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악 저지, ILO핵심협약 비준 요구, 노동 기본권 쟁취’ 결의

 

▲ 깃발 입장과 본대회 개막 선언
본대회 사전 발언 중인 차헌호 의장
▲ 본대회 사전 발언을 하는 차헌호 투쟁사업장연대회의 의장
공공운수노조 정동극장지회 노동자들의 시작 공연
▲ 공공운수노조 정동극장지회 노동자들의 공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일 오후 2시 30분 포항 형산오거리 포스코협력회관 앞에서는 1천 6백여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민주노총 경북본부 주최로 129주년 세계노동절기념 경북대회가 열렸다.

차헌호 경북투쟁사업장연대회의 의장은 식전행사에서 구미 아사히글라스 투쟁 등 지역 투쟁현안에 대해 보고하고, 지역 노동자와 사회단체에 지지와 연대를 호소했다.

이어서 경주 정동극장 노동자들의 기념공연으로 노동절대회 시작을 알렸다.

김태영 민주노총 경북본부장은 대회사에서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격렬한 투쟁에 대해 동물국회라고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향후 20년, 30년의 정치적 향배가 걸린 싸움으로 바라보고 대응해야 한다”고 전제하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ILO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법을 개악하려 한다. 이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고,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쟁취해 내는 것이 노동절 정신을 살려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대사에 나선 황병창 전농경북도연맹 의장은 “촛불 정신으로 세워졌다는 정부가 적폐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재벌과 손잡고서 노동자ㆍ농민ㆍ민중들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며, “노동자ㆍ농민의 연대로 촛불 정신을 살려내자”고 말했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몸짓패의 노래공연
▲ 금속노조 구미지부 몸짓패의 노래공연
황미란 공공운수노조 김천통합관제센터분회장의 투쟁발언
▲ 황미란 공공운수노조 김천통합관제센터분회장의 투쟁 발언

투쟁 발언에서 황미란 공공운수노조 김천통합관제센터분회장은 “나에게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란 말이 꼬리표처럼 붙어있다. 정부의 애매모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으로 273일째 길거리에서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판결에도 김천시청은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며 해고 철회를 촉구했다.

마지막 순서로 제129주년 세계노동절 경북대회 선언문을 낭독한 후, 인터내셔날가를 부르며 대회를 마쳤다. 

이어서 형산대교를 건너 포스코 1문과 현대재철 정문을 지나 포스코 본사 앞까지 행진한 후 마무리 집회를 열었다. 한대정 금속노조 포스코지회장은 “30년전 선배 노동자들이 외쳤던 ‘민주노조 하자’는 외침을 이어받아 노조할 권리가 쟁취되는 그날까지 싸우겠다. 함께 해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최광식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대명분회장은 “산업재해를 당해도 자비를 들여 치료해야 하는 열악한 포스코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워 나가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구호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참가자들
구호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 포스코 본사로 행진하는 모습
김태영 화물연대 포항지부장, 황봉우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장
▲ 김태영 화물연대 포항지부장(왼쪽), 황봉우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장

이어진 발언에서 김태영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포항지부장은 “포스코는 화물노동자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2003년 5월 화물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포스코의 횡포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으로 포스코의 항복을 받아낼 때 함께 했었다”며, “포스코가 최저입찰제로 화물노동자를 옥죄고 있다. 최저입찰제를 바꿀 때까지 앞장서 투쟁 하겠다”고 말했다.

황봉우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장은 ”본대회를 마치고 형산대교를 건너는데 2006년 포스코 본사 점거투쟁이 떠올랐다. 점거투쟁을 하고 있던 조합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렇게도 건너려고 했던 그 형산대교를 오늘 경북지역 동지들과 함께 건너 이 자리에 왔다“고 회상하며, ”포스코로 인해 멀쩡하던 공사가 중단되는 등 지역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플랜트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포스코와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참가자들은 세계노동절을 맞아 △노동개악 저지 △ILO협약비준 △노동기본권 쟁취를 외쳤다. ‘노동개악ㆍ비정규직ㆍ법외노조ㆍ특수고용 노동ㆍ노동탄압 분쇄’를 의미하는 얼음깨기 상징 의식을 진행하고, 파업가를 부르며 전체 대회를 마쳤다. 129주년 세계노동절대회는 서울, 대구, 포항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포스코 본사앞에서 마무리 집회 중인 참가자들
▲ 포스코 본사앞에서 마무리 집회 중인 참가자들
화물 노동자 대오를 이끄는 트레일러 차량
▲ 화물 노동자 대오를 이끄는 트레일러 차량

 노동절 유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미국노동자들이 1886년 5월1일, '하루 8시간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미국 전역에서 파업에 나섰다. 같은 날 시카고에서도 평화적인 파업이 진행되었다.

5월3일 시카고에서 경찰이 파업중인 노동자에게 총을 쏴 4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다음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 30만명이 참가하는 집회가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렸다.

이때, 누군가가 폭탄을 던졌고, 폭탄을 투척한 범인을 찾지 못하자 노동운동 지도자 수백 명을 체포해  7명은 사형, 1명은 15년의 징역형에 처했다.

이후 1889년 7월, 파리에서 세계 25개국의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위대한 투쟁을 확산’시키고자 5월 1일을 국제적인 ‘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했고, 1890년 첫 노동절 행사를 열면서 전세계로 확산되어 열리고 있다.

7년 후 헤이마켓 폭탄 사건은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한국의 노동절

한국에서 노동절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 조선노동총동맹 주도로 2천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를 주장하며 열린 행사가 그 출발이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 주도로 노동절 기념행사가 열렸고, 전평이 강제 해산된 이후에도 5월 1일에 열렸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1958년부터 ‘대한노동조합총연맹’ 창립일인 3월10일 열리게 되었고,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1963년에는 명칭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조직된, 전국노동조합대표자협의회(전노협)이 중심이 되어 1989년 4월 30일 연세대학교에서 ‘세계노동절 100주년 기념 한국노동자대회’를 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4년 법이 개정되면서 5월 1일이 되었으나, 명칭은 여전히 ‘근로자의 날’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그해의 주요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절 기념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은 딱 한줄 뿐이다.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 날을 「근로기준법」에 따른 유급휴일(有給休日)로 한다”로 대한민국 법률 중 가장 짧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