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오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5월 2일부터 11일까지, 10일간 총 275편의 영화 697회 상영, 관객수 85,900명을 기록하며 끝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국내 영화제 no.2로 공인된 전주국제영화제지만, 어쩌면 뉴스풀 독자들에게는 쉽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행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쉽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 만한 내용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는 많다.

제10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를 마치고 이것저것 뒤처리를 마치자마자 짐을 꾸려 전주로 향했던 필자는 10일간의 전체 일정을 소화했고, 기진맥진해 돌아왔다. 뉴스풀 독자들에게 여행담 형식의 전주국제영화제 탐방기를 풀어낼 준비가 이제 되었다.

전주라는 공간은 대구·경북 시민들이 생업 상 연결고리가 없다면 자주 들를 지역은 아니다. 한국의 교통은 철저하게 경부선 축을 위주로, 즉 서울-부산 연결선 중심으로 정비되었고, 산업화에서 소외된 호남과 영남을 잇는 도로망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대구와 광주를 통하게 하는 88고속도로는 유례가 없는 왕복 2차선으로 ‘죽음의 고속도로’라 불릴 정도로 사고율이 높았고, 전주는 지금도 대구에서 직행할 수 있는 철도 노선이 없다.

그런 면에서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를 좋아하는 지역 시민들이라면 전라북도를 찾게 만드는 유인책이기도 하다. 실제 필자도 학생 시절 행사로 단 한 번 전주를 방문한 뒤 전주국제영화제 때문에 다시 전주를 찾게 되었으니. 그만큼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와 전북 지역을 찾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아마 전주시와 전라북도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상당한 역량과 자원을 투여하는 건 그것이 핵심일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영화제들의 숙명이며, 전주국제영화제 또한 그 측면 때문에 상당한 불협화음을 겪어왔다. 아무튼, 영화제가 열리는 5월의 전주는 바깥 나들이하기에 딱 좋은 날씨이고, 전주 지역의 여러 관광자원과 연계하기에 절묘한 타이밍임은 분명하다.

 

20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 20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사진

‘영화제’를 한번 가보겠다며 처음 가볼 영화제를 추천해 달라는 이들에게, 필자는 거의 항상 전주국제영화제를 권한다. 꼭 영화뿐 아니라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호남지역의 넉넉한 물산에서 비롯되는 풍성한 먹을거리와 함께 한옥마을과 객리단길 등 전통과 현대를 교차하는 공간들의 재미가 쏠쏠하다. 인구 65만의 중간급 도시라 이동 거리도 멀지 않고, 관광 진흥 때문에 숙소도 많이 확충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영화와 부대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각자의 취향에 맞춰 영화를 즐길 수 있을뿐더러, 영화제 행사공간이 ‘영화의 거리’에 집중되어 있어 편하기 그지없다. 전주는 영화제를 즐기기에 최적에 가까운 공간과 시간성을 확보한 곳이다.

필자는 10일간 장편, 단편 도합 63편의 영화를 관람했고,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영화를 매개로 한 포럼이나 워크숍, 클래스 등의 부대행사에도 자주 참석했다. 그 결과 돌아올 때쯤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지만, 그만큼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다. 몇 가지 포인트를 잡아 소개해보겠다.
 

2_ ‘영화 표현의 해방구’, 전주

전주국제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보다 4년 늦게 시작한 후발주자다. 전주 이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비롯해 대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광역시급 단위에서 국제영화제 붐이 일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경량급’ 도시인 데다 꽤 늦게 시작한 셈인 전주국제영화제에 우려도 컸다.

국내 국제영화제들은 각자의 포커스가 잡혀 있는데, 예를 들어 부산의 경우 ‘아시아 영화의 창’, 부천의 경우 ‘장르 영화’, 제천은 ‘음악 영화’ 이런 식이다.

전주는 ‘독립ㆍ실험ㆍ디지털 영화’를 표방했는데, 그 때문에 초반에는 너무 영화애호가들만을 위한 방향성이라는 불만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디지털’을 표방했던 것은 당시만 해도 필름 상영 위주인 상황에서 대안적 형식으로 주목했기 때문. 지금은 디지털로 거의 통일되었기 때문에 사장됨)

그러나 상대적으로 마이너하지만 대안적인 실험영화들에 문을 개방하여 타 영화제와는 차별화되는 라인업을 구축할 수 있었고, 시민보다는 영화관계자들의 주목과 발걸음을 끌어낼 수 있었다. 영화제 선발주자들이 내홍으로 부침을 겪는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행사를 진행하면서 어부지리를 얻기도 했다. 영화제 행사에서 안정성은 아주 중요하다. 문화예술과 산업적 측면이 결합된 영화제라는 ‘축제Film Festival’는 영화를 만드는 이와 보려는 이들에게 타 영화제와 구분되는 요소가 결정적인데, 전주는 결정적 수준까지는 훼손되지 않은 채 버텨낼 수 있었다.

