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갈등을 넘어 치유와 성장으로 가는 가정과 학교
강연에 들어가기 전 PPT화면에 떠 있는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용어가 낯설었다. 뜬구름 잡는 교육계의 연구 소재는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다. 강의를 듣고 보니 기우였다. 가정에서 자녀들 간의 다툼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했던 부모의 입장이거나, '왕따'와 '투명인간', 폭력사건까지 각종 논란의 해결자로 나서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이라면 하루에 한 번은 고민했을 법한 몹시 현실적인 주제였다. 크고 작은 갈등은 가정, 학교 등 사회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강의의 시작은 가정이었고 범위는 학교와 공동체로 점점 넓혀졌다. 2시간 정도의 강의를 듣다 보니 왜 ‘회복’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갔다. ‘회복’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향의 나침반이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판결은 없다”
최근 ‘학폭위(학교폭력위원회의 줄임말)’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학폭위’는 학생 간의 갈등을 징계하고 처벌하기 위해 학교 내부에서 열리는 심사의 장이다. 서 대표는 크고 작은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해 자문 또는 관여하며 느끼게 된 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한민국은 엄벌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국가이다. 소년원 입소 가능한 연령을 아시는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소년범에 대해 연령을 낮추고 더 강력한 처벌을 골자로 한 법안도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UN 아동권리협약에 위배되어 실현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엄벌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함무라비 법전처럼 학생들 간의 갈등을 저울질하여 내리는 처벌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처벌의 강화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인가? 잘못한 학생을 처벌하고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강제적인 방식이 피해 학생의 회복을 위해 도움이 될까? 이러한 갈등을 예방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서정기 대표는 ‘회복적 정의’라는 해결책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서 대표는 '통제하고 처벌을 내리는 방법도 필요하다. 하지만 처벌 이전에 잘못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 개인으로서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상대가 어떤 점에서 화가 났는지 이해를 못할 수도 있고,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같은 공간에 놓이게 되면 갈등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복적 정의’는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신뢰와 배려, 존중의 문화를 만들고 평화롭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갈등이나 파괴적인 폭력을 예방하고 학생들이 상호존중과 책임감을 가지도록 한다. 또한 상처받고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피해를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고 회복하고 용서를 하기도 하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빚은 결과와 영향을 직면하고 이를 바로잡을 기회를 얻게 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이미 시행중”
성남시교육지원청을 비롯해 경기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폭위’처럼 징계와 처벌을 담당하는 구간에 앞서, 대화를 통한 중재 단계를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다고 한다. 서 대표는 "국가가 당장 처벌 내용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예방적 환경을 조성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등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우리 사회가 사회의 갈등을 단기적으로 풀려고 하기보다는 회복적 정의 뿐만 아니라 여러 방법을 통하여 장기적으로 갈등의 피해를 줄이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 2시간의 강연 이후 토론에서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위해 가정과 학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주로 실사례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서 대표는 서클진행, 교구를 통한 대화, 갈등 조정과 대화모임에 관한 사례를 소개하며 끝을 맺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지역사회의 교사, 학부모, 시민들이 갈등을 평화롭게 전환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평화 능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기회가 된다면 회복적 정의와 대화모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역의 활동가를 배출하기 위한 전문 자격 과정도 개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_ 참교육학부모회포항지회 사무국장 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