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민중항쟁 39주년 ,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개봉 소식

 

0_ 오욕과 혼란의 시기에는 되돌아보는 지혜가 절실하다

 

5월 18일이 지났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여전히 정쟁의 틈바구니에서 비합리적 의심의 표적이 되었고, 정치적 주판알을 굴리는 세력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극우 미디어 정치의 문법에 충실하게 선동적 언사를 내뱉는 중이다. 대중은 경제 불황의 그림자 속에서 조급해지고 뭔가 ‘화끈’한 것에 목말라 있다. 정치와 사회의 “불닭볶음면화”라고 해야 할까? 자극적이지 않으면 관심 두지 않고, 진위를 가릴 때쯤이면 이미 더 ‘쎈’ 걸로 옮겨 탄 지 오래다. 그런 말초적 속성을 후벼 파는 이들이 마치 대중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는 것처럼 득세하는 것이 전 지구적인 현상이고 2016년 촛불의 결과물들이 퇴색하는 듯한 느낌은 한국 사회 만의 것이 아니다.

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과 상황들에 대한 역사적 판정은, 자국민을 학살하면서까지 권력욕에 굶주렸던 자들의 온갖 방해에도 불과 10여 년 만에 개괄적인 진상이 규명되어 청문회와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불완전한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이미 20세기 중에 종결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의 불완전한 개혁과 민주화는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온갖 음모론이 득세하는 것을 방치했다. 그렇게 2019년 5월 18일을 보냈다. 우리 곁에서 지난 39년을 함께한 80년 5월 광주에 대한 영화들은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 이 칼럼에서 짚어보려 한다. 물론 여기에 빠졌지만, 소개되어야 할 작품이 더 많음을 참고해주시라.

 

 

1. 1980~1990년대 : 복제 비디오와 “모래시계”의 시간

 

후술할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극화된 것처럼, 1970년대 후반에 기술적으로 완성된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와 VHS 테이프는 그전에는 기록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외신기자와 언론인들에 의해 목숨을 걸고 촬영ㆍ반출되었던 영상들은 여러 비밀경로로 국내에 반입되어, 복사판 비디오로 국내 언론에서 방기한 부분을 불완전하게나마 충족시켰다. 이런 비디오물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특히 지역에선 거의 유일한 영상자료로 활용되었다. 물론 사전정보 없이 참혹한 현장 영상을 봐버린 이들의 트라우마는 덤이었고.

이전 글에서 소개했던 장산곶매에서 1989년, <오! 꿈의 나라>를 단체 창립 첫 영화로 만들었다. 심지어 90분짜리 극영화였다. 5ㆍ18민중항쟁이 끝나고 수배자가 된 학생이 유흥가 밑바닥에서 겪는 인생 군상에 관한 이야기였던 본 작품은 후속작인 <파업전야>처럼 정권의 탄압 때문에 제대로 공개되지 못했고 전설로만 남았다.

이후 당시 예술영화로 이름을 날리던 장선우 감독에 의해 1996년에 <꽃잎>이 극장 개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대적 아픔을 미학적으로 표현했으나 대중적으로 보기에는 미묘한 작품이었다. <꽃잎>이 개봉하게 되는 ‘천지개벽’은 1995-1996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다.

90년대 초반에 열린 청문회는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서 80년 5월 광주를 규정했다. 전두환-노태우 구속 투쟁이 재야-학생운동권에서 1995년 후반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집권세력이던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구 민정당과 통합한 민자당 후보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 정부는 이런 상황을 여당 내 민정당계를 숙청하는데 활용했다. 1995년 말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는 정치적 격변으로 또 한 번 결정적인 사회적 평가가 이뤄졌다. 학살 이후 15년 만이었다.

그 전환점에 영화가 아니라 SBS 드라마 <모래시계>가 있었다. 1995년 초에 방영되면서 수도권에만 국한되었던 민영방송 SBS를 전국 방송으로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80년 5월 광주를 피부로 접하게 한 일등공신은 지금까지도 <모래시계>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위엄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오히려 영화화 시도는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급격한 정치적 변화에 오히려 영화매체가 못 따라가는 시절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시절, 이제 광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한국사회 민주화의 거대한 희생적 상징으로 확정되는 듯 보였다. 역설적이게도 이후 영화로 80년 5월 광주를 다룬 작품들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민주 정부’의 1차 종막과 때를 같이한다.