 

20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 20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사진

그 결과 20주년을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는 자신들의 시야로 발굴하거나 소개한 무수한 국내외 영화인들을 자랑할 수 있었다. 신인으로 출발해 중견이나 거장이 되어가는 숱한 영화인들이 ‘내가 전주에 처음 왔을 때 ~ ’라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정적’ 능력이라 하겠다.

물이 들어오는 것 같으니 노를 열심히 젓고 있는 전라북도와 전주시의 화끈한 지원은 동상이몽일지언정 영화제를 준비하는데 많은 이점이 된다. 행사 실무를 치르는 과정에서 관에서 행사를 형식적으로만 협조하면 애로가 꽃피는데, 전주는 어쨌건 교통정리부터 관객동원까지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다. 손님맞이에도 친절한 편이어서 좋은 인상을 얻고 가는 이들이 많다.

각설하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한국에서 영화제들의 성공은 고유의 자기 영역을 갖추고 이를 약간은 과시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역량과 자원을 집중할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위에서 장황하게 중언부언 늘어놓은 것처럼 기본을 지키는 게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 

전주도 곡절이 많았지만 “전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국내외 신진·중견 감독들에게 사전제작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실험영화의 전시장인 <익스팬디드 시네마(과거엔 ‘영화보다 낯선’)>, 영화학의 보고 <시네마톨로지>, 근래 신설된 미학적ㆍ주제성 측면의 첨단에 선 <프론트라인> 등 타 영화제에서 보기 힘든 개성적인 카테고리 섹션을 운영해오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국내에서 영화제가 아니라면 보기가 거의 불가능한 영화적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전주국제영화제로 매년 발걸음이 향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섹션들 영향 덕분이다. 아무래도 후발주자로서 국내외 스타 영화인들을 섭외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블루오션을 개척하려 한 것인데, 오랜 투자가 비로소 결실을 이루는 걸 확인하는 20회 영화제였다.

 

3_ 약간의 우려 : ‘부산’화 진행 중인가?

 

스타워즈 기획전 거리 이벤트(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 스타워즈 기획전 거리 이벤트.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사진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공 요소로 ‘대담하고 실험적인’ 영화 라인업과 그에 걸맞은 행사 초점을 소개했다. 그러나 부산을 추격하려는 의지가 발현했던 것일까. 이전까지 전주국제영화제의 느낌이 다른 데서 먹기 힘든 맛깔난 단품 요리라면, 20회 전주국제영화제는 ‘화려해 보이지만 평범한’ 뷔페를 떠오르게 한다.

많은 이들을 의아스럽게 했던 스타워즈 특별전이나, 일 방향으로 즐기기에는 좋지만 참여형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멀었던 파티, 그리고 전주 돔 공연 등이 시민들이 영화제를 기억하는 핵심 포인트라는 점은 약간의 걱정을 낳게 만든다.

그런 아쉬움에도 전주국제영화제가 축적해온 기반과 지역사회의 전향적인 지원이 낳는 축제 효과는 분명 국내 영화제 중에서도 정상급이었다. 특히 <익스팬디드 시네마> 섹션에서 실험영화 상영뿐 아니라 설치와 전시를 통한 문화적 통합 체험을 제공하는, 지역 폐공장을 활용해 전시장으로 만든 팔복문화공장에서의 <익스팬디드 플러스>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역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영화제 상영작을 독자적으로 재해석한 <100 Films, 100 Posters> 전시들은 호평을 받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화를 매개로 한 축제가 다양한 영화 소개는 물론, 영화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부대행사들로 다변화되는 것은 긍정적 진화임이 분명하다.

