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일어난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론

 

"찾을 수 없습니다" 영화 스틸컷
△ 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 스틸컷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에 둘러싸인 우리

어느덧 우리 사회에 정기권이라도 끊은 듯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재앙들이 몇 있습니다. 매년 종류만 달라질 뿐 인간의 배를 채우기 위한 공장제 축산의 부작용으로 벌어지는 각종 동물 전염병과 개인의 과실보다는 체제 부조리에 기원하는 사회적 참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DMZ 철조망을 철통처럼 지키는 수십만의 군인들은 요즘 돼지 열병을 막기 위해 그저 DMZ를 오갈 뿐인 멧돼지를 사살할 태세를 갖추고 훈련 중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유럽 여행지를 찾았던 노년의 관광객들은 헝가리를 흐르던 도나우강에서 참사를 당했습니다. ‘선장 과실이다, 아니다’ 공방이 언론에 연일 오르내립니다. 시시비비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다 우리들의 기억이 휘발되면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 도덕적 해이를 징벌하듯 또 다른 사회적 참사가 터지고 우리는 고대의 희생 번제물 마냥,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대책 없음을 자조만 하지 않는가, 자괴감이 듭니다.

대구·경북지역의 사회적 참사라면 아무래도 1995년, 2003년 연이어 일어났던 대구지하철 참사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1995년 상인동 참사가 당시 지자체 선거를 앞둔 정부 여당의 침묵과 외면 속에 서둘러 은폐되었고, 그 기억을 억지로 외면했던 데 대한 징벌처럼 2003년 중앙로역 화재 참사가 있었습니다.

 

"탈선derailed" 영화 스틸컷
△ 영화 <탈선derailed> 스틸컷

사고 나면 자기 몸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절망적 불신감이 퍼져나갔고, 지역의 사회적 참사에 대한 대비책과 추모를 동반한 반성적 평가는 특히나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특정 정치세력이 장기간 독점지배하며, 경쟁하는 정치세력 간 견제와 균형이 부재한 지역사회의 ‘고인 물’은 반성과 성찰보다는 나눠먹기 식의, 참사를 희생양 바치듯 사고하는 고대의 샤머니즘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후진 행태 외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뜻있는 독립영화인들에 의해 작지만 소중한 영상으로서의 기억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권현준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탈선derailed>와 엄하늘 감독의 단편 극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를 소개합니다.

 

대안 언론 성격의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탈선derailed>
“2003년 지하철 중앙로역 참사 이후에도 성찰 없는 사회 고발”     

<탈선derailed>는 2003년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이후 시민안전을 위한 요구로 투쟁하다 10여 년간의 해고자 생활을 견뎌야 했던 13명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영화 제작 당시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들이 벌였던 대구지하철 3호선 모노레일의 안전대책을 요구하던 활동 풍경까지 아울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정말 오랜만에 대구지역 사회운동단위가 공동으로 제작위원회를 구성하고 제작비를 마련해 만들어진 시도이기도 합니다. 70분이라는 장편영화로서는 짧은 분량이지만 정부나 기업의 자금 없이 장편영화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기획이었고 곡절도 많았지만, 대구지하철노조·공공운수노조대구경북본부·대구사회복지영화제 3단위가 협력해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탈선derailed>는 “자신의 궤도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기억의 궤도로부터 이탈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재난을 방조한 지자체와 기업의 책임을 통렬하게 묻는 작품을 기대하는 온 관객들로부터 의문부호를 꽤 받기도 했었지요.

 

"탈선derailed" 영화 스틸컷
△ 영화 <탈선derailed> 스틸컷

개인적으로도 <탈선derailed>의 제작과 상영에 참여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지역 기반의 독립영화는 만들기도 어렵지만 만들고 나서가 더 큰 일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죠. 꼭 봤으면 하는 분들이 영화 관람을 피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작가의 창작 의도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분들도 있구요. 작품이 드러낸 숨겨진 단면이 ‘우리 편’이라 생각되는 테두리 안에서 그렇게 기운 나거나 힘을 주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분명 기록되지 못했을 2003년부터 2014년까지의 풍경이 <탈선derailed>에는 녹아들어 있습니다. 아마도 제작위원회를 만들어 옥신각신하지 않았다면 단편적인 영상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해고 노동자들은 어렵게 복직을 완료했고, 가끔 삐거덕거리긴 하지만 3호선 모노레일은 싱싱 달리며 대구의 한 풍경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참사 추모에 대한 지역사회 합의도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럿 남아있지만, 일정 부분 진전되어 가구요. 그렇다고 해서 그저 지나간 일로 치부하고 망각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요.