 

2. 독립영화 진영의 21세기 이후 주요 작품들

 

노무현 정부 집권 말로 이어지면서 민주 정부의 가을이 저물어갈 2007년, <오월상생>이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다. 그해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전승일 감독의 본 작품은 80년 5월 광주를 떠올리는 대표적인 저항가요들(오월의 노래 1/2, 민주 햇살, 전진하는 5월,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의 뮤직비디오 모음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오랜 독립다큐 경력을 가진 푸른영상 출신 김태일 감독의 <오월愛>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 2010년 완성된다. 독립영화계에서 <오월愛>는 80년 5월 광주를 다루는 주요한 흐름을 규정하는 작품이다. 제36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소규모이지만 극장개봉이 진행되었다. 김태일 감독의 야심찬 기획-세계민중사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제작된 본 작품은 프로젝트 명처럼 ‘민중사’ 형식을 표방하며, 기록되지 않은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을 조명해냈다. 구멍가게 아저씨와 버스기사, 시장 아주머니들의 구술 인터뷰로 이뤄진 <오월愛>는 근 10년간 독립다큐계에서 5월 광주를 기록하는 작업의 준거가 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2013년 완성된 김래원 감독의 <꽃피는 철길>은 광주를 다룬 보기 드문 단편극영화이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80년 5월 당시 신군부가 광주를 봉쇄하던 시점에서 시골 역무원들의 시선과 불안감으로 상황을 조명하는 의외성이 돋보인다. 2010년대 독립영화 진영에서 <꽃피는 철길>은 광주를 다루는 일상사ㆍ민중사적 관점에 궤를 함께하고 있다.

2015년 2회 사람사는세상영화제와 13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 대상작이기도 한 양주연 감독의 <옥상자국>은, 2010년대 이후 한국 독립다큐계의 주요 경향인 ‘사적 다큐’의 범위 안에서 <오월愛>의 경향을 심화해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감독의 외가에서 우연히 발견된 총알 자국에서 시작된 의문을 풀어내면서 누군가에겐 ‘신화’로 기억되지만 평범한 이들에겐 잊혀져가는 80년 5월에 대한 반추로 나아가는 맛이 독특한 단편다큐이다.

사회적 이슈인 여성주의와 80년 5월 광주를 연결하는 작품도 등장한다. 김경자 감독의 2017년 작품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들불야학과 송백회 등 조직 활동가들과 시장의 여성 상인 구술인터뷰를 적절히 담아냈다. 후반부에서 광주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탐구하며 성주 사드, 제주 4.3과 강정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돋보이는 근작이다.

 

 

3. 상업영화 내에서의 일련의 시도들, <택시운전사>로 한 획을 긋다

 

한국의 상업영화계는 사회적 이슈를 ‘소비’하는데 동물적 감각을 발휘한다. 이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준수한 완성도의 상업영화가 적절한 타이밍에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내면서 이익도 내는 건 영민함의 발로이다. <꽃잎> 이후 10여 년만에 등장한 김지훈 감독의 2007년작 <화려한 휴가>는 스펙터클로서의 80년 5월 광주에 처음 도전한 작품이다. 관객수 6,855,433명을 기록한 이 영화는 <택시운전사> 다음으로 광주를 다룬 가장 성공한 상업영화로 남아 있다. 시민군으로 도청을 사수하던 이들의 1주일을 담아낸 ‘드라마’ 성이 강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예상치 못한 사회적 반동화 시도들에 놀란 이들은 2012년 대선에 사활을 건다. 그 와중에 강풀 작가의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 <26년>이 대선 직전에 개봉한다. 2,963,652명이라는 적지 않은 관객을 동원했지만, 영화가 꾀했던 두 마리 토끼– 대선에 대한 문화적 개입과 상업적 성공– 를 모두 잡기에는 부족했다. 이 작품은 무척 급박하게 제작되었는데, 무조건 대선 전에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2012년 대선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물로서의 작품 완성도는 원작 웹툰에 비하여 아쉬움이 많은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12,189,195명의 관객을 기록한 2017년 작 <택시운전사>가 등장한다. 무엇보다 2016년 후반 촛불의 결과로 민주정부가 재등장한 직후 개봉이라는 축제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에피소드들(실제 주인공의 이후 행적 확인 등)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상업영화로서 한계는 있지만 사회적 소재를 다루는 중용을 잘 지켰다. 명배우들의 열연은 물론, 영웅주의를 배격하는, 마치 독립영화계의 광주를 다루는 윤리 혹은 전망과 흐름을 같이하는 듯한 설정으로 시민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4. ‘ 만들어진’ 음모론이 판치는 시기, <김군>이 돌아오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의 축제는 불과 1년여 만에 파장처럼 느껴진다. 사회ㆍ경제민주화는 (원인에 대한 입장은 구구하지만) 지지부진하고, 남북관계는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기대에 비해선 실망스러운 상황이며, 제도적 민주화의 과실은 비민주적인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이한 상황에 우리는 처해 있다.

