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 해 보셨나요?
이런 여행 해 보셨나요?
  • 함수연
  • 승인 2019.06.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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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아이부터 71세 할머니까지 남녀의 다양한 연령대 37명
김단야 선생님의 손녀분도 함께 한 ‘독립운동가에게 마음 여름’ 역사여행

 

이 역사여행은 지난 4월 26일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기회로 김천의 독립운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아보고, 김천의 독립운동가들 중 대표적인 한 분 김단야(김태연) 선생님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세미나의 후속 역사여행이다.

김천의 독립운동가 중에 수훈을 받으신 분들이 61분(경북독립기념관 홈피 참조)이나 있지만, 김천은 딱 두 분에 대한 기념비만 있을 뿐이다. 김천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생가터를 복원한다던가, 기념비를 세우거나 기념관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역사를 잊지 않고 나라를 지키고자 한 숭고한 뜻을 이어가는 데 매우 인색하게 보였다. 그래서 김천교육너머에서는 김천 선조들의 훌륭한 역사를 탐색하고 배우기 위해 시작한 공부와 실천으로 우리의 뜻을 시민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뜻깊고도 재미나는 역사여행을 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이 더해졌다.

△역사여행-독립운동가에게 마음 여름, 웹자보
△역사여행-독립운동가에게 마음 여름, 웹자보

기획을 하면서 5월에 사전 답사를 하였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른 더위에 땀이 많이 나고 빨리 지치는 날이었다. 역사여행 당일은 6월이라 한더위가 예상되는 터라 준비가 더 필요해 보였으나 얼음물 등을 준비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 최대한 동선을 짧게 하면서 기행을 할 필요가 보였다. 

개령에서는 어떻게 하나?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미션 수행을 해야 하는데… 

‘준비한 만큼 하면 되지!’ 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획을 마치고 웹자보를 띄웠는데 신청자가 별로 없다. 이를 어쩌나. 마음이 다급해졌다. 회원 중에는 농부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농사일을 해야 하는 시기라 너무 힘들고 바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신청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 우리의 뜻깊고 괜찮은 역사여행 기획이라 믿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역사여행을 기획한 것이니 함께 하면 좋겠다는 전화를 하고 또 해서 38명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당일, 비가 온다는 예보에 또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약간의 더위와 자주 불어주는 신선한 바람이 우리를 환영하는 듯 느껴졌다.

△ 버스안에서 천도복숭아
△ 버스안에서 천도복숭아

역사여행은 안동에 있는 경북독립기념관과 임청각에서 해설 듣기와 탐방, 개령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한 미션 수행으로 진행되었다. 김천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기회로 삼았다.

김천에서 안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경북의 독립운동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현재 살아계신 독립유공자들의 증언 동영상을 시청했다. 

안동에서 개령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는 개령에서의 만세운동 설명, 김단야 선생님 동영상 시청, 김단야 선생님 손녀님의 말씀으로 버스 안에서도 열심히 한 공부에 다들 힘들어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것 하면서 귀로는 듣는 듯 보였다.

김단야 선생님 손녀분과 친구분이 각자 애써 싸 오신 간식과 김옥겸 회원님의 천도복숭아는 새콤달콤 인기가 많아 모두 먹어치웠다.

 

△ 경북독립기념관에서
△ 경북독립기념관에서

경북독립기념과 임청각에서 해설은 어른들이 듣고, 아이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며 놀아가며 뭔가를 한다. 아이들은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몸으로 역사를 기억하리라 믿는다. 

△ 임청각에서
△ 임청각에서

가장 ‘할 것’도 ‘볼 것’도 없는 개령에서 우리는 가장 즐거웠고 신났다. 참가자들은 미션지의 위치를 찾아가서, 미션을 수행하면 인증 사진 찍기를 했다. 미션은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로고 붙이기였다. 

△ 개령에서-미션 수행
△ 개령에서 ‘미션 수행’
△ 개령에서-미션 수행 후 단체사진
△ 개령에서, 미션 수행 후 단체사진

미션은 4가지로 첫째, 개령에서 만세운동을 한 산을 찾아 이름을 말하고 독립만세 모습 표현하기. 둘째, 개령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할아버지께서 세우신 교회를 찾아 이름을 말하고 교회를 배경으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몸으로 표현하기. 셋째, 김단야 선생님의 생가터를 찾아가 이곳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넷째, 독립운동가 후손의 댁을 찾아가 임청각에서 본 것과 동일한 물건 앞에서 인증 사진 찍기였다.

△ 역사여행 후기
△ 역사여행 후기

더운 날씨였으나 순간순간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는 날에 너·나·우리의 더하는 마음과 몸이 보태져 손녀와 할머니까지 모두 미션 수행을 열심히 하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 웃음이 미소가 한 여름 다양한 색깔의 활짝 핀 접시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린이들에게는 미션 수행 후 독립운동 시절 관련 태극기 조립품을 선물로 주었다. 조립 후 후기도 올려주는 마음과 김단야 손녀분과 함께 오신 어르신들과 참여한 부모님들과 아이들의 후기가 역사여행을 고심하며 기획한 김천교육너머 일꾼들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이 글로 참가한 모든 분께 다음에 또 뵙기를 기대하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독립운동가 김태연(金泰淵, 1899~1938) 선생은

김계(金桂)·김추성(金秋星)·김단야(金丹冶)로 불렸다. 1919년 3월 24일 김천군 개령면 동부동에서 만세운동에 앞장서다 태형 90도를 받았다. 그해 12월 상해로 망명하여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청년회에서 간부로 일했다.

1922년 1월 극동민족대표대회에 참가하고, 그해 4월 고려공청 중앙총국을 국내로 옮기기 위해 입국하다 신의주에서 붙잡혀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24년 1월 출옥 후 신흥청년동맹·화요회에 참여하였으며, 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25년 12월 1차 조선공산당검거사건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하여 1926년 1월부터 조선공산당 기관지『불꽃』주필로 활약하였다. 그해 융희황제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안동현에서 권오설을 만나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자금을 지원하였다.

1929년 11월부터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지도하였으며, 1934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조선민족부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정권으로부터 일본제국주의 밀정이라는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1938년 처형되었다.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독립운동기념관 http://www.i815.or.kr)