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숲속의 하늘, 둥그런 초록 구름으로 가득할 것이다
6월 숲속의 하늘, 둥그런 초록 구름으로 가득할 것이다
  • 이현정
  • 승인 2019.06.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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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엽수 가지의 끝자람. 사진 이현정

여름의 빛은 강하고 아프다. 살결에 조금 닿았지만 타는 듯 살 속으로 파고든다.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통점의 메시지로 전해 받는다. 아쉬운 아침 햇살이 지나가고 있다. 빠르게 오르는 빛의 온도는 투명한 아지랑이로 피워 오른다. 마치 투명하게 그르렁거리는 진동, 숲 머리 위 얕은 움직임을 움켜쥔 채 강한 빛살들과 함께 있다. 그렇게 숲은 온몸으로 뜨거운 것들에 맞서고 있다. 

피곤한 몸이 며칠 전부터 이어져서인가. 남편에게 누락된 식물조사를 도와 달라 매달려 응석을 부린지가 언제였던가. 꾸무럭거리다 시원한 바람 때를 놓치고 숲으로 향했다. 멈춰버린 듯 숲의 녹음은 무겁게 짙어져 있다. 바라보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오래 깊은 연못의 검푸른 물결 아래를 서서히 응시하면 무언가에 이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 또 다른 공간 속에 숨어버린 숲의 정령처럼 늘어뜨린 가지와 나뭇잎들은 초록 바람으로 흐느적거린다. 찬란했던 봄 숲의 연둣빛 잔치는 끝이 났다. 하지만 다시 만날 봄을 암시하듯 여리고 어린잎들을 내놓았다. 여름을 이겨낼 새잎들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내내 밝은 연초록 포인트로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우리는 계곡 숲길을 따라 천천히 올랐고 키 작은 나무들로 눈길이 옮겨간다. 키 작은 나무는 주로 국수나무, 얇은잎고광나무, 조록싸리, 진달래 등 떨기나무(관목)들이 대부분이다. 

 

△ 국수나무의 활짝핀 꽃. 사진 이현정
△ 조록싸리의 하엽(여름잎). 사진 이현정

국수나무는 계곡으로 들어서면서 지극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내 숨소리가 거칠게 변할 쯤에야 달아오르는 열기 아래 아직 활짝 피어있는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아래쪽 숲길에선 대부분 쭉정이 마냥 시들어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얇은잎고광나무는 벌써 귀여운 씨방이 연녹색 원형으로 꽤 부풀어 있다. 또한, 조록싸리는 좀 이른 듯하지만 화려한 자색 꽃망울을 터뜨렸고, 그 표시도 나지 않을 듯 작은 허니가이드(꿀안내선)를 뒤처질세라 내놓았다. 

무엇보다 6월의 숲은 하엽(여름잎)이 만발하는 계절이다. 여름 잎은 초록의 밝기로 구분이 간다. 이렇게 계곡 숲길은 여름잎인 어린잎들이 주인공이 셈이다.

침엽수인 소나무와 잣나무는 가지의 끝 겨울눈이 추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아 계속 끝부분에 가지를 내고 잎을 낸다. 하지만 활엽수는 가지 끝 겨울눈이 만들어지긴 해도 이듬해 봄이 되면 죽어버린다.

줄기나 가지 끝 겨울눈(정아)이 죽고, 옆에 달린 겨울눈(측아)에서 다시 잔가지가 나고 잎새들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활엽수는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뾰족한 원뿔의 모양이 아니라 나무의 전체 모양이 뭉실뭉실한 둥근 모양으로 변해 간다.

빛을 따라 줄기 끝이 생장하거나 가지 끝이 생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지 옆에 난 겨울눈에서 또 다른 가지가 나오고 나뭇잎들이 계속 태어난다. 옆에서 가지와 잎들이 만들어지는 무한생장인 것이다. 

 

△ 숲속에서 바라보는 숲 하늘, 활엽수의 둥그런 수형. 사진 이현정
△ 숲속에서 바라보는 숲 하늘, 활엽수의 둥그런 수형. 사진 이현정

약 1억 년 정도쯤 침엽수가 활엽수보다 더 일찍 태어났다. 침엽수인 소나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자라고 옆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 가지 끝이 해마다 정해져 있는 한 마디만 계속 자라기 때문에 나이를 세어볼 수 있었다. 한 해씩 나이를 센다는 건 유한생장을 말한다.

침엽수들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기막힌 전략은 활엽수가 한 수 위라 여길 수밖에 없다. 침엽수들이 점령하고 있는 숲에선 가늘게 들어오는 작은 빛도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빛을 따라 가지와 잎들을 내는 무한생장을 한다. 옆눈(측아)를 만들어 내고 정아는 스스로 생을 다하는 것, 비장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6월의 숲속에선 우러러보고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한다. 녹색의 커다란 뭉게구름들이 내려앉았고, 하늘 위로는 흰 구름 아래 초록의 둥근 구름들이 그려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뭉실한 검초록 구름으로 변해갈 것이다.

 

 

글 _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