지난 정부 파국에 일조했던 세력은 여전히 제1/2야당 안에서 위세를 떨친다. 세계 정치계를 유행처럼 떠도는 극우적 수사학과 미디어 정치에 혈안이 되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음모론을 살포한다. 음지에서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극우집단을 동원해 이미 당연해진 역사적 평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척 흠집 내기를 하며 정치 불신을 부추긴다. ‘정체성 정치’를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구현하는 세력들이다.

급기야 80년 5월 광주를 다시 소환하는데 이른 이들의 행보는, 심지어 조갑제 기자조차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환단고기’나 ‘지구공동설’ 수준으로 치닫는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몰라서 그러는 걸까? 그럴 리가 없지 않는가.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한국사회 주류 기득권이라 자처하는 집단이 합리적 의심으로 포장할 때는 그 목적을 유추해야 한다. 기세등등해 보이지만 2020년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의 정권 ‘탈환’이 절박한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 정부의 ‘586 운동권’ 에게 80년 5월 광주는 정치적 정당성의 원류이기도 하다. 5ㆍ18에 대한 비하는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이 펼치는 미디어 정치의 대전략인 셈이다.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 개입설 같은 소설은 유튜브나 SNS의 검증되지 않는, (검증해볼 의지도 없는) 가짜뉴스로 무한복제되어 유포된다.

포르노 영상의 유통과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에 일일이 추적해 제거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대응을 안 하면 또 대응하지 않는다고 난리를 부린다. 이런 딜레마의 시기에 참고해볼만 한 작품이 등장했다.

 

2018년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고 5월 23일 개봉을 앞둔 강상우 감독의 <김군>은 80년 5월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주도하는 지만원 씨가 그 근거로 제시하는 ‘광수’에 대한 추적담이다.

그 과정에서 ‘신화’의 일부가 벗겨지고 우리는 39년 전 광주로 돌아가는 듯 간접체험 길에 오른다. 몇 명의 ‘김군’ 후보가 등장하고 사라진다. 혼란과 경이가 교차했던 그날의 광주에서 김군 같은 사람들은 어떤 존재였고 어떻게 주변에 비춰졌는지, 그리고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이어진다. 원래 극영화에 주력하던 강상우 감독은 어떤 정설이나 운동적 당위에 크게 주박당하지 않고 우직하게 실체만을 찾는 뚝심을 선보인다. 후반부에 당도한 실체적 진실은 ‘신화’로만 광주를 바라보게 된 우리들에게 많은 쟁점들을 남긴다.

사실 광수가 누구인지, 김군이 누구인지를 탐정놀이 하듯 파헤치는 것은 80년 5월 광주의 역사적 의미나 현재의 괴이쩍기 짝이 없는 사회적 갈등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나 워낙 물귀신처럼 달려드는 야만의 세력들에게 응전함은 물론, 이 기회에 우리에게 80년 5월 광주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를 한번 성찰해볼 필요는 있다. 위에서 열거한 작품과 함께, 세상 살기가 힘들어진 탓인지 독립영화를 찾는 발길이 뜸해 걱정인 요즘, <김군> 개봉관을 많이들 찾아주시면 좋겠다. 혼자보다는 단체관람을 권장한다.

 

 

[작품 정보] 

 

김군 Kim-Gun (2018)

다큐멘터리|한국|2019. 5. 23 개봉 예정|85분|12세 이상 관람가

감독_ 강상우

주연_ 김군, 주옥, 양동남, 지만원, 이창성, 차종수, 오기철, 이강갑, 최영철, 최진수, 안지환

 

23회 부산국제영화제(2018) 경쟁부문,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경쟁

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경쟁부문 장편 대상

19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19) 올해의 초점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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