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메시에 목록 45번(M45)인 아름다운 산개 성단으로 잘 알려져 있는 별무리이다.

'좀생이 별’, 플레아데스 성단은 태어난지 1억년 내외의 아주 어린 별로 사람 나이로 보면 태어난지 한 돌 쯤 되는 별 무리다. 천체망원경으로 볼 경우, 주변이 연한 푸른 빛을 띠는 매우 밝게 보이는 별들과 조금은 작아 보이지만 수 십개에서 수 백개의 별들이 규칙 없이 흩어져 보인다.

특히, 천체 촬영 방법으로 노출을 오래 주고 사진을 찍으면, 어린 별의 반짝이는 빛과 푸른 빛을 내는 성간 물질의 띠들이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별이다. 태양계에서는 약 440광년(135파섹) 정도의 거리에 있는, 지구와 가까이 있는 별무리(성단)로 맨눈으로도 6~7개가 보여 여러 문화권의 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좀생이 별'=플레아데스 성단
'좀생이 별'=플레아데스 성단 ⓒ김용식

옛 사람들은 별들이 좀스럽게 모여 있다고 하여 ‘좀생이 별’ 또는 ‘좀상별’이라고 했고, 고구려 고분인 '강서 약수리 벽화'의 남 주작 꼬리 뒷쪽 위에서도 확인되듯 고대에서부터 친숙한 별무리이다. 중국과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 별을 묘성(昴星)이라 했으며, 일본에서는 같은 의미의 쓰바루(すばる, 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딸인 알키오네(Alcyone), 아틀라스(Atlas), 엘렉트라(Electra), 마이아(Maia), 메로페(Merope), 타이게타(Taygeta), 플레이오네(Pleione)가 별이 되었다 하여 플레아데스(Pleiades)라 부른다.

남아메리카의 몇몇 부족의 말에는 좀생이 별을 부르는 이름과 '한 해(年)'를 나타내는 말이 같다고 한다. 고대 수메르에서도 ‘좀생이 별’을 춘분점의 별자리,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1일에 오르는 별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약 5천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는 세차운동에 의해 춘분점이 이동하여, 춘분점에 양자리가 온다.) 요즘으로 보면 황도 12궁의 으뜸 별자리였다.

또한, ‘좀생이 별’이 뜨는 때가 1월 1일~3일이면 윤년을 두지 않았고, 3일이 넘어 뜨게 되면 윤년을 두었다고 한다. 이때가 5천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의 현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간절함이 전해온다. 이와 같이 옛 사람들에게 ‘좀생이 별’은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여러 방법으로 '좀생이 별'과 관련한 별점인 '점묘(占昴)'를 보았다. 점묘는 음력 2월 초엿새 저녁, 마을의 너른 마당이나 높은 데에 올라가 달과 ‘좀생이 별’의 위치를 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이 풍속은 오늘 날 정월 대보름 풍속으로 흡수되거나 거의 사라지고 없다. 다행히도 강릉의 ‘좀상날’ 행사가 나름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고, 그 일부가 강원도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수없이 많은 신화들이 자취를 감췄고, 미신이란 이름으로 그 흔적조차 사라진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강릉의 한 마을에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오는 ‘좀생이 별의 날'이 바로 ‘좀상날’이다.

2019. 3. 12 초저녁 달과  '좀생이 별'(플레아데스 성단)의 위치 ⓒ김용식
2019. 3. 12 초저녁 달과 '좀생이 별'(플레아데스 성단)의 위치 ⓒ김용식

'좀생이 별’은 보통 뿌연 한무리로 보이는데, 주변이 어둡고 하늘이 좋으면 6~7개를 샐 수 있다. 최근 하늘이 아주 좋은 날 9개를 샜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미국 어디에선가는 16갠가 18갠가 까지 샜다는 거짓말 같은 풍문이 들려오기도 한다.

오늘(3월 12일)이 음력 2월 초엿새다. 달과 ‘좀생이 별’과의 거리를 보며 올해의 풍흉을 점쳐보고, 3월이 가기 전 ‘좀생이 별’ 무리에서 몇 개까지 별을 샐 수 있는지 도전해 보자.


<강릉의 ‘좀상날’ 행사>

강릉의 초당마을과 송정마을에서 음력 2월 초엿새에 하던 민속놀이다. 강릉에서는 음력 2월 초엿새를 ‘좀상날’ 또는 ‘좀생이 날’이라 부른다. 이날이 되면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과 음식을 마련한다. 함께 초저녁에 떠오르는 달과 ‘좀생이 별’과의 거리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친다. 이날 ‘좀생이 별’이 달에 가까이 따라가면 그해는 흉년이고 ‘좀생이 별’이 달에서 멀리 떨어져서 따라가면 그해의 농사는 풍년이라고 믿었다. 달은 밥을 이고 가는 어머니이고 ‘좀생이 별’은 밥을 얻어먹기 위해 따라가는 아이라고 보았다.

강릉의 초당마을과 송정마을은 남대천을 중심으로 넓은 포남뜰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곳으로 ‘좀상날’ 저녁에 두 마을간 여러 놀이로 한 해의 풍흉을 점친다. ‘좀상날’ 한 낮에는 음식과 밤에 쓸 홰를 준비하는데, 각 가정마다 가족 수만큼의 홰를 만들고 날이 어두워지면 마을회관에서 1km정도 떨어진 사천진리 다리까지 하평농악대 가락에 맞춰 온 주민이 함께 횃불을 들고 따른다. 마을의 어른이 '헌관'이 되어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 다음 횃불을 들고 회관으로 돌아와 마당에서 횃불을 모두 태우며, 주위에서 술과 한바탕 놀이마당을 벌이고 한해의 힘찬 새 출발을 다짐한다.

예전에는 마을을 갈라 농악대가 쇠절금 겨루기를 하고, 횃불싸움, 돌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1993년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좀상날 억지다리 뺏기 놀이'가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2001년 제42회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사천하평답교놀이'는 대통령상을 받았다. 사천하평답교놀이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좀생이 별’과 세시풍속>

조선후기 다산 정약용 보다 14세나 어리지만 다산의 친구로 평생을 교류했던 김매순(金邁淳)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좀생이 별’과 관련한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그 내용을 보면 ‘2월 초 엿새 농가에서는 초저녁에 묘성(좀생이 별)과 달과의 거리의 원근을 보아 그해의 일을 점친다. 이 별이 달과 나란히 가거나 촌척(寸尺) 이내의 거리를 두고 앞서 가면 길하고, 앞이나 뒤로 너무 멀리 떨어져 가면 그해에는 흉년이 들어 어린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한다. 징험(徵驗)해 보니 제법 맞는다’고 적고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좀생이가 달 앞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