 

“2003년 지하철 참사, 동성로 지하상가 강제개발의 기억”
참사를 추모하되 짓누르지 않는 단편극 <찾을 수 없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비영화인들은 대개 영화전공을 하려면 타향으로 떠나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다른 부분이 그러하듯 서울 등 수도권으로 향하거나 일부는 ‘영화의 도시’ 부산으로 떠나곤 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영화로 인생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합니다. 

<찾을 수 없습니다>를 만든 엄하늘 감독 또한 그렇게 서울에서 영화를 만드는 신진감독입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감독이 지역을 벗어나 개인으로서 작업했기에, 지역에서 만들어진 <탈선derailed>가 받았던 약간의 오도된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찾을 수 없습니다" 영화 스틸컷
△ 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 스틸컷

2000년대 초반의 어느 날, 대구에서 멀지 않은 칠곡으로 전학을 온 소년이 역시 대구에서 전학 온 소녀를 만나 풋풋한 청춘 로맨스가 펼쳐집니다. ‘이상은’이라는 특정한 한 시대의 문화적 초상, 그 음악을 배경으로 낯선 시골에 떨어진 소년·소녀는 자석에 끌리듯 다가서고 서로의 속내와 비밀을 공유합니다. 둘 다 어머니를 잃었고 대구에서 어떤 사연으로 견디지 못해 떠나왔지만, 그 이유를 영화는 굳이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몇몇 상징과 배경으로만 묘사해냅니다. 하지만 타지역 관객들과는 다르게 대구·경북 관객이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요. 

마지막 데이트 풍경을 보며 관객들은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대구 동성로 지하상가 운영을 위탁 맡은 기업과 이를 승인한 지방정부 공권력이, 수십 년간 지하상가에서 영업해온 상인들을 내몰던 강제집행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참사 통곡의 벽을 마주하게 되지요. <찾을 수 없습니다>의 독특한 미덕은 이런 은유와 설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역사적 기억을 간접 체험하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독립영화는 대안 언론으로서의 성격을 일정 부분 가질 수밖에 없기에, 소위 말하는 ‘좌파’의 전유물로 취급되곤 합니다. 그래서 정작 봐야 할 이들은 외면하고 안 봐도 될 이들은 집중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쟁점을 다루는 독립영화는 관객 대상을 잘 잡아야 합니다. 

워낙에 절박한 일들이 많기에 뉴스 속보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다수이고, 비용과 각본이 추가돼야 하는 극영화는 드물죠. 극영화의 경우는 ‘재현’을 하는 방법론에 민감해야 하기에 쉽게 손대기도 어렵습니다. 어설프게 사회적 발언을 하면 외면당하고, 지나치게 소재로만 활용하면 윤리적 비판에 직면하기 딱 좋으니까요. 

그리고 지나치게 주제 설정에 발목을 잡히면 보는 재미가 없기도 합니다. 민감한 소재는 선정적으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 아예 안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대중적으로 볼 수 있게 진입 턱을 낮추면서도, 충실하게 간접 체험으로 기억을 전달하는 균형을 맞추기가 참 어렵습니다.

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는 청춘 로맨스물이라는 장르에 매우 충실하면서, 사회적 참사의 기억을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는 수작입니다. 즉, 모르고 봐도 큰 무리가 없으나 배경을 알고 보면 더 우러나는 맛이 있는 작품이지요.

 

"찾을 수 없습니다" 영화 스틸컷
△ 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 스틸컷

더 많은, 더 다양한 지역 기반 영화가 만들어지려면

 

<탈선derailed>는 몇 곳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지만 정작 지역사회에서는 크게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되는 과정에 아주 조금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남는 작품입니다. <찾을 수 없습니다>는 지역에서보다는 타지의 영화제와 상영회에서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활용될 여지가 많은데 아쉬울 때가 있지요. 

물론 지역 출신 감독이라고 해서 꼭 지역성을 녹여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유로운 창작은 보장되어야지요. 다양한 영화를 지역 내에서 활동하며 만들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민감한 현안도 자유로운 상상도 골고루 구체화하여 지역의 문화와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탈선derailed>의 지역 기반 제작 경험과 배급 실패담도, <찾을 수 없습니다>가 보여준 중용을 갖춘 완성도 높은 장르영화의 가능성도 모두 열려 있습니다. 좀 더 이런 작품들이 호명되고 상영될 때 서울로 떠났던 지역의 영화인들이 용기를 내어 돌아오지 않을까 싶네요.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보장될 때 그 흐름은 좀 더 구체화 될 것입니다.
 

 

[ 작품정보 ]

 

탈선derailed Derailed

다큐멘터리한국201470

감독 권현준

5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2014) 폐막작

15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15) 국내 신작전 초청

 

찾을 수 없습니다 404 Not Found

로맨스ㆍ멜로한국201828

감독 엄하늘주연 유재상, 정다은

19회 대구단편영화제(2018) 애플시네마 대상

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2018) 국내 경쟁

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2018) 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단편 초청

16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2018) 국내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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