 

100 films, 100 posters 전시(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 100 films, 100 posters 전시.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사진

위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했지만, 황금연휴(5.3 금요일부터 5. 6 월요일 대체휴일까지)에 전북 전체에서 전주를 찾은 지역민들에게 스타워즈 갤러리 및 관련 이벤트들은 영화제가 낯선 이들에게도 즐길 거리를 제공해주는 기획이었다. 그렇게 전주국제영화제는 지역 정치권과 시민들의 불만을 적절히 잠재우며 영화제가 다양한 영화들에 기회를 제공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부산보다 작은 규모의 도시와 재원으로 부산을 추격하는 모양새를 취하다 보니 전주국제영화제의 차별화된 강점보다 ‘좀 작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느낌이 난 건 다른 영화제 참석자들에게서도 공통되는 평가였다. 

 

영화의 거리에서 피켓팅중인 민간위탁 환경미화노동자(출처 : 필자 촬영사진)
△ 영화의 거리에서 피케팅하는 민간위탁 환경미화노동자. 사진 김상목

한편, 영화제라는 ‘축제’가 주는 마력은 또다른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 입구에는 오거리광장이 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전주시 민간위탁 업체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이 <환경미화원 인권영화제>를 열어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다양한 행사와 함께 영상을 상영했다. 영화제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처럼, <환경미화원 인권영화제>는 자연스레 편입되었다. 관광객, 영화관계자들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거리 서명을 받거나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가면과 풍선으로 그/그녀들의 주장을 홍보했고 특별한 제지나 충돌은 없었다.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영화제에 온 이들의 기억에 남았을지 알 수 없지만, 전주국제영화제가 주장하는 ‘표현의 해방구’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풍경들이 곧잘 목격되곤 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에서도 순간순간 어우러지거나 이해를 갖고 소통하는 크로스오버가 일어나는데, 전주국제영화제의 현장은 그런 게 살아있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필자는 2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기대되고 설렌다.

 

4_ ‘지역’ 영화제의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 전주국제영화제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현실에는 없는’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의 완성보다는 상상에 가깝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그 성과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러 한계를 갖고 있으며, 우려되는 불안요소도 이번 영화제에서 일부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제와 지역사회의 관계, 지역의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 교육이나 ‘산업’, ‘고용 창출’ 측면에서 일정 부분 유용한 기획이라는 것을 현실에서 증명하는 사례로서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다.

전국 어디를 막론하고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정체불명의 문화 행사들이, 장밋빛 환상이나 도저히 개연성은 없어 뵈는 ‘경제유발 효과’ 운운할 게 아니라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성공사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화제를 통해 000명의 고용 효과와 000억 원 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 는 식의 글이나 말을 보면 일단 제치고 보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축제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행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상업영화와는 결이 다른 독립영화나 예술ㆍ실험영화들을 주로 소개하는 게 본령인, 그게 아니라면 왜 하는지 의문인 영화제는 더욱 그렇다.)

실패한 국내 영화제들은 대개 ‘거위 배를 성급하게 가르려다’ 말아먹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화행사 특성에 무지한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간섭이 행사 실패의 주요 원인이긴 하지만 지역사회 내에서 영화제의 필요성이나 방향성을 설득하지 못해 좌초되는 경우도 곧잘 발생한다. 소통을 통한 수평적 의사결정과 집행보다, 탑다운 방식의 관료제 운영 위주인 지방정부와 지역사회 구조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현실에서 행사를 담당할 경우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고생하고 욕먹는 걸 줄일 수 있다.

 

물론 전주국제영화제는 이제 너무 커져 버렸다. 20년이란 시간의 중량은 매우 무겁다. 혹시나 영화제가 아니라도 지역에서 문화예술축제를 시작한다면, 전주국제영화제의 화려함과 규모가 아니라 그 출발 당시의 설정과 기획,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온존해온 과정에 대한 정밀한 실사로 출발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재원을 공급하는 주체인 ‘관’과 행사 실무를 담당하는 문화예술계, 그리고 지역 축제를 일 순위로 누려야 하지만 배제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하기 일쑤인 시민들과 지역사회 사이의 접점을 찾고, 각자의 needs를 조화시키는 기본이 얼마나 어렵고 또 소중한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p.s. 전주에 가시면 비빔밥이나 한정식보다는 백반, 이국 음식보다는 콩나물국밥이나 피 순대, 그리고 비싼 술집보다는 가맥집이나 막걸릿집을 가시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당분간은 한옥마을은 연휴에는 피하시라. 사람에 치여 죽는다. 그리고 영화제 기간에는 영화를 꼭 안 보더라도 영화제 현장에 가면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고 영화를 보고픈 욕망이 샘솟듯 솟아오르기도 한다. 혹시 아는가? 인생 영화를 우연히 제목만 보고 관람한 극장에서 찾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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