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박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0_‘사법 불신의 시대에 소개하는 “RBG” 스토리

삼권분립 기반의 제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요즘만큼 그 일각인 사법부가 불신받는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과거 1988년 탈주범 지강헌 사건 때 유행어 이후로 한국 사회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느끼는 사법 관련 인식은 그리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나마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결정 정도가 근래 몇 안 되는 납득 가는 중요 판결이었으나, 최근 지지율 30%를 회복한 제1야당에선 그 탄핵 결정조차도 부정하는 세력이 득세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시국에 한편의 외국 다큐멘터리가 극장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원제 RBG)입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누구이며 왜 필자는 이 다큐를 추천하는 걸까요?

 

1_연방대법관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9명으로 구성되며, 우리나라로 치면 대법원+헌법재판소 기능을 맡습니다. 일단 임명되면 자신이 그만두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종신 지위가 보장되고, 소송 좋아하고 변호사가 동네마다 있는 미국에서 오만가지 대두되는 사회적 논쟁의 판정자로서 엄청난 위상을 가집니다. 연방대법관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Justice’일 정도니까요. 이 9명의 정의 수호자들의 결정은 미국 사회를 뒤흔들곤 합니다. 그만큼 민감한 폭발력을 가진 정치적 주제를 국가와 사회 통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로 조율하고 봉합하는 기능을 하지요. 그래서 혹자는 ‘고도의 정치적 판결’, 결국 눈치 보는 것밖에 안 된다고 폄훼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양당제 치하의 미국에서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기 때문에 집권세력과 코드가 맞는 법조인이 대법관이 되니 항상 4:4 비등한 세력균형에 대법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맡는 식으로 운영됩니다. ‘RBG’,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는 그 두 세력 중 ‘진보’를 상징하며 가장 고령의 대법관입니다. 연방대법원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유대계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 커뮤니티가 힘을 발휘하는 것과는 별개로 소수민족으로서 일상적 차별에도 노출되기 때문에 대법관을 유대계가 맡는다는 건 드문 일이지요. 

그렇게 ‘RBG’는 언뜻 파악해 봐도 충분히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그런 그녀의 캐릭터가 젊은 층에도 인기가 높아서 캐릭터화가 될 정도이지요. 영화는 그런 긴즈버그 대법관의 인지도와 미국 사회에서 그녀가 갖는 위상을 선보이며 출발합니다. 그리고 연방대법관이 되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흥미로운 일들이 그득한 생애라 할 수 있겠죠.

 

2_‘진보적여성 법조인의 생애와 주요 판결

법조인의 길을 선택했지만, 학창 시절은 여전히 남존여비 풍토가 특히 보수적인 법학대학과 법조계 내에 팽배하던 상황이라 로스쿨을 옮기거나, 남자 동기라면 추천받았을 직위에도 오르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소외되다 보니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상담과 법률지원을 꾸준히 할 수 있었고, 군대 문제나 성소수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재난, 특히 ‘SEX’ 대신 ‘GENDER’로 성적 차이를 구분하는 용어 구사를 맨 처음 시작한 이라고 전해지지요. 낙태 문제나 성 소수자 문제는 의외로 미국 사회 내 보수적, 근본주의적 우파 계열들의 존재로 인해 격렬한 갈등을 일으키는 것들인데, 긴즈버그 대법관은 그런 부분에선 스스로 ‘선봉’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지요. 1960년대 격렬한 학생운동이 시작되기 전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RBG는 모범생에 가까운 타입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충분히 여유로운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고 있었죠. 그러던 그녀가 군사학교에 남성 입학만 허용한 주 정부가 “양성평등권 침해”를 저질렀다고 판결하고, 국가가 “장애인을 과도하게 시설에 격리하는 차별”을 지적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특히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요. “동성 부부가 이성 부부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연방결혼보호법‘ 폐지와 ”동성결혼 합법화“에도 앞장섰지요.
 
다른 대법관들도 큰 위상을 갖고 있지만, RBG는 특히 사회적 대립이 극명하게 확인된 사안들에 대해서도 판결뿐 아니라 본인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을 적절히 구사하고 활용하는데 독보적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화는 마치 미국 현대사를 압축해놓은 듯 역사적 판결의 순간을 잡아냅니다. 잘 정리 요약된 미국 사법의 현대역사를 보는 기분이지요. 특정 정치조직에 속하거나 학생운동 경험자가 아닌데도 RBG의 행보는 노련한 정치적 판단과 타이밍 포착을 보입니다. 그녀가 성실하기 때문이겠지요. 전투적 진보파로 분류되지만, 정치적 입장으로는 정반대에 가까운 강경보수계열 대법관과도 우정을 쌓는 등의 소탈한 면모도 영화에선 양념으로 잘 활용합니다. 아무래도 사회운동가로 시작하지 않고, 비록 홀대는 받았을지언정 명문대와 주류사회 출신이니 RBG 같은 가정도 화목하고 남편과의 스토리도 있고 굵직한 역사의 현장에 서 있던 캐릭터는 재료만 잘 살리면 관객의 구미를 당기는 작품으로 정리하기 좋으니까요.

 

3_미국적 영웅담의 잔향이 약간 아쉽지만...

영화는 매우 모양새가 전형적인 미국 상업 다큐의 형식을 취합니다. 그 기준에서 아주 잘 뽑은, 웰메이드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삐딱해지고 싶은 순간이 종종 생기기도 합니다. RBG의 건강 문제나 판결 관련 고충도 안 나오진 않지만, 캐릭터가 너무 대단하고 강력해서 양심을 지키고 진보적인 포지션을 가진 여성 법조인이 자신의 재주와 능력으로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내는 영웅담에 가깝거든요. (실제로 RBG가 대단한 인물이긴 합니다) 하지만 약간의 신파적 편집으로 오히려 시민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혐의라면 ’개인의 선의와 노력으로 (굳이 정당이나 결사를 안 만들더라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암시, 하지만 애초에 정치 권력과 금력에 휘둘리면서 스스로 버려놓은 사법부의 명예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실태에 개탄하는 이들에게는 후련하고 참조할 만한 내용이 가득한 건 분명 사실입니다. 기왕이면 지역의 뜻있는 법조인이나 단체에서 영화 같이 보기를 통해 쟁점이나 배경에 관한 이야기 나눔을 같이 하면 더 효과가 좋을 영화입니다. 

3월 28일 대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등 지역 몇몇 상영관에서 개봉할 예정입니다.
 

 

[ 작품 정보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RBG (2018)

다큐멘터리미국2019.03.28 개봉 예정98전체관람가

(감독) 벳시 웨스트, 줄리 코헨

(주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90회 미국비평가협회상(2018) 다큐상

-. 71회 미국감독조합상(2019) 감독상-다큐 후보

-. 72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2019) 다큐상 후보

-. 91회 아카데미시상식(2019) 주제가상 및 장편다큐상 후보

 

글 _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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